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스튜디오큐브는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스튜디오다. 국내 최초로 중대형 스튜디오들을 집적한 시설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7년에 설립한 공공촬영시설이다. 공간 크기는 670평부터 1138평까지 다양하며, 실내 수상 촬영이 가능한 수조 스튜디오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 운영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영상 제작 환경의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11월 정식 개관을 목표로 버추얼 스튜디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스튜디오큐브를 찾아가 그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성심당과 카이스트, 꿈돌이의 인사를 받으며 도착한 스튜디오큐브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고개를 한껏 들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뙤약볕에 반사돼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내부로 들어서기 전, 길고 커다란 초록색 칠판 같은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 56.7m, 세로 11.7m 크기의 야외 크로마키가 설치된 다목적 촬영장으로, 다양한 VFX 소스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다만 설치된 지 오래돼 리모델링을 바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크로마키 뒤편에 붙은 별도의 건물은 미술팀을 위한 작업실이다. 장광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기반조성팀 팀장은 “스태프들이 이곳에서 세트를 직접 제작한다. 완성된 세트는 지게차를 이용해 바로 내부 스튜디오로 옮긴다”라고 설명하며 동선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걸어보니 미술센터와 내부가 매우 가까워 이동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안전모를 써주시고요.” 장광진 팀장을 따라 버추얼 스튜디오를 공사 중인 D관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로봇 같은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했다. 무수한 전선이 연결돼 푸른 작동 불빛을 일제히 뿜어내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자 발열이 느껴져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로 60m, 세로 8m 크기의 초대형 LED 월의 뒤편이었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보니 공간이 제법 여유로웠다. “즉각 수리와 수시 점검이 가능하도록 사람 키와 동선을 고려해 설계했다”(장광진)라는 설명이 바로 체감됐다.
뒤편에서 내려와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이 환해졌다. 양면과 천장이 모두 하얀 LED 월로 뒤덮여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현장에서는 버추얼 스튜디오 구축을 맡은 MBC C&I 작업자들이 LED 패널을 부착하고, 작동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발열을 잡기 위한 공조 설비 시공도 한창이었다. 현재 전체 공정률은 약 70%. 8월까지 구축을 완료하고 11월 정식 개관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실 스튜디오큐브에 버추얼 스튜디오는 상당한 도전이다. “이 정도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일해본 관리자도, 촬영해본 스태프도 없기 때문”(장광진)에, 일단은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실사용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고자 시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드라마 및 영화 제작사 3곳을 선정해 계약 기간 동안 공간을 무료로 대여하고, 장비와 기술 인력도 함께 지원할 계획이다. 높은 대여료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한다면 수요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버추얼에서의 촬영이 후반부 추가 VFX 촬영보다 배우의 몰입도가 높고, 해외 로케이션에 비하면 저예산으로 다채로운 장면을 구현할 수 있다.”(김재동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기반조성팀 과장) 실제로 버추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배경 에셋 제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광화문, 인천공항, 지하철역, 동호대교 같은 도심 랜드마크는 물론, 고구려·백제·신라 궁정 등 역사적 공간까지 다양한 배경을 에셋으로 구현해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다. “왕이 있는 궁궐 장면도 세트를 옮기지 않고 배경만 바꾸면 바로 다른 장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장광진) 최근 뮤직비디오 감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과거엔 스크린 한계로 짧게 끊어 촬영해야 했지만, 이제는 카메라 워킹에 맞춰 긴 시퀀스를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스크린에 담기는 영상 표현의 폭이 확실히 넓어졌고, 천장까지 LED 월이 설치되어 있어 조명 없이도 입체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장광진) 새로운 시도와 상상이 가능한 제작 환경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스튜디오 B에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마룻바닥 같은 공간이 펼쳐졌고, 층고가 높아 고개를 한껏 치켜들어야 했다. 조명 배튼과 세트 배튼, 저 멀리 크로마키가 눈에 띄었고, 바닥은 연식에 비해 반질반질했다. “촬영 후 반드시 청소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항상 청결하게 유지된다”(장광진)는 설명이 뒤따랐다. 스튜디오큐브는 버추얼 스튜디오로 전환된 D관과 수조 시설인 M관을 제외한 A, B, C, E관을 기본형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다. 이중 A관이 1136평으로 가장 크고, B관은 813평, C와 E는 각각 767평과 290평 규모다. 시사실, 대기실, 회의실, 연습실, 의상실, 식당 등 부대시설도 고루 갖춰 다양한 제작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40여명의 내부 관리자들이 운영에 힘쓰고 있지만 손님맞이는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는 거의 비어 있었고, 하반기도 아직 다 차지 않았다. 지금 협의 중인 제작사가 있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무산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확한 수치는 말하기 어렵지만 하반기 공실률은 절반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김재동) 내년 상반기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전후에는 모든 일정이 취소되면서 사실상 공실이 대부분이었다.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이후 약 2년 반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됐지만 최근 다시 제작 편수가 줄면서 공실이 늘고 있다”는 게 장광진 팀장의 설명이다. “팬데믹 이후 OTT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제작 편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던 시기에는 기존 스튜디오들의 가동률이 매우 높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제작 편수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시점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스튜디오 공급이 급증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나는, 시장 논리로 보면 수익 구조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제 논리대로라면 수요 감소에 따라 가격을 낮춰야 하지만 공공시설인 스튜디오큐브는 자체 대관 수익으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구조여서 가격 인하가 쉽지 않다. “시설 운영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 요금이 높게 책정되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국가의 운영비 지원 규모가 확대와 소재지역의 지자체인 대전시 또한 서울시의 사례처럼 세금 감면 같은 지원을 병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가 지원으로 운영예산이 추가 확보되고 세금 감면으로 인해 운영비 지출이 줄어들게 된다면, (민간 스튜디오와 달리 수익 시설이 아니므로) 적은 수익으로도 시설 운영이 가능해져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는 제작자들에게 제작비 부담의 경감과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가 될 것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애초에 이 스튜디오가 만들어진 목적이기도 하다.”(김재동)
스튜디오큐브의 대표작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전 시즌이 바로 스튜디오큐브에서 촬영됐다. 미로 같은 복도와 입체적인 계단, 구슬치기·달고나·줄다리기·징검다리 등 다양한 게임 장면이 이 공간에서 펼쳐졌다. 어디에서도 내부가 보이지 않아 보안에 최적화된 스튜디오큐브는 스포일러 방지를 특히 중요시한 <오징어 게임>팀의 높은 만족을 이끌어냈다고. 이외에도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와 영화 <1987> <인랑> <창궐> 등이 이곳에서 촬영했다. 곧 공개될 작품으로는 김병우 감독의 <대홍수>와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