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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조영숙, 박수빈, 황지영 배우와 유수연 감독 대담
정재현 사진 백종헌 2025-03-20

- 조영숙 선생을 중심에 둔 다큐멘터리가 작품의 시작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화는 한 인물을 중심에 놓기보다 여성국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담는다. 어떻게 지금의 방향으로 선회했나.

유수연 선회보다 확장이라 보는 게 맞다. 내 전작이 서울시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 정의진 선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수궁>이다. <수궁> 촬영 당시 처음 조영숙 선생님과 여성국극을 알게 됐다. <수궁> 촬영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에게 여성국극에 관한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여성국극을 이어오신 역사는 물론 여성국극의 현재와 미래까지 담으려면 3세대 여성국극인들의 분투까지 포함해야 했다.

조영숙 누구 하나 여성국극에 기꺼이 손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끼리만 어떻게든 여성국극을 보존하겠다고 동분서주하던 차에 다큐멘터리가 나온다고 하니 무조건 참여할 수밖에. 작품 제목이 참멋지지 않나.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니. 그야말로 여성국극의 정신이다. 살다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감독님에게 전화하면 어김없이 달려와 카메라를 켜주었다.

- 3세대 두분은 어땠나.

박수빈 선생님이 여성국극을 알릴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20여년간 목도했기 때문에 계기가 생기면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마침 <수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수궁>이 재밌더라. 그러니 우리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재밌을까 싶어서(웃음) 촬영에 임했다.

황지영 제자로서 응당 선생님을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이 작품에 임하는 노고를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국극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면

- 여성국극의 두 세대를 다룰 때 무얼 중점에 두고 촬영, 편집했나.

유수연 조영숙 선생님이 1950년대부터 여성국극을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 개인의 역사가 곧 여성국극의 역사로 드러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또 여성국극은 니마이뿐만 아니라 삼마이와 가다키가 함께 지켜온 역사다. 주역만이 세상을 지탱하지 않듯 여성국극 또한 수많은 개별 인자가 수호해왔다는 사실을 세분화하며 장면을 층층이 구성했다. 110회차에 걸쳐 3일에 한번 간격으로 촬영했다.

- 삶의 여러 순간에 카메라가 동행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황지영 감독님에게 사과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내가 정말 옷이 없다. 감독님이 거의 2년을 담았는데 이틀간 찍은 것처럼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 부끄럽다. 처음엔 나름 신경을 쓴답시고 옷과 화장을 챙겼는데 그마저도 두세벌이니까. (웃음) 감독님도 나중엔 옷 좀 사입으라고 하더라. 무대에서 입을 옷만 사느라 그렇다.

박수빈 편치 않은 자리에도 감독님이 동행해줘 힘이 났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혼자 갔다면 기가 죽었을 텐데 카메라가 함께하면 우리의 제안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가보군” 하며 관심을 가져주었다.

- 영화 초반 조영숙 선생이 “나는 선천적으로 귀여워서 타고난 삼마이다”라는 말을 한다.

조영숙 민망하네. (웃음) 코미디 전문 배우로 사는 일이 늘 즐겁진 않았다. 살면서 슬픈 일이 얼마나 많나. 눈으론 울어도 입으로는 웃겨야 하는 비애가 허다하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이 천직이라 여기며 평생 살아왔다. 아직도 한마디 툭 던질 때 한 사람이라도 웃어주면 행복하다.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속이 상하고.

유수연 선생님이 방자만 1천회 넘게 공연하신 걸로 안다. 입만 열면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드신다.

-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캠핑카다.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두 분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내부 행장이나 차의 선택 배경 등이 궁금한데.

박수빈 우리는 거의 유목민이다. 방방곡곡 공연을 다닐 때면 불편한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실이 없어서 공중화장실에서 의상을 교체할 때도 있고. 그래서 대기실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 점에 있어 캠핑카가 정말 유용하다. 한복도 구기지 않고 걸 수 있고, 전기를 끌어올 수 있으니 의상 다림질도 가능하다.

황지영 그런데 캠핑카를 타면서 업무 강도는 배로 늘었다. 이동 중에 대본이나 기획안을 작성할 수 있으니까. 이동식 숙소 겸 분장실이고 사무실인 동시에 연습실이다.

- 공연 실황이 다수 들어 있다. 음향의 믹싱과 편집에 공들인 흔적이 영화에 묻어난다.

유수연 촬영할 때 음악 사운드를 전부 따로 땄다. 그리고 5.1 채널에 맞춰 소리를 작업했다.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보면 6개의 스피커에서 전부 다른 소리가 나올 것이다. <수궁>에서 국악 소리를 한차례 담아본 경험이 있으니 수월하기도 했다.

- 치열한 공방전을 통해 예술이 완성되는 과정을 포장 없이 담아냈다. 어느 공연에서나 생길 수 있는 연출과 배우의 의견 충돌이나 다소 위협적이고 불편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레전드 춘향전>을 홍보하는 박수빈 대표의 노고가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실렸는데.

