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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큐멘터리를 범죄로 만드는 나라에서 - 서부지법 폭동 기록한 다큐멘터리스트 정윤석, 기소 이후를 말하다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5-05-02

정윤석의 카메라는 지난 20여년간 한국 사회의 폭력과 죽음, 낙인의 이면을 비춰왔다. <논픽션 다이어리>(2013)에서 지존파 사건을 경유해 국가 형벌의 모순을 짚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로 청년세대와 레드콤플렉스를 탐색했으며,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의 상흔과 광장의 목소리를 끈질기게 기록해왔다.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의 상징적 기수라 할 수 있는 그가 2025년 1월19일,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당시 서울서부지방법원(이하 서부지법) 현장을 영상 취재하는 과정에서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창작자의 의도와 책무를 간과하고 이를 범죄화하는 검경의 처사에 박찬욱, 김성수 감독을 비롯한 2,781명의 영화인들이 탄원서에 연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언론 시민연대도 뜻을 모으고 있다. 정윤석은 이제 예술가와 피고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 속에서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 우리는 단지 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변론이 아니라, 카메라의 응시로써 사회적 폭력에 저항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목소리 앞에 선다.

- 폭동을 기록하려는 예술가를 폭도로 몰아간 무리한 기소다. 같은 시간 법원 7층까지 올라간 모 언론사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2차 공판에서 재판부가 검찰에 ‘그럼 그 기자는 입건이 안된 것이냐’라고 질의했는데.

검찰은 “저희는 기소 계획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JTBC 기자의 보도상 수상 소식은 서부지법 폭동이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방증이고 헌법이 인정하는 언론의 자유가 인정받은 사례다. 그러니까 기소가 안된 것 아닌가. 바로 같은 논리에서 예술가 역시 역사의 현장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기록할 권리를 존중받는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

- 지난 2차 공판에서 처음으로 공소 취소를 요청했다.

4월4일 탄핵 전까지는 내 입장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 취소까지 돼버리니까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서부지법 폭동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될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2월26일에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유일하게 석방된 좌파 성향 한명”이라 언급하는 등 대놓고 낙인 찍을 때에도 침묵했다. 그래서 기소까지 당했나 하는 일말의 후회도 든다. 특수건조물침입은 벌금형이 없는 중죄로 무조건 징역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침입 여부를 두고 다툰다. 지난 기일에 처음으로 공소 취소를 주장한 것은, 나로서는 그 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이다. 폭도가 아닌 것을 알면서 폭도로 만든 공소 논리 자체가 잘못됐는데 왜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된 논리에 맞추어 증명해야 하나. 그렇기에 재판정에서도 “제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유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 검찰 반응은 어땠나.

내가 공소 취소를 요구하니 재판부는 검찰쪽에 의견을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피고인의 독자적인 주장일 뿐”이라 일축하면서 오히려 내게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2차 가해한 유튜버가 누구냐”고 따졌다. 담당 변호인이 지난 기일 때 의견서로 이미 제출했다고 답했고 재판관도 이미 해당 내용을 읽었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경찰의 1차 조서만 살펴봐도 상식적으로 나를 기소한다는 게 말이 안되지만, 재판 중 변호인 의견서를 읽지도 않는 태만함에 적잖이 놀랐다(정윤석 감독의 불구속 처분 이후 보수 유튜버 라이브, 극우 매체 등에서 정윤석 감독을 좌파 프락치로 선동, 감독과 영화 출연진의 신상 정보를 비롯한 이른바 좌표 찍기가 행해졌다. 정 감독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 촬영 중 극우 커뮤니티에 의해 스태프들이 위협받기도 했다.-편집자).

- 기소인만 63명으로 소송 기록이 다른 피고인에 의해 유출되기 쉽다. 재판 분리 신청에 대한 입장은.

