미래는 이미 당도했다. 다만 아직 제대로 설명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전특수영상영화제는 전국 유일의 특수영상 전문 영화제로 벌써 7회를 맞이했다. 올해부터 전문가를 위한 축제에서 특수영상 기술에 대한 인식 확장을 시도하고자, 김성훈 감독이 새롭게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신작 <나혼자 프린스>가 대전특수영상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인식의 변화와 확장을 위한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을 영화로 재탄생시킬 마술. 특수영상의 세계는 지금 한국영화계에 필요한 언어다. 우리를 ‘환상 감각 속으로 Feel the Vision’으로 안내해줄 김성훈 집행위원장의 포부를 전한다.
- 2013년 <마이 리틀 히어로>이후 12년 만에 <나 혼자 프린스>로 이광수 배우와 함께했다.
베트남 나트랑에서 열린 영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관계자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뉘앙스로 서로 교감했던 경험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한류스타가 베트남에서 정체를 숨기고 도피한다’라는 설정 자체는 <로마의 휴일>부터 <노팅 힐>까지 수많은 레퍼런스를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다. 베트남에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전에 해보지 못한 시도가 될 거란 느낌이 있었다.
- 익숙한 로맨틱코미디인데, 만드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특히 초반에는 영화 속 톱스타 강준우처럼 보이던 캐릭터가 점점 이광수 배우 본인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지점들이 인상적이다.
그게 배우 이광수의 힘이고 인간 이광수의 매력이다. 사실 둘이 있을 땐 서로 좋은 이야길 별로 안 해준다. (웃음) 그만큼 편하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소박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목적으로 시작했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인물에게 카메라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드는 게 이번에는 매우 중요했다. 거기서만 발견되는 표정이나 어떤 떨림, 흔들림이 전달되길 바란다.
- 로맨틱코미디 장르 공식을 익숙하게 따라가는 가운데 컷의 전반적인 호흡이 길고 인물을 오래 찍는다고 느꼈는데, 전작들과 비교하면 하나의 도전이자 전환점 같다.
장르도 친근하고 규모가 작으니 쉬어가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일종의 전환과 새로운 시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최근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규모를 줄이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일들이 필요하다. 로맨틱코미디도 장르적으로는 소품 같지만 실제 제작비는 적지 않게 든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호흡이 짧아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숏폼에 맞춰서 더 빨라지고 자극적이 되기보다는 더 클래식한 쪽으로,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극장이 다시 의미를 가지려면 서로 다른 문화와 만나는 순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영화는 그런 고민들이 반영된 결과다.
- <나혼자 프린스>가 대전특수영상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빡빡한 스케줄 중에도 올해부터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빈말이 아니라 시리즈 <골드랜드>를 찍고 있어 정말 바쁘다. (웃음) 제안이 왔을 때 기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극장의 미래 등을 고민한 끝에 <나혼자 프린스>에 도전했던 것처럼 지금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보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대전은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촬영하기도 했고 인연이 깊다. 특히 로케이션, 촬영에 매우 특장점이 있는 도시다. 2017년 스튜디오 큐브가 생기면서 촬영 인프라가 확충되었고, 위치 역시 수도권, 강원도, 호남 어디를 가든 적당하다. 게다가 특수영상에 대한 이해가 높고 꾸준한 지원을 해온 지역이란 점이 가장 중요하다. 바야흐로 ‘극장과 영화가 무엇인지’ 질문받는 시대에 필요한 인프라와 조건을 갖춘 셈이다.
- 올해 7회째를 맞이한 대전특수영상영화제는 대대적인 확장과 변화를 시도한다. 집행위원장으로서 큰 방향을 설명해준다면.
특수영상은 한마디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경험을 시각적으로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노력이라고 해도 좋겠다. 특수영상 기술이 영상산업에서 어떤 혁신을 이루었고 무엇을 더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특수영상은 일종의 마술적 경험이다. 트릭을 모르고 마술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마술의 트릭을 알면 더 즐거울 때가 있지 않나. 이런 메커니즘적인 재미를 좀더 적극적으로 알리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시대별로 특수영상 기술의 변천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는 1970년대다. 할리우드영화의 대표적인 특수효과 결과물인 <스타워즈>시리즈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들을 놓고 고민한 끝에 <미지와의 조우>를 택했다. 원래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어떻게 미래를 상상하여 현실로 구현했는지를 목격하는 타임머신 같은 영화다.
- 최근 화두는 AI다. 특수영상의 관점에서 볼 때 AI는 구현을 위한 기술적 방편 중 하나다. 특수영상이 더 상위의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핵심은 영화다. 영화에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접목할 것인지, 방법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본다. 나 역시 올해 AI 단편 제작에 참여했다. 하루 정도 촬영했고 곧 결과물이 나온다. AI를 정확히 어떻게 쓸지 기준점이 아직은 회사마다 다르다. 정확한 건지 모르겠지만 6초를 넘어가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현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테스트 단계라고 본다. 그 말인즉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을 때까지 뭐든지 시도하고 배워야 한다. 한번에 모든 걸 바꿀 순 없다. 현재 제작비에서 AI의 도움을 받아 10%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그게 혁신이다.
- 올해 대전특수영상영화제의 프로그램 중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11월28일 진행되는 ‘VFX 테크쇼’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환상적인 볼거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나 역시 기대 중이다. VFX에 관한 한 영화인이나 일반인이나 별반 수준 차이가 없다고 본다. 모두가 배우는 중이고, 모든 것이 신기할 것이다. 이 새로운 길에 여러분을 초대해서 함께 경험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