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3일 국내에 개봉한 시라이시 고지 감독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이하 <긴키 지방>)는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적극 활용한 호러 무비다. 호러 마니아들을 알음알음 극장으로 부르며 국내에서 20만 관객을 돌파(8월26일 기준)했다. 영화에서 쓰이는 파운드 푸티지란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이다. 작품 속 영상이 실제 사건이라는 서사적 속임수를 취하면서 관객에게 극한의 현실감을 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영화 속 주인공이 우연히 주운 실제 비디오테이프에 어떤 심령현상이 기록돼 있었고, 주인공이 그 기록을 따라 공포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한국영화 중에선 <곤지암>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사용한 대표적 작품으로 언급된다. <긴키 지방>의 시작 역시 일본 도심의 수많은 인파, 그만큼 수많은 미디어의 파도 속에서 떠도는 하나의 영상이다. 실종된 친구를 찾아 달라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마치 유튜브 영상의 질감처럼 스크린을 채우면서 영화의 운을 띄운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출발점은 어느 오컬트 잡지의 편집장 사야마가 실종된 사건이다. 홀로 특집기사를 취재하던 사야마가 공기처럼 사라지고, 후배 기자인 오자와가 주제도 무엇인지 모르는 특집기사를 떠맡게 된다. 심지어 기사의 마감 기한은 당장 다음주이며, 분량은 25페이지에 달한다. 더군다나 이 기사가 실패하면 오컬트 잡지는 폐간 위기를 맞게 된다. 이는 곧 잡지사 기자에게 죽음이나 유령 따위보다 더한 극한의 공포일 수 있으나… 여하간 <긴키 지방>은 기자의 직업적 위기보다 사야마가 남긴 오컬트 현상에 집중하며 오래된 비밀의 싹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오자와가 프리랜서 작가 치히로를 불러 함께 기사를 준비하면서 점차 사야마 실종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긴키 지방>은 파운드 푸티지 호러 무비의 정석적인 구조를 따르면서도, 시대에 맞는 변주를 취한다.
<긴키 지방>은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최대한 많은 미디어를 활용한다. <블레어 윗치>(1999),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시리즈 등으로 대표되는 그간의 파운드 푸티지 호러는 시의성 있게 비디오테이프, CCTV, 카메라 등의 미디어를 활용해왔다. 최신 호러 <긴키 지방>은 비디오테이프, 캠코더는 물론이거니와 서두에 언급한 유튜브 영상을 비롯하여 스트리밍 라이브영상, 인터뷰 푸티지 등 다양한 매체를 영화 속의 증거로 포함한다. 요컨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는 파운드 푸티지의 감각을 관객에게 다양한 층위로 주입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매체 기록은 대개 사야마가 남긴 취재의 흔적이다. 예컨대 1985년 한 소녀의 실종을 다룬 방송국의 뉴스릴 영상, 2002년 어느 중학교의 수련회 현장을 담은 캠코더 기록 화면, 2013년 한 바이커가 자신을 촬영한 스마트폰 브이로그 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매체의 채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5년 ‘니코니코 생방송’(유저의 라이브 스트리밍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웹 미디어)의 공포 체험 스트리머가 폐허를 찾아간 영상, 사야마가 심령현상을 겪은 청년 메구로를 인터뷰한 자료, 그 메구로가 자기 주변의 심령현상을 직접 찍은 세로 형식의 스마트폰 동영상 등이 영화의 초·중반부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이 자료 속의 인물들은 헛것을 봤다거나, 주변 생물이 죽어가는 일을 경험했고 대부분 실종된 상태다. 오자와는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이 이 수많은 미디어 자료 속에서 특정한 오컬트 현상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수상한 일이 벌어지는 장소 근처엔 언제나 비슷한 그림이 있다. 부적 같은 종이의 네 귀퉁이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적혀 있고 중앙엔 기묘한 형체의 생명체가 그려져 있었다….
<긴키 지방>이 택한 미디어의 혼합은 단지 영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트리밍 라이브영상 등으로 최신형의 파운드 푸티지를 시도하는 한편, 구술로 전해진 오래된 설화를 종이책과 작가의 발화로 서술하는 고전적 매체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동화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옛날 TV의 푸티지가 재생되면서 인터미디어의 레이어를 한층 더 쌓는 것도 포인트다. 이러한 방식들로 <긴키 지방>은 갖은 미디어 속 이야기, 서사 속의 사건, 관객들이 보는 영화의 표면을 뒤죽박죽 얽어내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리한 선택이다. 특히 <긴키 지방>이 택한 파운드 푸티지 전략의 백미는 작품 후반부에 오자와가 직접 녹화하는 캠코더 영상에서 발견된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오자와는 이 사건을 직접 기록하기로 맘먹는다. 혹여나 특집기사의 SNS 홍보가 필요할 때 써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은 차치하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자와가 찍는 캠코더 영상의 화면이 <긴키 지방>의 스크린을 대신할 때 드러난다. 캠코더 저장 용량의 잔량을 알려주는 알림 표시가 2시간으로 시작하여 영화의 시계열적 템포에 맞춰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캠코더 화면에 표기된 남은 시간은 관객이 있는 현실의 시간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영화 속 시간의 도약에 따라 대폭 축약되기도 한다. 이에 관객은 저 2시간이 끝나갈 때쯤 분명히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이란 비극의 예감을 느끼게 되며 영화가 주는 현실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물론 <긴키 지방>은 단점도 뚜렷한 작품이다. 파운드 푸티지 기법의 매력을 살리느라 이야기 사이의 이음매를 투박하게 포장하기도 하고, 때론 형식적인 구조에 매몰되어 작중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갈 틈을 주지 않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공포감을 조성하려 넣은 투박한 점프 스케어나 상투적인 음향효과가 되레 영화의 장점을 가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동시대 호러 무비가 어떻게 파운드 푸티지 전략을 변주하며 실천하는지의 주요 사례로 남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작품이다.
파운드 푸티지의역사는?
호러 무비에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전격적으로 활용한 대표 사례는 <블레어 윗치>다. 다큐멘터리 촬영 중 실종된 3명의 영화학도가 남긴 실제 필름을 상영한다는 마케팅으로 막대한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물론 이전에도 <카니발 홀로코스트>(1980) 등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활용한 호러 무비는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데이비드 홀즈먼의 일기>(1967), <퍼니시먼트 파크>(1971) 등 호러 무비는 아니나 페이크 다큐멘터리, 모큐멘터리의 형식을 시도한 작품들도 있다. 사실 <블레어 윗치> 등이 택한 영화적 파운드 푸티지 전략은 오래된 문학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1980년에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기가 우연히 어느 14세기 수도사의 흥미로운 수기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소설을 시작하는데, 이는 물론 저자의 거짓말이다. 이보다 훨씬 전 1600년대 초반에도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자기 창작물이 아닌 어느 역사가의 원본을 발견하여 번역한 것이란 설정을 두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