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17년이 흘렀다. 최승호 감독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이면을 집요하게 취재하는 동안 정권은 5번이나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강의 허리에 꽂은 보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박혀 있다. 물길을 막은 것은 보만이 아니었다. 권력과 침묵이 진실을 가로막은 사이에 4대강 유역에는 녹조가 자라나고 있었다. 전날 창원에서 개최한 시사회 일정을 소화하고 곧장 인터뷰장에 도착한 최승호 감독은 지친 기색 없이 열정적으로 4대강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추적>의 취재기를 공유하는 그의 눈빛에선 탐사보도에 임하는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 <공범자들> 이후 8년 만에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개봉한다.
영화의 힘을 믿는다. 정말 중요한 의제가 있을 때마다 영화라는 수단을 택하게 된다. 영화관에서 200명의 관객이 함께 영화를 보면서 분노와 탄식을 느끼는 공통의 감각이 참 소중하다. 이 감각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고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추적>은 4대강 사업의 병폐를 우리 시대에 끝내야 할 필요가 있기 에 새로운 정부의 출범에 맞춰 화두를 던지고자 만들었다.
- 자그마치 17년에 걸쳐 집요하게 4대강 사업을 취재했다. 반 세대가 훌쩍 넘는 시간을 쏟은 셈이다.
17년이란 시간을 되돌아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과 합심해 4대강 사업의 진실을 폭로하고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을까. 그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작금의 상황이 왔다. 이미 강의 상당 부분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기존의 강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을 통해 처음으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취재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나.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이 사업에는 장단이 공존한다고 생각했다. 4개의 강을 파고 보로 물을 가둔다면 물 공급에는 유리하지 않나 싶었다. 근데 물을 가두고도 수질을 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들었다. 두 명제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재에 들어간 뒤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게 되었다. 가뭄과 홍수 예방을 위해 시행한다는 4대강 사업의 실상이 이명박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를 고려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이었다.
- 2010년 8월17일 방영 예정이던 해당 편은 경영진의 개입으로 방송이 보류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는다. 이는 <공범자들>이 다루던 언론 장악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고백할 만큼 아쉬운 순간이다. 지금처럼 상황을 절박하게 인지하고 최선을 다해서 보도를 강행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당시 방송을 제작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대운하 사업과의 연관성을 파악한 뒤로 좀더 강한 비판 지점을 담으려 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초기 구상과 너무 다르다면서 방송 송출을 저지했다. 일주일 뒤에 수정해 공개했지만 큰 반향을 이끌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다.
- 2020년 MBC 사장 임기 만료를 기점으로 다시 4대강 취재에 나섰다. 무엇이 다시 카메라를 들게 했나.
그간 많은 탐사보도를 진행했지만 내가 취재했던 사안은 피해가 영속되는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녹조가 들끓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데, 4대강은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잊히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이 광경을 기록으로 남겨야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 올해 부임한 이재명 정권은 4대강 재자연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1일 시사회에서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영화가 던진 질문들에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답하겠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4대강 재자연화를 공약으로 건 만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낙동강을 방문해 상태를 확인하고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를 만나는 등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냈으면 한다. 환경부에서 독단적으로 해결하기엔 집행 예산이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 때도 환경부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의지를 피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매듭짓지 못하면서 유예되고 말았다. 이 영화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번 정권에서 결단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시간이 지날수록 강이 병들고 있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다. 특히 녹조 문제는 낙동강을 기점으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낙동강은 보 개방을 못했기 때문에 녹조 문제가 더 심각하다. 녹조는 기본적으로 질소와 인이 햇빛을 받으면서 발생한다. 보가 생긴 뒤로 유속이 느려지고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서 조밀해진 상태에서 햇빛을 오래 받으니 녹조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녹조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이다. 청산가리보다 유독한 데다 간독성 물질이라 매우 위험하다. 낙동강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에도 해당 독소가 검출된 바 있다. 이 농산물이 전국에 유통되는 이상 이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낙동강 인근 2km 주민을 조사했을 때도 검사자들의 절반 이상의 콧속에서 검출되었다. 강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장기간 독소에 노출되면서 일으킬 건강 이상도 우려할 점이다.
- 녹조가 가득한 낙동강 유역과 보가 개방되어 자연이 회복되었던 금강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마치 최승호 감독이 꿈꾸는 4대강의 자연화가 일어난 뒤의 모습처럼 보인다.
4대강 사업 이전의 강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강은 원래 모래강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 때 무려 4.6억t의 모래를 파버렸다. 화강암이 부서져서 생성된 모래에는 훌륭한 기능이 있다. 수질을 정화하는 데 탁월하고 홍수가 발생했을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강에서 모래를 다시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 PD 저널리즘으로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고 진실을 추적해왔다. 앞으로 최승호 감독의 저널리즘은 어디로 향할 예정인가.
이젠 나이도 꽤 많이 들었다. 그래도 4대강 문제만큼은 놓을 수 없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이 문제만큼은 진실의 끈을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