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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화계에 잇따르는 검찰 ‘구형’의 비보, 정윤석 감독, 원주 아카데미의 친구들 실형 위기
이우빈 2025-07-25

서부지법 폭동 기록한 정윤석 감독, 원주 아카데미의 친구들 실형 위기

7월7일 검찰이 정윤석 감독에게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오는 8월1일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정윤석 감독은 <논 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사회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정윤석 감독은 지난 1월19일 일어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일부 극우 성향 세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 집행 및 구속영장 발부에 반대하며 법원을 습격한 사건. 이하 서부지법 사태)를 촬영하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곧바로 검찰은 정윤석 감독을 현장의 폭도들과 함께 ‘특수건조물침입’ 죄목으로 공동 기소했다. 검찰이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려던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을 63명의 피고인 중한명으로, 실제 폭동을 일으킨 용의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공동정범’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에 7월21일 국회에선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기록한 정윤석 감독 무죄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계원,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등이 공동주최했고 언론개혁시민연대, 단체 ‘블랙리스트 이후’ 등이 참석했다. 조계원 의원은 “검찰의 칼날이 예술가의 양심을 겨누고 역사의 기록을 범죄로 둔갑”시키려 한다며 “정윤석 감독이 차가운 법정 대신 우리 사회의 진실을 담는 카메라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7월21일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기록한 정윤석 감독 무죄 촉구 기자회견’ 현장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무효인가?

정윤석 감독의 구형 사례는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실형이 선고된다면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무효함을 남기는 판례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2022년부터 시행된 법안이다. 제6조 1항에 의하면 “이 법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하여 다른 법률보다 우선하여 적용”해야 하며, 제7조 1항에 의하면 “예술인은 자유롭게 예술 활동에 종사할 권리와 예술 활동의 성과를 널리 전파할 권리”를 가진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시행 이후 아직 판례가 생기지 않은 법률이다. 정윤석 감독의 재판 결과가 이후 예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주요 판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에 정윤석 감독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기반으로 계속하여 무죄를 주장했다. ‘예술인 복지 법’에 의해 정부에서 인증하는 예술활동증명서를 제출하여 공인된 예술인임을 증명했고, 다수의 탄원서를 통해 실질적인 활동 이력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7월14일 JTBC 보도국 관계자도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정윤석 감독은 전했다. 정윤석 감독을 처벌한다면 예술계와 언론계 전반의 위축을 부를 수 있기에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이었다. JTBC 취재진 역시 서부지법 사태 당시 법원 내부를 촬영, 보도한 뒤 특수건조물침입 혐의 피고발장을 접수했으나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처리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은 것이다.

반면에 정윤석 감독은 예술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정윤석 감독은 JTBC가 방송한 <특집 다큐 ‘내란, 12일간의 기록’ >에 자신의 촬영 영상을 제공하며 촬영의 예술적 공익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7월 21일 국회의장실 공보기획실 관계자도 정윤석 감독이 그간 예술인으로서의 공공적 책임을 위해 진행했던 국회와의 협업 과정을 근거로 들어 무죄 선고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등도 탄원으로 합세했다. 무죄 탄원 연명엔 지난 4월 박찬욱 감독 등 2781명, 시민 1만1831명이 참여했으며 구형 이후 7월 9~21일 동안 이어진 연명엔 총 54개 단체와 1만108명의 시민이 이름을 올렸다.

재판 과정엔 ‘특수건조물침입죄’의 성립 여부가 쟁점이다. 특수건조물침입죄는 특정인이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였다는 전제가 있어야 적용된다. 정윤석 감독은 “검찰에게는 폭도로, 나머지 공동피고인들에게는 ‘빨갱이’라고 공격받는 이상한 상황”이라며 본인에게 단체·다중의 위력 행사라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상황을 밝혔다. 다만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 추가 기소된 피고인들의 재판 결과가 공개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타인을 폭행하고 법원 내에 진입했음에도 다중의 위력을 행사하진 않아 특수건조물침입죄가 성립되지 않은 판례가 나타났으나, 대신 다른 죄목으로 징역 1년2개월 수준의 유죄가 판결된 것이다. 정윤석 감독은 “만약 일반건조물침입죄로 내 죄목이 변경되어 판결된다면 더 큰 문제일 것”이란 우려를 표했다. 의도적으로 유죄를 판결하려는 재판부의 목적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현재 재판부는 관련 사건에 초범에게도 평균 양형 이상의 실형을 판결하며 사법기관을 향한 직접적 공격에 대해 엄격한 처벌 기조를 보여주고 있다. 정윤석 감독은 ”정부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감독으로서 보기에 검찰의 기소부터 명백한 국가 폭력이자 예술가에 대한 국가기관의 권리 침해”라는 견해를 전했다. 덧붙여 그는 “기록은 나의 정체성이다.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판결이 난다면 당연히 항소할 것”이라는 이후 계획을 밝혔다.

극장을 지키던 이들도 실형 구형

7월14일 아친연대가 주최한 원주시의 비민주적 행정 규탄 기자회견 현장. - 사진제공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강원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반대하던 시민단체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이하 아친연대) 소속 활동가 등 24명의 시민도 특수 건조물침입을 비롯한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등의 위반 혐의로 실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2023 년 원주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아카데미 극장 활용방안’을 근거로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했다. 이에 아친연대 등 시민단체와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원주시가 극장 철거에 대해 민주적 절차와 충분한 숙의를 펼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꾸준히 철거 반대 의견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활동가들을 향한 실형 구형과 오는 8월11일 열리는 선고 공판이다.

아친연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아카데미 극장 보존 활동을 이어왔던 관계자 A씨는 징역 2년을 구형받았으며, 그외에도 아친연대 주요 활동가들에겐 특수건조물침입죄로 비교적 무거운 실형이 구형됐다. 최은지 아친연대 대표는 “극장이 철거됐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진 않았다. 지난 투쟁과 이어질 법적 문제를 겪으며 배운 바를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운 법안 발의, 조례 개정 촉구와 관련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7월16일부터 진행된 ‘아카데미 극장 철거 저지 시민 24인 실형 구형 반대 탄원’엔 현재 26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아친 연대는 매주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공동 집회 행진 등으로 구형에 대한 규탄을 진행할 예정이다. 영화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형 사태’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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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아카데미의친구들 범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