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을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F1 더 무비>로 돌아온다. 두 영화에서 이어지는 공통점은 베테랑과 루키가 팀을 이루고, 기계와 인간의 신체적·기술적 한계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데 있다. 조셉 코신스키의 영화는 극한의 물리적 상황을 돌파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여전히 매혹되어 이를 드라마와 영상으로 풀어낸다. 지상에서의 고속주행에 따라 발생하는 다운포스를 <F1>에서 어떻게 카메라를 통해 구현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 각본가 에런 크러거와 다시 만나 <F1 더 무비>의 스토리를 공동 작업했다. 포뮬러1(이하 F1)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코로나19 시기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F1: 본능의 질주>를 보게 됐다. 시즌1에서는 우승 팀이 아닌 맨 끝 순위에 있는 팀들에 집중하더라. 고전을 거듭하는 팀, 한번도 이기지 못한 팀의 이야기, 그리고 맨 뒷자리에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듣는 경험 자체가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신인 드라이버가 성능이 떨어지는 차를 몰고 마지막 순위 팀에 속해 있다는 건 자신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일 거라 생각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영감이 시작됐다.
-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제작에 참여했다. 사운드디자인 등 기술 자문 역할도 맡았다는데.
루이스에게 “지금까지 나온 레이싱영화 중 가장 진짜 같은, 가장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루이스는 F1 월드 챔피언 자리를 7번이나 차지한 사람인 만큼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강조하고 싶은 건 그가 이야기 구성 측면에서도 기여했다는 점이다. 루이스는 시나리오 개발에 참여하면서 드라이버들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레이싱을 하는지, 그들의 정신적, 철학적 동기 같은 더 깊은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소니 헤이스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루이스의 통찰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
- F1의 공동 제작으로 전례 없는 접근이 가능했다고. 실제 그랑프리에서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영화에서 관중석에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 그랑프리 관객이다. 2023년 런던 그랑프리부터 다음해 12월까지 F1 그랑프리 주말에 촬영을 진행했는데 F1측에서 연습 주행과 예선 세션 사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서킷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덕분에 브래드 피트와 댐슨 이드리스가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다가 트랙에 진입해 관중이 있는 상황 그대로 장면을 촬영했다. 촬영 시간이 극히 짧았기 때문에 압박감이 컸다. 복잡하고 세밀한 계획이 필요했지만 결과물은 충분히 그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 APXGP팀의 레이싱카는 메르세데스와의 협업 결과다. 모든 것이 실제처럼 보여야 한다는 당신의 연출 철학과도 부합한다.
메르세데스가 이 영화를 위해 총 6대의 차량을 제작해주었다. 영화에 나오는 차량은 단순 경주용이 아니라 카메라 리코더와 안테나, 카메라 마운트를 탑재해야 했기 때문에 특별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메르세데스의 디자이너들이 이 부분을 도와주었고, 차량 구조 안에 촬영 장비를 통합해 설계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메르세데스팀의 수장인 토토 볼프가 공장을 개방해 실제 F1 차량을 설계한 엔지니어들과 직접 영화에 등장할 차량 설계를 논의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건 고성능의 레이스카인데 촬영 장비가 내장되어 있다는 점만 실제와 다를 뿐이다.
- 브래드 피트와 댐슨 이드리스는 드라이버를 연기하면서 헬멧을 착용한 상태로 연기에 임한다. 눈동자와 목소리에 의존한 연기는 배우에게도, 연출자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걸 ‘헬멧 연기’라고 불렀다. <매버릭>에서 이미 한차례 헬멧 연기를 촬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배우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투명 바이저를 개발했다. 헬멧을 쓰고 나면 카메라는 오직 눈만 볼 수 있으니 그런 상황에서는 연기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 두 배우와 헬멧 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댐슨과 브래드는 둘 다 이런 제약에서 잘 적응해 트랙 위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 레이싱카 한대에 아이맥스급 카메라를 7대나 설치했다고. <탑건: 매버릭>도 혁신적이었지만 <F1 더 무비>에서 기술적으로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 궁금하다.
<탑건: 매버릭> 때는 조종석 안에 소니 카메라 6대를 설치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이번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니와 긴밀히 협업해 훨씬 작고 가벼우면서도 아이맥스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했다. 수개월에 걸쳐 소니와 함께 작업한 끝에 최종적으로 24대 정도의 프로토타입 카메라를 제공받았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촬영장에선 코드명 ‘카르멘’이라 불렀다. 카메라 마운트도 소니와 새로 제작했는데 촬영 중 에도 카메라를 움직일 수 있게 설계했다. <탑건: 매버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불가능했지만 <F1 더 무비>에서는 이 기능 덕에 카메라가 액션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이게 이번 작품의 큰 기술적 혁신 중 하나다.
- 레이싱 장면 촬영 중 카메라 패닝을 지시하던데 업그레이드된 카메라 기술 장비는 지상 액션 연출에서 어떤 환경을 열어주었나.
액션의 흐름을 따라가는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우의 얼굴에서 다른 레이싱 차량이나 상대 드라이버쪽으로 카메라를 팬한 뒤 다시 배우에게로 돌아오면 훨씬 긴 테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 마치 사람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카메라도 그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는 거다. 그 결과, 화면은 훨씬 더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고, 기존에는 시도할 수 없던 방식으로 시퀀스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매력적인 기술이지만 차량이 예정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순간에 맞춰 정확히 팬을 지시해야 했기에 꽤 긴장감 있는 작업이었다.
- <탑건: 매버릭>에서 작은 카메라 유닛이 조종기 안에 탑재되어 있었다면 이번에는 차량 외부처럼 노출된 환경에 놓였다. 작은 카메라 유닛이 거친 외부 환경을 어떻게 견뎠는지 궁금하다.
놀랍게도 단 한번의 고장도 없었다. 주행 중에 발생하는 중력가속도나 충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차량이 시속 180마일(약 290km)로 달리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한번도 멈춘 적 없다. 그 점이 정말 인상 깊었다. 문제가 생긴 건 오히려 렌즈쪽이었다. 도로나 트랙에서 튄 자갈이나 모래로 인해 렌즈가 손상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렌즈가 꽤 많이 망가졌지만 카메라 본체는 정말 튼튼했고 완벽하게 작동했다.
- LOTUS팀 시절의 젊은 소니 헤이스를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촬영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미란다와 주연배우의 재회 때문인지 이 장면은 아주 인상 깊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는 완전히 디지털로 만든 얼굴을 사용했다. 당시로선 큰 혁신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디지털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브래드 피트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원했다. ‘메타피직스’(Metaphysic)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했는데 내 기억으로 1990년대에 그가 출연한 <흐르는 강물처럼>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걸 바탕으로 현재의 영상을 분석해 브래드 피트를 1990년대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나도 처음 사용해본 기술이었는데 바라던 장면을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