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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극과 안정 사이의 순수, <너와 나의 5분> 배우 현우석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5-11-04

재민(현우석)은 글로브의 <FACES PLACES>를 좋아한다. “Best of my life”을 되뇌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17살인 지금이 인생 최고의 날들로 기억되리라고 직감한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세계를 넓혀주는 전학생 경환(심현서)과 이어폰을 나눠 낄 때만큼은 전에 없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힘을 낼 시간> 등을 지나오며 위태로운 소년의 초상을 여러 번 덧칠해온 배우 현우석은 그 순간을 숙면에 빗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도 이런 관계에서만큼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차기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에서도 교복을 입는다는 그는 현우석의 소년이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엷은 미소로 말을 아꼈다.

- <아이를 위한 아이> <돌핀> <힘을 낼 시간>에서와 달리 <너와 나의 5분>에서 비로소 사사로운 학창 시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연기해온 인물들의 계보를 떠올려본다면.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을 한 청소년들이 아니었나 싶다. 모두 문제를 극복하거나 받아들이기 위해 마주하는 여러 갈래 길에서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다. <너와 나의 5분>의 재민이도 그렇다. 재민이가 차선을 택했으면 어땠을지 고민해본 적도 있지만, 그 또한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한 것 같다. 그에 대한 대가는 따르겠지만.

- 재민이는 전학생 경환이 새로운 교실에서 최초로 관계를 맺은 인물로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그전에 재민이는 어떤 학교생활을 했을까.

모범생에 가까운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재민이 또한 과거에 전학을 왔고, 집에서 억압받는 아이이니 그저 열심히 공부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경환을 만나 그에게 순수하게 흥미를 느꼈을 테고. 이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도파민 없이 지내던 재민의 일상에 경환이라는 자극 포인트가 들어왔다고나 할까? (웃음)

- 경환을 만나기 전까지 재민은 글로브의 음악도 혼자서 들었을 듯하다. 누구에게도 그 감상을 말하지 못하고.

아마도. 그리고 돌이켜보면 재민이는 경환이를 통해 일본 음악 듣는 루트도 알게 되고, 새로운 사이트도 접한다. 그전에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꽂히거나, 방법을 모르는 채로 좋아하지 않았을까. 경환이 정보를 알려줘서 그에게 더 큰 호감을 느꼈을 것 같다.

- 그래서 머리까지 쓰다듬으면서 경환이를 헷갈리게 한 걸까!

나도 재민이가 경환이를 먼저 유혹한 거라고 보긴 한다. (웃음) 다만 재민이가 의도적으로 플러팅한 것은 절대 아닌 것 같고, 경환이가 귀여워 보일 때마다 순수하게 반응한 게 아니었을까. 버스 안에서 경환이가 재민이에게 왜 자신에게 잘해주느냐고 묻지 않나. 그때 재민이가 “재밌어서”라고 답하는데, 원래 대사는 “귀여워서”였다. 감독님이 재민이 마음이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덜어내셨나 보다.

- 친구로서든 잠재적인 연인으로서든 계속 붙어 있고 싶으니 농구 레슨도 시작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해가 지도록 공을 튀기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그날이 크랭크업 날이었다. 처음부터 시간의 몽타주처럼 담고자 한 장면은 아니었는데, 3월 초라 해가 짧았다. 덕분에 카메라에 석양이 담기니 참 예쁘더라. 대본도 있고, 콘티도 있었지만 경환과 재민의 케미스트리가 자연스럽게 담기도록 감독님도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으셨다.

- 촬영 마지막 날이라 더 후련하게 뛰어놀 수 있었을 법하다.

그 장면만 찍는 날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그날 재민이 혼자 농구장에 주저앉아 우는 장면도 찍어야 해서 뛰어놀면서도 편치만은 않았다. 그 신까지 다 찍고 나서는 너무 후련했다. 마지막을 기념하며 노래를 틀어놓은 가운데 키 스태프부터 막내들까지 모든 스태프가 내게 꽃 한 송이씩 건네주셨다. 처음 겪는 이벤트였다. 그날 촬영이 없는 배우들도 와서 함께 마지막 촬영을 축하해줬다.

- 선배 배우들과의 작업이 익숙할 텐데, 심현서 배우와 호흡을 맞춰보니 어땠나.

현장에서 동생이 생기다니, 처음 겪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함께한 선배들은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크게 개입하거나 조언이 없어서 나 또한 함부로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현서도 나처럼 프로 배우로서 현장에 온 것이니 옆에서 지켜보면서 힘을 주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현서의 에너지가 이미 놀랄 정도로 컸다. 아주 밝다가도 진지할 때는 또 엄청 진지해서 감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웃음) 처음 장편영화를 찍는 현서에게 힘을 주려다가 내가 오히려 힘을 받았다.

- 재민과 경환 사이도 그렇게 화기애애하다가 벌어진다. 영화는 재민이 왜 경환으로부터 거리를 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데, 배우로서 그 틈새를 어떻게 메웠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이 빈틈은 재민이가 경환이를 지켜주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느꼈다. 재민이도 경환이가 전학 오기 전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 있고, 그러면서 솔직하지 않았을 때 지켜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 배우 입장에서는 재민의 그런 결정이 마음 아팠다. 그 나이만의 솔직함과 순수함이 지켜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려서부터 그런 감정을 차단한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 롤러코스터 신에서 그때 재민이가 느꼈을 답답함이 터져나온다. 촬영감독과 몇번이고 놀이기구를 반복 탑승했다던데, 원래 무서운 기구를 잘 타는 편인가.

너무 잘 탄다! 그래도 내가 지르는 소리가 잘못하면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지르는 비명처럼 들릴까 봐 걱정이 많았다. 나는 울분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구를 많이 했는데, 막상 롤러코스터를 여러 번 타니 점점 악에 받쳐서 감정이 잘 올라오더라. 하나 아쉬운 건 있다. 첫 테이크 때부터 이상하게 눈물이 차올랐고, 그 눈물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는데, 롤러코스터가 너무 빨랐던 탓인지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다. 그 물방울이 화면에 딱 담겼어야 했는데!

-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어머니 차를 타서는 전혀 다른 발성으로 대사를 뱉었다.

내가 해석한 재민이는 변화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가정환경이 크게 변하면서부터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어머니가 무섭다기보다는 불편해서, ‘변화’ 그 자체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라서 목소리 톤도 낮아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엔딩크레딧을 채우는 버스 안에서만큼은 재민이도 평온해 보인다. 경환에게 기댄 재민이 어떤 마음이기를 바랐나.

실은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다. 그러나 본가에서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는 정말 잘 잔다. 얼마 전에도 좋아하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기간 동안 그렇게 바른 생활을 했다. (웃음) 나는 이렇게 안전한 사람이 옆에 있어야 깊게 잠들 수 있다. 재민이에게는 경환이 흔들리는 시기의 안전장치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왠지 재민이는 미래에도 그런 안전함을 찾아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애쓸 것 같지만, 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았을 것도 같다. 성인이 된 경환이처럼 엄마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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