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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늘하고 현실적인, 숨 가쁘도록 생생한, <미스터 로봇> 이대희 감독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5-04-03

소녀와 로봇의 만남. 얼핏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평화로운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미스터 로봇>은 전작 <파닥파닥>의 서늘함을 갱신한 이대희 감독의 현실성 높은 잔혹 동화로 조형돼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근미래. 최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이목을 이끈 로봇 맥스는 K-로봇 인더스트리 쇼케이스 현장에서 돌연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고, 이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로봇 관리대 대원 한태평은 자신이 로봇의 몸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K-로봇 인더스트리의 부사장 강민은 형을 향한 오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조카 나나의 생명을 위협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미스터 로봇>은 많은 것을 증명한다. 시의성 높은 윤리의식 문제와 명확한 권선징악은 안정적인 몰입을 이끌고,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 설정과 다소 수위가 높은 장면들은 애니메이션의 입체성을 더한다. <미스터 로봇>이 실험하고 축적하고 이뤄낸 것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대희 감독을 만났다.

- 한태평과 나나는 일면식이 없는 타인이다. 처음 시나리오는 아빠와 딸로 출발했다고.

<파닥파닥> 이후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기획 단계부터 9년이 걸렸으니 구상 단계까지 합치면 12년이 걸린 셈이다. 그사이에 기획이 세번 바뀌었다. 원래는 아빠와 딸의 관계를 그렸는데 이 구도가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딸이 위험에 빠졌을 때 아빠가 구해주려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웃음) 그래서 의료용 로봇과 기억상실에 빠진 소녀 이야기로 바꿔보았다가 최종적으로 지금 버전인,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영화 <레옹>과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슬픔을 지닌 어른이 위기에 놓인 아이를 보며 자신을 대입하고 차마 그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는 바탕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아이를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가는 절절한 마음 같은 것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딸이 다쳐서 응급실에 달려갔던 나의 경험이 반영됐다.

- 나나는 기존 어린이 주인공과 사뭇 다르다. 로봇이 일중독 부모를 대신해 나나를 돌봐주는데 그 로봇들을 경시하고 협박한다. 순종하지 않는 어린이랄까. 아버지를 여의고 자기만의 외로움을 지녔지만 연민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피디님과 많이 싸웠다. (웃음) 보편적으로 어린이라고 하면 가엽게 여기고 연민을 품어야 할 존재로 생각한다. 사실 외부적으로 보았을 때 나나는 정말 불쌍하다. 부모에게 방치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는 나나를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일어설 줄 아는 인물이길 바랐다. 나나의 행동이 모두 주체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것도 어른들의 판타지다. 우리 딸만 보아도 어린아이들이 나나처럼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울고 무서워하고 매달리길 더 잘하지. (웃음) 하지만 나는 나나가 태평과 대등한 위치에 서길 바랐다.

- 로봇 관리대 대원인 태평은 영화 오프닝에서 문제 로봇을 사살한다. 대상은 로봇이지만 장면에 담긴 은유들이 수위 높게 표현되는데.

내가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서늘하게 다가오는 장면들. 처음에는 그냥 편집할까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경험상 이런 장면을 빼버리면 나다움과 멀어지더라. 중간에 여성 전사 로봇을 폐기하는 장면은 본래 더 길고 잔인했다. 지금도 다소 난이도가 있지만 원래는 더 힘든 장면이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 장면에만 방점이 찍힐 것 같아서 논의 끝에 반 이상을 잘라냈다. 여성 로봇이다보니 연출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여성을 향한 폭력을 연상시킬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미 제작한 장면을 반 이상 잘라내는 건 애니메이션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다. 10분 이상 지워지는 순간 제작비 몇 억원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장면에 맞춰 작업하는데 이 편집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이번 작품에 언리얼 엔진 기술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정확히 언리얼 엔진 기술이 무엇인가. 작품에 어떤 이점을 주었나.

언리얼 엔진은 미국 에픽게임즈에서 개발한 게임엔진으로 3D 영상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할 수 있다. 한번 렌더링해보기까지 속도와 비용이 많이 들었던 기존에 비해 작업 과정이 더 수월하고 빨라졌다. 그러다보니 비용을 줄이는 현실적인 이점부터 시시각각 새로운 실험을 접목해볼 수 있는 장점까지 작용했다. 이전이었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점이다. 언리얼 엔진은 특히 조명과 카메라 배치에 장점이 극대화되는데 예를 들어 극영화에 조명감독이 있는 것처럼 애니메이션 안에도 조명감독이 생겨났다고 보면 된다. 이 조명을 통해 묵직함을 표현하는 양감을 더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 있고 그에 따라 액션신을 좀더 현실적으로 구현해냈다. 또 강민이 화가 나서 나나를 잡아온 다음에 협박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강민의 눈동자에 나나의 팔이 비치면서 순간적으로 뱀의 눈처럼 보인다. 사실 이런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언리얼 엔진의 조명 덕분에 가능했다. 카메라워킹 또한 극영화에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따라했다. 마치 크레인과 지미집이 인물을 따라가는 것처럼. 처음에는 앵글을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 있으니 신나서 모든 각도를 적용해봤다. 그러니 너무 가짜 같더라. 실제 액션영화 같은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극영화와 다름없는 것들을 적용했다.

- 화가 난 나나의 눈떨림이나 빛에 반사되는 목걸이 등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가장 만족하는 디테일이 있다면.

이번에 작업을 함께한 302플래닛의 이형신 대표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모두가 모셔가고 싶어 하는 아주 유능한 테크니컬 디렉터다. 조명과 스펙터클의 디테일은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나는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보니 연기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나만 아는 디테일이 더러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차 안에서 강민이 나나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나나가 손을 탁 친다. 강민의 손길이 싫지만 사실 나나는 두렵기도 하다. 그때 나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 장면이 무척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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