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던 치성(강길우)에게 어느 날, 오래전 그가 판매한 정자로 인해 태어난 소년 영재(이찬유)가 찾아온다. 육상선수를 꿈꾸던 영재는 건강 문제로 더이상 달릴 수 없게 되자 유전적 결함을 물려줬단 이유로 생물학적 아버지인 치성에게 손해배상액 1억원을 요구한다. 그런 영재와 영재를 키운 아버지 동석(양흥주)을 만나며 치성의 속내는 복잡해진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최재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가족에 얽매이지 않은 채 새 삶을 도모하는 인물들의 선택을 독특한 필체로 묘사한다. 최재영 감독은 한국영화아데미에서 수학한 동시에 2018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뒤 장편소설 <빅파파> <맨투맨>을 집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에 관해 나눈 대화를 전한다.
-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2020년 후반,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아직 남아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캐릭터가 스스로 한계를 깨며 구원에 이르는 서사에 관심이 많다.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같은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한 남자가 누군가로부터 자기 영역을 침범당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해방의 시작이었다는 테마가 계속 맴돌았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현재에 만족한다고 여길지라도 실제로 내면엔 불안, 답답함이 내재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 각을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스토리텔링을 구체화했다.
- 치성 외에 영재, 동석에게도 비슷한 불안과 갈증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 인물 모두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른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했다. 다들 마음의 결핍 혹은 공백을 지녔다. 치성은 겉으론 완벽해 보이지만 평생의 삶이 공허했고 매일 요트로 여행하는 영상을 보며 자신의 환상을 대체하는, 어찌 보면 가짜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동석은 자신의 결핍을 아들에 대한 집착과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으로 채우려 한다. 영재도 계속 뭔가를 분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육상을 포기할 수 없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 치성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못한다. 신발장의 살짝 삐뚤어진 신발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데, 자세히 보면 그 신발장엔 강렬한 붉은색 신발이 놓여 있다. 평소 치성이 절대 신지 않을 법한 그 신발을 보며 표출하지 못한 욕망이 내재된 인물이라고 짐작했다.
치성은 전시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전시’라는 게 내가 직접 여행하고 뭔가를 소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액자를 걸고 신발을 사서 넣어두거나 요트 영상을 보는, 원하는 바에 뛰어들기보다는 그걸 전시함으로써 대리만족하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루틴대로 살아가는 것도 기계적이서라기보다 오히려 불안하고 깊숙한 내면의 동요가 있기에 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려 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표현했다.
- 치성은 영재를 아들로서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던 듯 보인다.
치성은 아버지라기보다는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처음엔 영재를 마냥 부정했는데 점점 영재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과거 자신이 받지 못했던 보살핌을 보상하듯 영재에게 주려 하는 것이다. 다만 훨씬 왜곡된 상황 속에서 말이다.
- 영재는 치성에게 손해배상액만 바란 것인가. 아니면 동석과 다르게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줄 아버지까지 원한 것인가.
처음에는 치성에게 약간의 선망과 호기심, 그리고 더 좋은 아버지가 되어줄 거라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깨닫는다. 자신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 그럼에도 세 사람을 가족으로 엮은 이유는.한국인들에게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지 않나. 한 인간의 결핍이나 상처가 가족에게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작품들이 가족간의 갈등을 화해의 서사로 풀어내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 관계를 끊어내보고 싶었다. 가족과 헤어질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영재도, 동석도, 치성도 서로 헤어짐으로써 마침내 구원에 이르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원은 관계의 해방으로부터 시작된다.
- 강길우, 이찬유, 양흥주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강길우 배우는 처음 봤을 때부터 치성이라고 느꼈다. 이목구비 때문인지 무표정하게 있을 땐 조각상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살짝만 표정이 바뀌어도 평소의 안정된 인상을 뚫고 감정이 전달되는 게 좋았다. 이찬유 배우는 눈이 마음에 들었다. 10대 배우들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데 이찬유 배우는 너무 어른스럽지도 그렇다고 아이답지도 않았고, 반항적이면서도 불안이 담긴 눈빛이 영재와 잘 어울렸다. 동석은 본래 더 가부장적이고 전형적인 아버지상을 생각했는데 양흥주 배우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다정하고 섬세한 인상을 가진 배우가 동석을 더 잘 그려낼 수 있겠다는 판단에 함께하게 됐다.
-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라는 제목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여러 피드백을 받았다. ‘프랑켄슈타인의 아버지’라 해석하는 경우도, 아버지가 프랑켄슈타인이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고 또 ‘프랑켄슈타인과 아버지’라 생각하는 분도 있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아버지’란 명사를 꾸미는 형용사 격으로 생각하며 썼다.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이 비극으로 끝나는데, 비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박사와 괴물이 서로를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소설과는 반대로 캐릭터들이 각자의 삶을 살며 희망을 찾아내는 것으로 결론짓고 싶었다.
-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꿨나.학부 때 전공은 국문학이었다. 당시엔 영화를 하는 게 가장 멋있어 보였다. 내가 그리는 캐릭터나 장면을 스크린에 영사하듯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어릴 때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는 갈등의 연속이었고, 영화를 완성하고 난 후에는 앞으로 절대 찍지 않겠다고 매번 동기들과 말해왔다. 그런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다시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다. (웃음)
-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다음 작품에서도 구원 서사를 다루고 싶은지.
그렇다. 하지만 장르적인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엄청난 팬인데 나는 이 작품도 일종의 구원 서사라고 생각한다. 정통 판타지는 아니더라도 말도 안되는 사람과 생물체가 등장하는 판타지에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