명예훼손과 온라인상 집단 괴롭힘 문제 외에도 사건 번호를 따로 받아 판례를 분리하는 것의 의미가 있다. 지금은 63명의 조직 범죄로 묶여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2022년부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었지만 그동안은 처벌 조항이 부재해 사실상 상징적으로만 존재해왔다. 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7조(예술의 자유의 침해 금지 조항) 그리고 제6조(이 법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하여 다른 법률보다 우선하여 적용한다) 등이 적용된 판례를 단독 판결문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래야 이 법에 실효성이 생기고 동료 예술가들이 또다시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통과해야 할 사안은 표현의 자유 문제다.

- <씨네21>과의 인터뷰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개봉 이후 8년 만이다. 계엄 해제 직후 카메라를 들기까지 어떻게 지냈나.

작품이 아니라 송사로 인터뷰한다는 게 민망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진리에게>를 2023년 11월에 공개하고 이후 조금 쉬어가는 중이었다. 2019년 촬영 중에 배우가 돌아가셨고, 이후 그의 기일이 부산국제영화제 즈음이라 마지막으로 고인이 남긴 말들이 마땅한 주목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넷플릭스, SM과 함께 몇년간 유가족을 설득해왔다. 여성 인권변호사 두분과 유가족에게 편집본 자문을 받았고 연출료는 모두 기부했다. 그러자 한번은 진리씨 어머님이 의아해하시더라. 소득 없는 일을 왜 계속 끌고 가냐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뭐 하는 사람”인지 물으셨다. 내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 살아 계실 때 좋은 영화 만들겠다고 약속을 드렸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라고 했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내가 다룰 수 있는 논픽션의 주제는 일단락된 것 같았다. 작가로서의 한 챕터를 마무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진리에게> 공개 전후로 정치 뉴스를 완전히 멀리했다. 그래서 계엄 직후 놀람이나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미친 듯이 검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여의 타임라인을 뒤늦게 추적하는 사이에 나와 계엄 현장 사이에 어떤 거리감이 생겼다. 비유하자면 외신기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달까. 한쪽은 5·18과 계엄의 트라우마가 있고 한쪽은 탄핵의 트라우마가 있는데 어떻게 상황이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 이 지경이 되도록 정치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아 현장에 나가서 직접 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계엄이 해제된 당일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카메라 남는 거 있냐, 하나만 빌려줘” 하고 오전에 카메라를 받았다. 그렇게 12월4일 국회에 가서 우선 깨진 유리창부터 찍기 시작했다.

- 지난해 12월4일부터 여의도 국회, 한남동 대통령 관저, 광화문 집회, 국회의원회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촬영을 이어왔다. 지난 1월19일 서부지법 점거 폭동 당시로 돌아가보자. 다큐멘터리스트 정윤석이 그날 그곳에서 본 것은 무엇인가.

서부지법 폭동은 여성에 대한 혐오이자 낙인 찍기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 SNS에 공유한 국민참여재판 신청 진술서에도 관련 내용을 썼다. 사안을 정확히 대하려면 19일에 폭력을 행사하며 판사 집무실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행동에 집중해야지, 경찰의 책임론 면피를 위해 조직범죄로 덩어리를 키워버리면 가려지는 것이 많다. 혐오범죄의 프레임으로 볼 때 차라리 극명해지는 지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위대는 특정 여성 판사를 지목하며 법원을 공격하고 색출에 나섰다. 거기에 성별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제일교회 지지자들은 위안부 소녀상을 테러하고 생존자들을 지속적으로 모욕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테러이자 반민주적인 혐오범죄다.

- <진리에게> 작업이 지금 정윤석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2008년 촛불 시위를 시작으로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 등 사회적 기록이 필요한 현장을 꾸준히 따라가며 응시해왔다. 이 푸티지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반드시 기록 자체가 필요하다는 책무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진리에게>를 준비하면서 빅데이터 조사에 긴 시간을 들였는데 한번은 구글 트렌드의 올해의 인물 검색 순위에 설리 배우가 오른 것을 알게 됐다. 장미 대선(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해였음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검색량이 3배 이상 많았다. 분석을 보니 검색량이 7월에 몰려 있어 의아했는데, 영화 <리얼> 때문이었다. 연관 검색어는 대부분 유출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설리는 영향력 있는 스타였지만 이 사안을 놓고 보자면 대규모 온라인 유저들이 한 여성 개인을 린치한 사건인 셈이다. <진리에게> 에 관해서 여기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미투 운동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해온 맥락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 언급해두겠다.

