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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스페셜] 우리가 출발하는 곳, <극장의 시간들>이 남긴 풍경 ②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5-09-22

- 극장과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단편 앤솔로지 기획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윤가은 신작 <세계의 주인> 편집이 막 끝나가고 있을 때 앞서 두 편의 장편 영화(<우리들> <우리집>)를 함께 만들었던 제정주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열심히 영화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아직 시동이 꺼지지 않은 시점이라 무엇이든 좀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마음이 자칫 헛헛해지려고 할 때에 이 작품을 만나 다행이었던 셈이다. 씨네큐브는 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내가 가장 많이 찾은 극장이기도 하다. 여러 의미가 뒤섞여, 조금 이례적으로 무턱대고 뛰어들게 됐다.

이종필 나도 <파반느> 후반작업이 거의 완성되어가는 시점에 제안을 받았다. ‘극장의 시간들’을 말하는 작품에 왜 침팬지 이야기냐고 물으신다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 내가 겪었던 일이다. 2000년 즈음에 어느 책을 접한 것을 계기로 동물원에 가서 침팬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처럼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지하 공간에 혼자 남은 침팬지를 직접 본 적도 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무렵에 이 모든 흥미와 집착을 촉발시켰던 책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내가 기억하는 침팬지 이야기가 없는 거다. 만약 모든 것이 내 착각이고 가짜라면 지난 시간들은 무얼까, 아무 의미도 없는 걸까 고민해봤다. 장편 시나리오 혹은 소설로 써보고 싶었는데, 제정주 총괄 PD의 제안을 받고 극장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내 안에 정리되지 않았던 침팬지의 의미를 녹여내보자는 마음이 섰다. 이번 작업을 통해 내 안의 오랜 주제 하나가 정리된 것 같다.

- 지하에 혼자 남아 있는 침팬지와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 삼총사의 풍경이 묘한 서정과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극장과 영화가 동시대에 처한 운명을 떠올려보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이종필 의도적인 상징을 부여한 작업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의미로 가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나 극장의 운명, 인생에서 소중했던 시절, 또는 친구의 존재일 수도 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이미 끝난 관계인데, 시간이 흘러 이상하게 생각이 났는데 며칠 뒤에 그 사람에게서 정말 연락이 온다든가, 소식을 듣게 된다든가 하는. <침팬지>라는 작업이 내게는 그렇게 약간 운명적인 데가 있었다.

- 원슈타인, 이수경, 홍사빈 배우가 약간은 반항적인 청춘 남녀를 연기하는데 영화사의 많은 삼총사들 떠올리게 한다. <쥘 앤 짐> 그리고 <국외자들>처럼.

이종필 고다르, 트뤼포, 왕가위, 짐 자무시 등 나열해보면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그런 작품들을 떠올리긴 했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쓸 땐 오히려 문학적 레퍼런스가 더 중요했다. 원슈타인과 그의 성인 역할인 김대명 배우에겐 고도라고 이름 붙였다. 홍사빈 배우는 제제, 이수경 배우는 모모다. 이렇게 짓고 나니 비로소 각각의 인물들이 명확히재더라. 제제는 나무 밑에 혼자 앉아있는 친구, 모모는 잘 들어주는 사람, 고도는 기다리는 사람. 젊은 관객들이 우리를 본인들과 다를 바 없는 친근한 청춘이라고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 나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드는 그런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 <자연스럽게>는 어린이 배우들과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을 들여다본다. 극중 감독과 배우들 모두 자연스러운 연기를 찾아나가려는 상황인데, <자연스럽게>라는 단편 자체가 대단히 꾸밈없고 생생하게 단출해서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이룬다.

윤가은 장편 영화를 만들다보면 직관보다는 서사적 정교함을 갖추는 데 힘을 쓰게 된다. 단편은 이런 요구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내가 관객으로서 어떤 종류의 영화들에서 가장 크게 전율을 느끼는가하면, 분명 연출된 장면이지만 순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화면에 배어나올 때다. 감독과 제작진이 성실히 준비한 것과 현장에서 발견을 한 것이 모호한 경계를 이루며 어우러질 때, 크게 감동하곤 한다. 거기서 오는 새로움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놀이가 되어주는 것 같다. 영화를 한다는 기쁨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고 이번 단편 작업에서 바로 그런 지점을 추구해뱌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나리오 형식이 아닌 줄글로 각본을 썼다.

- 윤가은 감독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여성 감독 역할에 고아성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윤가은 신 안에 대략의 상황 설정만 놓고 아이들과 교류하는 존재로 원래는 감독 역할을 내가 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비를 할수록 나로는 안되겠더라. (웃음) 이 작품의 취지와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즉흥 상황을 잘 이끌어줄 배우로 어린이 배우 출신이었던 고아성 배우라면 기막히게 해낼 것 같았다. 각본에 대사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베우가 대사를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작품이다. 무엇을 미리 준비하고 무엇에 열려있어야 할 지 고아성 배우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배우들의 나이가 초등학교 5,6학년대라 무언가 가장해서 유도하는 방식은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라 봤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즉흥성을 이끌어내고 같이 창의적인 지점을 공유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관건이었다. 극중 감독이 어린 배우들에게 질문하는 장면도 미리 질문 내용 같은 것을 알려주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로 던져보고 한번에 매우 길게 찍는 형태로 작업했다.

- 영화의 말미에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관람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메타 영화로서의 형식이 가시화된다.

윤가은 아직도 ‘감독님’이란 정체성이 내게는 때로 어색하다. 관객의 자리가 훨씬 편안하고 나다운 것으로 느껴진달까. 영화 만들기를 지속하면서 영화를 즐기는 사람으로서의 나가 영화를 만드는 나와 충돌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일을 할 때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나,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을 계속 의식하게 되는데 그 역할이 마무리된다고 가장 강하게 느끼는 장소가 결국 극장이다. 관객일 때나 감독일 때나 극장에 가야 완성이 된다. <자연스럽게>를 만들 때도 비슷하게 느꼈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낼 수 없고, 극장까지 반드시 나아가서 그 모습을 거울처럼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만드는 사람의 자리에서 관객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도록.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새로운 영화를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고아성 배우와 스태프들을 제외하고 어린이 배우들은 촬영 사실을 잠시 알지 못한 채 진행했다. 몇 테이크 동안은 리허설인 줄 알고 있도록 했다.

- 관객이자 직업인으로서, 지금의 두 사람에게 극장은 어떤 의미인가.

윤가은 20대 때 정말로 극장에 많이 갔다. 그때는 좋은 영화든 아니든, 모든 영화가 내게 때로는 미스터리하고 때로는 지적인 놀이였다. 이제는 이곳이 내게 일터가 되었는데 <자연스럽게>에 계속 놀이터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연상된다. 영화와 극장이 내게 ‘놀 수 있는 일터’라면 좋겠다고.

이종필 정말 유치해서 민망하지만...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가 떠오른다. “영화는 나에게 종교, 극장은 교회와 같다. 내 목사님은 마틴 스콜세지다!”

윤가은 마틴 스콜세지가 아직도 당신의 목사님인가.

이종필 지금은 개종했다. (일동 웃음)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극장이 내게 교회처럼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그곳으로 숨어 들어가면, 거기 어떤 영화가 있든, 한 편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둠 속에 머무는 시간 동안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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