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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경쟁]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남선우 2025-09-22

임선애 / 한국 / 2025 / 108분 / 경쟁

9.22 BH 16:30 / 9.23 L4 12:00 / 9.24 SH 20:00

비행기에 탄 아이는 코가 찌릿할 걸 알면서도 사이다를 마신다. 어린 승객에게 음료를 건넨 승무원 사강(수지)도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상대는 이미 가정을 이룬 남자이자 같은 일터의 기장인 정수(유지태). 준비된 결말이라고 해서 덜 아플 리는 없다. 자기 입으로 이별을 고해놓고도 몇 날 며칠 잠을 설친 사강은 여느 때와 같은 불면의 밤, SNS 게시물 하나에 마음을 빼앗긴다. “실연당했습니다”라고 운을 떼더니 혼자 있기 싫다면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는 그 글에는 참가 신청 링크까지 첨부돼 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사강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나간다.

초대에 응한 이들 중에는 10년 넘는 장기 연애를 마친 지훈(이진욱)도 있다. 기업 대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로서 고전문학의 명문장을 줄줄 외우는 그에게 정작 떠난 연인을 잊게 해줄 구절은 나타나지 않는다. 낯선 얼굴들 틈에서라도 태연해지고 싶었던 지훈은 그러나 식당 한구석에서 전 여자친구 현정(금새록)을 발견하고 조찬모임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이때 마찬가지로 더는 괜찮은 척 수저를 들 수 없었던 사강이 지훈과 부딪히고, 둘은 서로의 ‘실연 기념품’을 교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멀어 진다.

데뷔작 <69세>(2019)에 이어 <세기말의 사랑> (2023)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던 임선애 감독은 세 번째 장편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도 사건 자체보다 사건의 여파에 관심을 둔다. 그 시선은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지나온 관계를 재독하려는 인물들을 낳아왔다. 사강과 지훈도 그렇다. 각자의 공간에서 괴로워하는 두 주인공은 러닝타임 중반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대면하지만, 그전에도 한때 상대의 소유였던 물건을 통해 서로를 의식한다. 사강의 책이 지훈에게, 지훈의 카메라가 사강에게 속하고부터 두 사람은 타인의 경험 위에 내 것을 포갤 수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그 시차를 시청각적으로 섬세히 조율한 장면들로 반짝인다. 일례로 사강은 지훈의 뷰파인더를 빌려 선뜻 사진으로 남기기 힘들었을 만남의 한 순간을 필름 질감으로 다시 본다. 가상으로나마 포착한 찰나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위태롭게 빛나는 배우 수지의 표정을 마주하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묘미다. 그는 영화에 필요한 모든 감정을 꼭꼭 씹은 듯 임선애 감독이 고려했다는 90년대 한국 멜로의 잔향까지 구현한다. 그렇게 원작 소설의 줄거리를 성실히 따른 작품 안에서도 감독 고유의 세계가 생동할 수 있음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차분하게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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