- 박근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을 모두 기록했다. 그사이 적층된 역사와 시민사회의 세대교체를 바라보는 입장은 어땠나.

2000년대 진보 진영의 중요한 화두는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노동문제, 빈부격차 등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광장은 여성의 문제를 드러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 내가 놓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반성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 탄핵 정국은 여성이 광장의 주체가 되는 시간이었다. <다시 만난 세계>, 응원 봉 집회, 동덕여대 깃발 등이 모여 광장의 여성들이 드디어 승리의 경험까지 도달한 순간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문제가 환기되는 시간을 거쳐온 10대가 이제 20대가 되었고, 그들이 정치의식을 가진 진보적인 주체로 거듭나 만든 변화를 목격했다.

- 계엄 직후부터 라이브, 쇼츠 등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들이 뉴스와 온라인을 도배했는데, 그 사이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고충은 없었나.

어느 현장이든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고 찍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전직 국회의원들도 인력을 따로 고용해 현장에서 유튜브 중계를 하는 시대다. 다들 스마트폰에 대고 혼잣말만 할 뿐 다 같이 모여 있음에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 모습이 어느 순간 디스토피아 만화의 한 장면처럼 기이하게 느껴졌다. 하루에 생성되는 정치 이슈는 제한적인데 적은 정보량을 갖고 라이브를 계속 돌리니까 점점 더 센 말, 가짜 뉴스, 인신공격, 혐오발언이 이어진다. 게다가 짧은 쇼츠는 포맷 특성상 모든 맥락을 제거해버리고 특정 관점만을 부각한다. 이를테면 가자 지구 전쟁을 두고 <CNN> 채널 쇼츠가 하마스의 폭격 이미지를 써서 놀랐다. <알자지라>의 쇼츠를 열면 피 흘리는 어린이들이 나온다. 나는 극장용 다큐멘터리영화에서 시작한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레코딩 기반이다. 미디어 플랫폼이 완전히 라이브 중심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이 아직 낯설고 이번 국회 촬영을 하면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스트가 설 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 부당한 수사 및 기소 과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개인과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했을 그간의 심리적 여정에도 주목하고 싶다.

작품으로 관객수로 만명을 못 넘어본 감독이 탄원서로 만명을 넘어서 일단 민망하다. (웃음) 현 상황에서의 정체성 문제는 내게 매우 중요한 테마다. 나 자신이 앞서 성장해온 궤적이 이미 경계적이었다고 할까. 미술계에선 영화감독이라고 하고 영화계에선 작가라고 불렸다. 내 영화 속 인물들도 자기 집단과 내면의 모순을 고백한 ‘내부고발자’들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형사님은 지존파의 형사 처벌 체계를 고민하면서 자기 안의 선악에 관한 윤리적 질문을 던졌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정근 사진작가 또한 자신이 정말 ‘종북인지 아닌지’에 대해 궁극적인 질문을 파고든다. <진리에게>에서 설리 배우는 “내 안에 꾹꾹이와 미친년이 모두 있다”고 했다. 내 안에 정체성의 질문이 있기 때문에 대상에 그러한 비유를 투사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픽셔너리한 감독이 아닐까. 논픽션을 소재로 차용할 뿐이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질문엔 일관된 측면이 있다. 어쨌든 이번엔 나 자신이 그 당사자가 돼버렸다. 재판은 OX 게임, 유죄 아니면 무죄다. 나에게도 자신의 스탠스를 정확하게 한쪽으로 가두는 작업이 요구된다. 한번은 재판 중계 방청에 참석했는데, 수감복을 입고 서 있는 사람들을 내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바라보고 있는지 같은 피고인의 일부로 보고 있는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영화인 기자회견이나 단체 소송 등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싸움에 직접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점에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당면한 싸움 앞에서라도 뒤늦게 소리내보려고 한다. 여러 사람이 지탱해온 오래된 운동을 자기화하고 싶지는 않다. 표현의 자유 운동은 시민사회, 영화인들 그리고 <씨네21>과 같은 매체들이 오랫동안 지켜보고 소리내온 것이다. 그래서 여러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많지만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가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재판정 안에서 원칙대로 싸우겠다는 입장도 변함없다.

