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에 2025년을 정리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로 압축되지 않을까. 연이은 신기록 경신과 전 지구적 열기. 테니스 세계 랭킹 7위인 노바크 조코비치는 US오픈 8강전에서 승리한 후 <Soda Pop> 안무를 췄고, 대표곡 <Golden>을 부른 헌트릭스 3인방(이재, 레이 아미, 오드리 누나)은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2025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MTV VMA)에 시상자로 오른다. 이름하여 ‘<케데헌> 신드롬’. 이 뜨거운 현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매기 강 감독과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매체별로 질문을 건넬 때마다 “저도 <케데헌>을 보고 울었는데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귀여운 풍경 아래 매기 강 감독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렇게 전했다.
한국다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케데헌>의 중심축을 이루는 K팝과 한국 문화는 5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품은 매기 강 감독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학교 선생님이 출신 국가를 물었을 때 “South Korea”라고 답했지만 선생님은 그 존재를 알아듣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곳이라고 해도 찾기 어려워할 뿐이었다. 그런 장면에서 매기 강 감독은 언젠가 한국의 이야기를 널리 펼치고 싶은 꿈을 품었다. “특히 서양 국가에서 아시안 콘텐츠라고 만든 것을 보면 이질적인 지점이 너무 많았다. <뮬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등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했지만 진짜 아시안의 눈에는 다소 낯설었다. 기모노 스타일의 옷을 입은 중국인이나 특수한 판타지가 과장된 풍경들. 아시안으로서 기분 나쁜 일이다. (웃음) 그래서 한국 문화를 묘사할 때 디테일에 집착했다. 세세한 것들까지 진짜의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단연 스토리와 캐릭터다. 한국 문화라는 특수성을 가져가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만한 스토리텔링, 자신을 이입할 만한 호감의 소재를 활용해야 했다. 그것이 K팝이다.
자기다움을 고민하는 여성 전사를 구축하는 방법
오랫동안 부정해온 정체성을 끌어안는 여성 전사의 이야기는 어떻게 출발했을까. 먼저 매기 강 감독은 무당과 굿이라는 민속신앙을 들여다보았다. “굿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콘서트 아닐까. 춤과 노래를 통해 악귀를 물리치는 모습을 헌트릭스에 반영했다. 특히 무당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이어온다. 그런데 이들이 굿을 할 때면 남성의 의복을 입는다고 하더라. 그게 흥미로웠다. 페미니즘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국 여성 무당의 강인함과 신화가 잘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특히 매기 강 감독은 전형적인 여성 묘사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작품 초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김밥과 라면을 먹는 헌트릭스의 모습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꼭 이런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케데헌>의 중심 무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는 못생겨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너무 웃겨 보여선 안된다, 너무 바보처럼 보여선 안된다. 그래서 내 영화에서만큼은 음식도 이상하게 먹고 흥분하는 여자들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렇다. (웃음) 나 같은 여자를 보고 싶었다.”
<Golden> 그리고 해방감
노래는 <케데헌>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K팝을 내세우는 만큼 노래는 절대적으로 좋아야만 한다. 전 지구적인 챌린지를 이끌고 있는 <Golden>은 실제로 가장 오랜 시간과 노력을 공들였다. “<Golden>은 루미의 소망과 열망을 폭발시키는 대표곡이기에 무조건 잘 만들어야 했다. K팝이라는 영화 소재뿐만 아니라 주인공 시점의 서사적 측면에서도 모든 것을 납득시키는 곡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루미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온 다른 멤버들의 그림자도 함께 담고 싶었다. 가족들과 문제가 있는 미라나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조이까지. 이 노래를 들을 때 각 캐릭터의 성장 서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Golden>이 따라 부르기 어려운 것 또한 정확히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루미의 격해지고 고양된 감정을 고음 파트가 마침내 해소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음을 해낼 때 루미를 바라보는 작품 내 팬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까지 모두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영화의 안팎이 그렇게 연결된다.
K팝을 다루는 다채로운 시각
하지만 K팝 팬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많다. 그렇다면 <케데헌>은 왜 이런 지점을 가까이 조명하지 않은 것일까. 매기 강 감독은 자신의 선택과 집중을 설명했다. “할리우드를 포함해 모든 산업에는 명과 암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케데헌>을 만들면서 K팝 산업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지 않은 것, 이게 최초의 K팝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최초는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기도 해서 이번만큼은 긍정적이고 밝은 것들을 다루고 싶었다. 현실적인 것은 한국 문화 콘텐츠가 자리 잡은 그다음이다. 물론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다는 것 역시 잘 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자보이즈는 악령 아닌가. (웃음) 영화에서 명백한 빌런으로 기능하면서 실질적인 위협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매기 강 감독을 이루는 것들
매기 강 감독은 어떤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고 자랐을까. “어려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H.O.T.를 정말 좋아했다. 정말 빅 팬이었다. 그들 앞에 서면 나도 갑자기 소녀가 되었다. 듀스도 대단했고. (웃음)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무척 좋아했다. 내 삶에 많은 영향과 의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