유수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두분께 감사드린다. 수빈씨가 <레전드 춘향전>을 기획할 당시 돈이 전무했다. 자금을 투자받는 과정에 거의 매일 카메라가 따라다녔다. 나였어도 안 찍었으면 했을 텐데 수빈씨가 촬영은 물론 영화에 들어가는 것까지 선뜻 허락해주었다.

박수빈 앞서 말한 대로 불편한 자리에 스태프들이 함께하니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카메라가 늘동행하는 게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여성국극은 ‘여성’이 앞에 붙다 보니 중장년 남성들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성적으로 비하하는 말을 듣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광경까지 담긴 게 속상하더라. 그런데 시사 후 남성들이 이 장면을 보면 생각이 많아질 거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멋있어 보이려고 영화를 찍은 건 아니지만(웃음) 그 말을 들으니 영화에 불편한 순간이 들어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지영 여성국극을 통해 나의 주관을 관철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내는 수밖에 없다. 박수빈 대표가 발품을 팔며 애쓰는 모습도 결국 여성국극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이런 장면이 우리의 가치를 입증하는 방편이라면 얼마든 해낼 수 있다. 영화엔 그런 부분이 날카롭지도 둔탁하지도 않게 담겨 있어 좋다.

동시대와 호흡하는 여성국극을 누리려면

- 3세대 여성국극인들은 여성국극이 가장 유행하던 195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조영숙 선생이 당시 인기를 증언해준다면.

조영숙 <황금돼지>라는 작품이 있었다. 1952년 6·25 전쟁이 한창일 때 공연한 작품인데 그땐 공보처(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검열을 통과한 작품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황금돼지> 대구 공연 도중 경찰과 공보처 직원이 호각을 불며 무대를 중단시켰다. 작품을쓴 김아부 작가가 월북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드러난 것이다. 당장 막을 내리라며 난리를 치는데 임춘앵 단장이 대구 시민들이 기다리던 공연이니 이 공연까지만 마치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선포했다. 다른 공연이면 어림없는 소리지만 여성국극이 워낙 인기가 있으니 2막은 사상적 문제가 없는 작가의 작품을 올리는 정도로 타협이 됐다. 결국 1막은 <황금돼지>, 2막은 <선화공주>를 공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막상 서에 가니 경찰서장이 왜 임춘앵 선생을 모시고 왔냐며 돌아가라고 하더라. 그렇게 일주일을 대구에서 더 공연할 수 있었다.

- 단어 그대로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는 인기다.

조영숙 임춘앵 선생님 집엔 금덩이가 마룻바닥에 꽂혀 있었다. 공연을 한번 마치면 마대 두 자루만큼의 입장료가 나왔다. 부피를 줄이려 지폐를 최대한 압축해 담았고, 지폐를 일일이 다리미로 펴서 실로 묶어 다발을 만들었다. 당시 내가 머리에 먹물이 조금 들었다는 이유로 극단의 경리를 겸했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팬덤이 생기며 배우들이 일습을 갖추게 됐다. 배우들에게 혈서를 보내는 팬들마저 있었다. 니마이들에겐 부인네 팬들도 많았고.

황지영 어떻게 보면 아이돌 문화의 시초다. 이거야말로 조공 문화 아닌가. 선생님에게 들어보니 쉬는 날이면 팬들과 소풍도 다녔다더라. 역조공 문화도 이때부터 있었다.

-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정년이>의 오프닝 타이틀을 선생님이 직접 녹음하셨다. 원작 웹툰에 이어 여성국극의 존재를 젊은 관객들에게 많이 알린 작품인데.

조영숙 국립창극단에서 <정년이>를 창극으로 올릴 때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년이>의 오프닝에 관해선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장영규 음악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정년이>의 오프닝 타이틀에 등장하는 배우 소개 멘트를 녹음해줄 수 있느냐고. 그날이 하필 이삿날이었는데 거실에 이삿짐을 내팽개쳐두고 안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떻게든 녹음을 마쳤다. 그때 거실에 있던 짐을 챙겨야 했는데 녹음하느라 신경을 못 써 아들이 다 버렸다. (웃음)

유수연 몇 차례 <정년이>의 연출진, 배우들과 선생님이 만나기도 했다. 배우들의 소리나 춤동작들을 손수 지도하셨다.

- 3세대 여성국극인 두분은 2019년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했다. 어떻게 출범한 단체인가.

박수빈 여성국극과 조영숙 선생님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은 생각에 시작한 단체다. 선생님이 현역으로 활동하실 수 있을 때 제자로서 어떻게든 무대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컸고, 과감히 한발을 내딛자는 마음에 규모도 키워갔다. 2024 경기문화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 사업에 뽑혀 안산문화재단 상주단체가 되었다. 제도권 내부에 있는 이들이 여성국극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여성국극제작소의 향후 비전은 후계 양성이다. 4세대도 나오고 5세대도 나와야 여성국극이 오래 지속될 것 아닌가. 여성국극을 이어가려는 이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강화할수 있도록, 다음 세대가 여성국극을 꿈꾸도록 만들고 싶다.