- 탄핵 정국의 경험을 녹여낸 포토 에세이를 <씨네21>에 연재하기로 했다. 어떤 내용이 골자를 이룰까.

국회, 한남동, 서부지법, 헌법재판소 그리고 다가올 대선까지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현장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현 상황과 엮어 말해볼 수 있는 상징적인 영화를 다뤄보려고 한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서 배우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종군기자가 “폭력을 경고하려고 목숨 걸고 찍고 왔는데 세상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네요”라고 말한다. 그 회의감을 알겠다. 폭동을 찍었더니 폭도로 몰려서 기소되었잖나. 그러나 그 영화의 결말에도 나오듯이, 내가 선 전선에서 해결되지 않아도 이어질 새로운 제너레이션을 위해서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는 수밖에 없다. 선배들이 했던 싸움을 우리가 이어받았으니. 그래서 칼럼에선 재판의 결과보다 그 과정에 집중하고 싶다.

- 일련의 상황을 겪어내고 있는 지금, 역사의 현장과 재난 이후로 카메라를 들고 걸어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말해준다면.

세월호 참사 작업으로 유가족, 법의학자 등과 10년 이상 연락하고 지냈다. 그중 꾸준히 취재해온 한 아버님이 계신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인사라든지 이런 저런 문자를 보내도 10년 동안 한번도 답장해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난해에 찾아뵙고 올라오는 길에 한마디 문자가 왔다. “조심히 올라가세요.” 말하자면 그 문자를 받는 데 10년이 걸렸다. 하나의 여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면서 계속 가는 것. 그게 내 작업이었다.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세월호 참사를 모두 거쳐온 국립과학수사대 법의학자 선생님은 <논픽션 다이어리> 준비 때부터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왔는데 아직 그분이 나오는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처음 뵐 때만 해도 내가 이분의 발인까지 볼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러니까 기록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와 사명을 앞세워하는 작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계속 함께하는 일에 가까운 무엇이다. 물론 내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근이(박정근 사진작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3심까지 5년이 걸렸고 언론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그럴 때 찍을 것이 없어도 그냥 카메라를 들고 곁으로 가는 거다.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그가 이번에 내 1, 2차 공판을 모두 함께해줬다. 내게 다큐멘터리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다른 사람으로 채워넣는 것, 하나가 끝나면 또다시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서부지법 촬영 때 옛날 같으면 나도 7층까지 빠르게 올라갔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서부지법 앞에 새벽 3시43분에 도착했지만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약 1시간 반 동안 바깥에서 사람들을 살폈다. 건물 안에서 때리고 부수는 사람들, 밖에서 기자와 시민을 공격하는 사람들, 그리고 겁에 질린 시위대와 시민들이 그곳에 있었다. 경찰 버스 옆으로 사람들 데려가서 안심시키고 대화를 했다. 그들이 내게 해준 말들이 생생하다. 카메라 감추라고, 가방에 태극기라도 꽂고 있으라고 했다. 긴 시간 재난을 취재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고 죽음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했다. 카메라로 우선 찍기 전에 사람들과 더 많이 교감하고 싶다. 결과물이 언제나 영화일 필요가 없겠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요즘 들어 개인적으로 힘들긴 하다. 나이가 든 걸까? 20년 넘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찍는 동안 내 삶의 사회적 울타리를 제대로 짓지 못한 것 같다. 예술가로서나 개인으로서나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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