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잠들던 곳 Where We Used to Sleep
마티아스 뵈를레 / 루마니아 / 2024년 / 81분 / #화석연료
마티아스 뵈를레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잠들던 곳>은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 제아머 나와 그곳에 사는 발레리아 프라차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아머나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마을로 천명 가까이 되는 주민이 살던 곳이다. 비극은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산업화를 진행한 후 시작된다. 로시아 포이에니 광산에서 구리를 무리하게 채굴한 여파로 마을이 오염수에 수몰되는 환경 재난이 생긴 것이다. 수많은 주민이 마을을 떠난 후에도 발레리아는 어떻게든 이곳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익스트림 롱숏으로 제아머나 마을의 아름다움과 함께 오염수의 공포를 체험케 하는 압도적 영상미만으로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거기에 차우셰스쿠 집권기의 푸티지와 풍경, 발레리아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환경 재난이 개개인의 생활에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다룬 구성도 흥미롭다.
블랙 스노우 Black Snow
알리나 시몬 / 미국 / 2024년 / 100분 / #화석연료
시베리아의 외딴 탄광도시에 어느 날 검은 눈이 내린다. 방치된 옛 광산에서 발생한 석탄 가루와 메탄가스는 동네를 뒤덮고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평범한 지역 주민이자 가정 주부였던 나탈리아 주브코바는 환경오염의 현장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가짜 뉴스를 만들어 현실을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주민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나탈리아가 바랐던 것은 저널리스트, 혹은 환경운동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아닌 보통의 삶이었다. 그녀는 조롱과 혐오, 그리고 협박을 감수해야 하는 위태로운 삶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블랙 스노우>는 무분별한 화석연료 개발 산업이 초래한 환경오염의 실태와 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을 포착한다. 나아가, 정부와 시스템의 부조리한 민낯을 응시한다.
어둠 속의 행진 Marching in the Dark
킨슈크 수르잔 / 인도 / 2024년 / 108분 / #인권 #농업 #도시
농부였던 남편을 잃은 산지바니는 지역 과부들로 구성된 지원 모임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이는 곧 지역사회 내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확장된 다. <어둠 속의 행진>은 인도의 심각한 농업 위기 속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지지와 연대를 통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수십만명의 농부가 목숨을 끊은 마하라슈트 라주 라투르 지역을 배경으로 경제적 압박과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고립된 여성들이 심리적 회복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감각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킨슈크 수르잔 감독은 여성들의 일상과 목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기록하며, 그들이 각자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는 오늘날 농업 위기의 정치적, 사회적 뿌리를 고발하는 동시에 여성들이 앞장서 만들어가는 변화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마천루 아래에서 Obedience
웡시우퐁 / 홍콩 / 71분 / #인권 #농업 #도시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고자 미친 듯이 쌓아 올리는 고층빌딩 아래로 철거 직전의 낙후된 건물들이 고개를 조아린다. 재개발이 확정된 홍콩의 홍훔지구는 빈자의 퇴거를 호시탐탐 노리는 부자들의 군침으로 가득하다. 웡시우퐁 감독의 <마천루 아래에서>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만연한 홍훔지구에서 폐기물을 주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자들의 자취를 좇는 다. 악취를 참아가며 굽은 등으로 수레를 끄는 노동의 대가는 5달러 남짓. 성한 구석 없는 몸을 이끌고 자본주의의 분해자 역할을 감당한 것치고는 홀대에 가까운 돈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생계와 존엄을 위해 여전히 폐기물을 줍는다. 정작 불합리한 착취의 사각지대를 만든 자본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방대한 건설 폐기물을 도심 속에 토해낸다. 영화는 개발의 토사물이 증식하는 광경을 담으며 자본주의 생태계의 모순을 고발한다.
여우와 토끼: 숲을 구하라 Fox and Hare Save the Forest
마샤 할버스타드 /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 71분 / #가족과함께보는환경영화
<여우와 토끼: 숲을 구하라>는 올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에게 다정하게 손 내밀 영화다. 네덜란드 애니메이션으로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이 작품은 위기에 처한 자연과 소중한 우정을 구하려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동물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던 깊은 숲속, 부엉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여우와 토끼는 사라진 친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고, 그 여정 끝에 커다란 호수로 변해버린 숲을 발견한다. 이 혼란의 중심엔 자신만의 댐을 완성하고 흡족해하는 비버가 있었다. 우쭐해하는 그의 성취는 모두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온다. 스톱모션의 포근한 질감으로 그려진 영화는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자본과 개발의 논리, 그리고 그 안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우정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뒤코뷔, 친환경 대작전! Ducobu passe au vert!
엘리 세문 / 프랑스 / 78분 / #가족과함께보는환경영화
취미는 게으름 피우기고 특기는 커닝하기인 개구쟁이 소년 뒤코뷔. 새 학기를 맞아 까탈 스러운 선생 라투쉬의 눈을 피해 획기적인 방법으로 커닝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에 그치고 만다. 그런 뒤코뷔의 레이더에 환경 영웅 리타 그린버그의 이야기가 포착된다. 지구를 살린다고 말하면 학교를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마음에도 없는 환경운동을 계획한다. 거짓말로 시작한 계획이 들어맞자 뒤코뷔의 환경운동가 행세는 지역 광장 개발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에 이르게 된다. 때론 주객이 전도된 선행이 내면을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특히 환경운동의 본질은 내가 밟고 있는 땅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선한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프랑스 코미디언 엘리 세문의 <뒤코뷔, 친환경 대작전!>은 지구를 살리는 경험의 중요성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