- 여성국극제작소의 유튜브 채널엔 ‘모두가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예술집단’이라는 소개 문장이 적혀 있다.

황지영 여성국극은 쉬운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수 있는 대중예술을 지향하며 탄생한 장르다. 그 마음이 곧 우리의 모토가 되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위해선 유니버설 스테이지, 즉 모두가 공정하고 보편적으로 누리는 범예술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배리어프리 무대를 기획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하는 중이다. 또한 여성국극은 동시대와 호흡해야 한다. 그럴수록 공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지금까지 숱하게 나온 멜로나 영웅담이 아닌, 다양한 여성상과 남성상 그리고 그 이상의 모습을 기반으로 평등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다.

- 영화 중반 선생님이 활동 당시의 대본을 들춰보고 눈물 흘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청실홍실>(<로미오와 줄리엣>), <흑진주>(<오셀로>)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새로 쓴 <햇님과 달님> 등 서구의 고전을 새로 쓴 작품도 많더라.

조영숙 대개 도쿄에서 유학한 작가들이 이야기를 번안했다. <햇님과 달님>은 <투란도트>의 수수께끼 모티프를 우리 식으로 재편했고, <청실홍실>은 두 대감집의 권력 싸움으로 그려낸 재밌는 작품이었다. 비단 외국 문학뿐만 아니라 조선의 궁중사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여성국극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는 지금도 무궁무진하다.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작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한때는 영화에 나오는 대로 내 발탈 공연(조영숙 선생은 발탈로 국가무형유산 79호에 등재됐다.-편집자) 중에 여성국극을 짧은 막간으로 덧붙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원천은 충분하고 인재도 많은데 이걸 상연할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해 답답하다.

- 예술이 오래 이어지려면 저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돼야 한다. 또한 예술이 존속하기 위해선 아카이빙이 필수다. 현재 여성국극의 대본, 음악 등은 어떻게 저작권 보호를 받고 여성국극사는 어떻게 기록되나.

조영숙 저작권 인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박수빈 대표와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를 찾아간 적도 있는데 겨우 몇작품만 등록했을 뿐 큰 소용이 없었다. 오래전 대본을 쓴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유가족들은 더이상 여성국극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박수빈 전통문화에서 파생한 것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도대체 시초를 알 수 없으니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기에 성행한 장르라 이제야 조금씩 그 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황지영 월북 작가들의 작품은 당연히 저작권 등록을 누구에게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여성국극의 대표 레퍼토리인 <춘향전>은 판본도 다양하니 저작권 등록이 불가능하다.

조영숙 <춘향전>은 국립창극단의 1936년 정식 대본을 내가 가지고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춘향전>을 올릴 때도 전부 이 대본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유수연 이 점이 중요하다. 선생님이 워낙 기억력이 비상하셔서 기록이 유실된 공연의 개최일자를 선생님이 증언하시고, 원본을 찾기 어려운 대본도 선생님이 여전히 전체를 외우고 계셔서 그나마 전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조영숙 그 대본을 전부 내가 쓰고 전재했으니까. 사회 경험이 없는 여자아이가 학생의 몸으로 전쟁통에 피난와 여성국극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75년째 활동 중이다. 아직도 여성국극을 끝끝내 물고 늘어지고 좋아하는 걸 보면 나 같은 바보도 없다. 1세대부터 지금 아기들까지 정말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한 여성국극을 지켜내고 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만 같아 미안하지만 후배들은 나처럼 구걸하지 않고 여성국극의 가치를 누렸으면 한다. 그 염원뿐이다.

여성국극의 은어들

니마이 여성국극의 ‘남성 주연’을 일컫는 말. 용맹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서를 가진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그려진다. <춘향전>의 이몽 룡을 예로 들 수 있다. 니마이메(二枚目)에서 유래했다.

가다키 여성국극의 ‘남성 악역’을 일컫는 말. 주로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고 여자 주연을 학대한다. <춘향전>의 변학도를 예로 들수 있다. 가타키아쿠(敵役)에서 유래했다.

삼마이 여성국극의 ‘남성 조역’을 일컫는 말. 익살과 유머를 통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극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배역. <춘향전> 의 방자를 예로 들 수 있다. 산마이메(三枚目)에서 유래했다.

임춘앵을 아십니까

여성국극동지사의 <공주궁의 비밀> 신문 광고.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 결성을 계기로 여성들이 주축이 된 창극 공연이 올려졌다. 이후 1952년 부산과 광주에서 각각 여성국극단이 창단됐다. 이중 국악계 스타였던 임춘앵이 여성국악동호회를 탈퇴하고 광주에서 출발한 여성국극단인 여성국극동지사를 설립했다. 조영숙 선생이 이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하며 여성국극을 시작했다. <정년이> 속 강소복 단장의 모티브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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