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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기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이들은 ‘어른의 어른’, 최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남선우 사진 백종헌 2025-06-05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서 22회째 축제를 함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정부·기업·시민사회의 협동을 이끌어내는 실천공동체로서, 환경재단은 영화의 쓸모를 믿는다. 한편의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기후 위기를 인식시키고, 개인의 역할을 일깨운다면 내일은 더 푸르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열 이사장은 “좋은 환경영화에는 한 사회의 전 분야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40여년간 환경운동을 해오며 영화제가 그 배움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애써온 그에게 지난날의 소회와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물었다.

- 기후·환경 문제처럼 복잡한 주제는 영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개최해왔다. 그 시작은 어땠나.

2002년 환경재단을 설립하면서 계획한 첫 사업 중 하나가 영화제 개최였다.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쳐 2004년에 제1회 영화제를 실시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1.3.6>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영화를 제작해 제1회 개막작으로 튼 기억이 난다. 옴니버스 중 한편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웃음)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세계 142개국을 대상으로 환경지속성지수를 평가해 발표했는데, 우리나라가 136위를 차지했다. 거기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2002년에 월드컵 4강까지 올랐던 나라가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취약했다.

- 회를 거듭하며 환경영화제가 현실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보나.

한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제가 말만 그렇게 하고 사례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2017년 제14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경선 장편 대상을 수상한 <플라스틱 차이나>가 떠오른다. 왕주량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이 모이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작품이 중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쳐 정책이 바뀌었고, 중국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하던 각 나라에도 영향을 줬다. 그런 변화를 경험한 감독을 몇년 후 다시 초청했는데, 그가 딸을 데리고 왔다. 자신의 영화가 이렇게 파급력이 있을 줄 몰랐다며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하더라. 영화제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공감했다.

- 환경영화제는 ‘환경’을 주인공 삼은 만큼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된 운영 방침이 있을 텐데.

지금은 대부분의 영화제가 그렇게 하지만 환경영화제는 초창기부터 탄소중립영화제를 꿈꾸며 실물 필름이 오가게 하는 대신 온라인 출품을 지향해왔다. 영화제 기간 동안 발생하는 탄소 발생량을 상쇄하기 위해 맹그로브 나무를 심기도 한다. 맹그로브는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할 뿐 아니라 바다나 강변에서 자라기에 생태계의 오염물질을 정화할 수 있고, 뿌리에서 어패류가 살아갈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관객이 낸 영화 티켓 값이 방글라데시 순다르반 지역의 맹그로브 식재를 위해 기부되기도 했다.

- 영화제의 행보에 공감하는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환경재단의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어느덧 15회까지 진행한 그린보트를 소개하고 싶다. 크루즈를 타고 동아시아를 항해하며 환경에 관한 강의를 듣고, 환경을 고민하는 명사들과 만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대학교 3학년 때 한 학기를 휴학하고 일본의 피스보트를 탄 딸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것이다. 딸이 110일간 배를 타고 여러 도시를 체험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소심했던 아이가 적극적으로 변해 많이 놀랐다. 환경재단도 환경문제에 있어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일본 피스보트의 대표를 만났다. 그렇게 두 비정부 기구가 협업해 2005년부터 ‘피스&그린보트’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18년부터는 환경재단이 독자적으로 그린보트를 운영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4년간 출항하지 못하다 드디어 지난 1월 2400명이 배를 탔다. 모두들 텀블러를 챙겨왔고 일회용품을 쓰는 분이 하나도 없더라. 우리가 사전에 공지한 바가 지켜져 뿌듯했다.

- 바다 위에서 환경을 고민할 때는 땅 위에서와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나.

배를 타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느끼게 된다. 인간으로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기분이 사라진다. 망망대해에서 바람이 한번 불면 육지에서 바람을 맞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 것이다. 대신 배에서는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도 그에 대한 청중의 몰입이 높아진다. 환경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수소로 가는 배가 등장하는 등 조금 더 친환경적인 배가 나올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수용하면서 그린보트를 계속 운영해나가고 싶다.

-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 이야기>와 같은 저서를 집필해 오랫동안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기후·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훨씬 똘똘하다. 독후감 대회를 연 적이 있는데 보름 만에 5천통의 독후감이 들어왔다. 시상식에 수상자들의 가족을 포함해 400명이 온 기억이 난다. (웃음) 내 책을 본 어린이들에게 편지도 참 많이 받았다. 그들이 자라서 환경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온다. 한번은 영화제 기간 중 만난 자원활동가 여학생이 초등학생 때 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아 환경과학을 전공 중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줬다.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느껴 그때부터는 어린이들의 편지에 간단하게라도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내 책을 읽었다는 분들 중 50대도 있다. 언젠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새로운 책을 낼 생각이다.

-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이틀 뒤 영화제가 개막한다. 새로운 정부에 기대하는 환경 정책 방향성이 있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후·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순수를 간직한 어린이들을 ‘어른의 어른’이라 여기며 이 요구를 진지하게 여겼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헌법 1조에서부터 기후·환경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각계 인사 33명과 헌법 1조 개정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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