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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1]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2, <친구> 제작기
이자연 사진 씨네21 사진팀 2025-10-06

우정, 그리움, 부산 사나이, <친구>

누적관객수 818만명.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친구>가 이뤄낸 성과는 가히 놀랍다. 2000년대 초반은 유독 조폭과 건달의 싸움을 다룬 작품이 많았지만 <친구>는 통상적인 키워드 속에서 관계의 낭만화를 구축했다. 맨 밑바닥까지 나눠 가졌던 친구들, 정겨운 고향, 서로 다른 선택지, 그리고 이별과 그리움. 영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서사적으로 짚어내면서도 관객 개개인이 마음속에 간직한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25년이 지나서도 어린 세대에게 회자되고 반복되는 밈들은 부산을 딛고 선 <친구>고유의 리듬과 재치, 말맛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친구>가 완성되기까지의 먼 기억을 끄집어냈다.

영화를 향한 관심과 이목을 이끌었던 포스터 문장,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는 제작사 시네라인투의 석명호 대표가 고안한 것. <친구>는 앞서 두 작품의 흥행 실패를 맛본 곽경택 감독의 투지에서 시작됐다. 현경림 프로듀서는 당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제안했지만 작품을 거절하러 온 곽경택 감독의 호탕한 모습에 빠져들어 “그럼 무슨 작품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가 <친구>의 개괄을 듣게 되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레트로 열풍의 대표적 장면인 달리기 대결 장면. 가 신나게 흘러나오는 이 장면은 부산 동방상회 골목길, 영도대교, 자갈치시장 등에서 촬영되었다. 네 친구가 열심히 달리다가 포토슛처럼 찰칵 하고 멈추는 연출은 현장 편집에서 황기석 촬영감독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좁은 골목에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추억했다. “이 장면은 당시 부산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삼륜 오토바이 짐차로 찍었다. 지금은 촬영 전용 카메라 차가 있지만 당시 부산에는 고급 장비가 흔하지 않았다. 내가 짐칸에 타면 다른 스태프가 오토바이를 몰았다. 골목이 너무 좁아서 최대한 와이드 앵글을 썼다.” 곽경택 감독은 장난스러운 경주 속에 캐릭터 성향을 디테일하게 심어놨다. “동수 역을 맡은 장동건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었다. 어떻게든 이기려는 느낌을 담아달라고. 그게 준석을 향한 동수의 내밀한 감정이다.”

당시 삼성극장에서 촬영된 대격투 신에서 황기석 촬영감독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배우와 스태프의 안전이었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만큼 사고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만큼 핸드헬드 방식으로 촬영하면서 준석의 뒤를 따라갔다. 준석이 계단을 뛰어내린 순간 많은 학생이 동시에 뛰어나와 맞서 싸우는데 이 지점의 타이밍을 맞추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고.

여기에 작은 비밀이 있다. 삼성극장 신에 동원된 많은 남고생은 실제 부산 지역의 고등학생들이다. 다음은 곽경택 감독이 전한 비하인드 에피소드다. “앞쪽에는 무술팀이고 뒤쪽에 있는 단역들은 일반 학생들이다. 근처 학교를 찾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많은 지원자들이 참여해주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전투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곽경태 감독은 네명의 친구에게 몰려드는 고립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 중 하나다. 무척 위험한 상황에서 오직 네 친구만 고립된 느낌을 부각하고 싶었다. 병사가 몇 남지 않은 전쟁터의 느낌이랄까. 네 친구가 더 돈독해질 계기이기도 하고, 관객이 이들의 미래를 따라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하루 만에 찍었다. 그럴 만한 제작비 여유가 없어서. (웃음)”

준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장 장면. 촬영 장소는 부산 초량동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빌라촌이 들어서 풍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기와와 철문으로 이루어진 2000년대 초반의 가옥을 눈여겨볼 수 있다. (사라진 풍경을 두고 곽경택 감독은 영화로 기록해두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촬영 당시에는 ‘미술팀’이 따로 없고 소품팀이 모든 걸 전담했다. 어른이 된 준석이 동수와 결전을 벌이기 위해 아버지 산소를 찾은 장면에서 일반 종이컵을 본 곽경택 감독은 제대로 된 레트로 재현을 위해 반투명 플라스틱 소주컵을 찾았다. “<친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중요한 만큼 그 시절의 일상적 소품이 무척 중요했다. 과거 부산 풍경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잔뼈 굵은 충무로 소품팀 실장님의 분투로 조금씩 사라져가던 반투명 소주잔을 구할 수 있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곽경택 감독이 김광규 배우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영화과 시간강사로 일하던 학교에서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김광규의 열정을 알아본 그는 담임교사 역할을 맡겼고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장면에서 보람을 느낀다.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마이 묵었다 아이가.” 한국영화사의 밈이 된 대사들은 영화를 보고 난 뒤 각자의 친구를 떠올리길 바라는 작품 목표에 부합한 결과다. “<친구>는 단순히 조직폭력배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적으로 등질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걸 이야기 말미 에필로그에서 가슴 짠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우정의 잔상이 남는 건 친구의 의미를 계속 되새긴 곽경택 감독 덕이다.”(현경림 프로듀서) 부산이란 어떤 영화적 재료일까. 황기석 촬영감독은 부산만이 지닌 ‘시간’의 속성을 짚어냈다. “부산은 장소이지만 동시에 시간이다. 관객이 영화 속으로 몰입하는 것처럼, 우리는 부산을 바라보며 단숨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현재 침체된 한국 극장가가 돌아가고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도 부산에 담겨 있다.”

경제적 과시가 중요한 조직 보스들은 일제히 고급 차량을 타고 등장한다. “모두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일제 차량이었다. 일본 차를 갖고 계신 수집 동호회원을 찾아 연락을 드렸다. 이런 자동차 애호가들은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아야만 안심을 한다. 그래서 보스가 뒷좌석에 앉더라도 운전사는 운전석에 앉아 있지만 모두 차주이다. (웃음)”(곽경택 감독) 부산 사나이들의 거칠고 냉철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로맨스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 심지 굳은 의견을 낸 사람이 바로 현경림 프로듀서다. “내부적으로 멜로적 요소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친구>의 기본 컨셉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다.” 해맑고 철없는 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된 이후 중후하고 무거운 무드를 이어가는 건 조직원과 우정의 갈림길이라는 <친구>의 색깔이 구체적이고 명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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