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호러영화. 한국 관객에게 전작을 포함한 자신의 영화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노르웨이에서 온 젊은 영화감독 테아 비스텐달이 즐겨 사용한 표현이다. 단편영화 <칠드런 오브 사탄>을 포함한 필모그래피에는 호러 장르와 음악을 향한 감독의 애호가 잘 드러난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현재 개봉을 앞둔 <언데드 다루는 법>은 장르에 기대고 있으면서 인물과 인물의 감정에 밀착해 있다. 장르영화를 연출하며 시적인 표현을 연마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의 말과 영화에서 비친다.
- 첫 장편영화로 욘 A. 린드크비스트 작가의 <언데드 다루는 법>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원래 각색하고 싶었던 작품은 같은 작가의 <리틀 스타>였다. 그런데 영화화하려고 보니 다른 사람이 이미 판권을 구매한 뒤였다. 소설 <언데드 다루는 법>을 알게 된 건 그 후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던 차에 린드크비스트 작가가 내 단편영화 <칠드런 오브 사탄>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15년 전 작가가 이 소설의 영화 각본을 써서 다른 감독에게 전한 적이 있었지만 영화화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기회가 내게 온 것이다.
- 욘 A. 린드크비스트는 영화 <렛미인>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영화 각본에 참여했는데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처음에 작가가 써둔 각본을 부분적으로 다시 수정한 원고를 받았다. 그러다 내가 영화를 연출하려면 직접 영화를 위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도 이를 허락해서 새로 시나리오를 썼다. 처음엔 스톡홀름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그다음엔 작가의 집에서 하루 묵었다. 그의 아내 역시 작가여서 내가 쓴 대본을 함께 소리내 읽으며 대사를 수정했다. 작가는 소설의 배경 그대로 스톡홀름에서 촬영하길 원했고 나는 오슬로에서 촬영하길 원했다. 내가 고향인 오슬로를 더 잘 알기도 했고 노르웨이 제작사와 펀드로 영화 제작 환경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작자가 오슬로 촬영을 동의해주었다. 우린 주로 스톡홀름에서 만나서 작업하거나 전화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 북유럽 영화에서 광막한 전경의 인서트가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데 <언데드 다루는 법>은 실내 공간이나 인물의 얼굴, 행동에 더 집중한다.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볼 여력이 없을 거란 생각에 전형적인 오슬로 도심을 보여주는 장면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원작에서 자세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공간을 영화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담아내고도 싶었다.
- 르포르타주 형식의 원작과 달리 시체 부활이 사회적 재난이라는 단서는 영화에서 스치듯 지나간다. 대신 언데드의 모습으로 찾아온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개인적 난제에 더 집중한 듯 보이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 영화의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또 그 시기에 촬영까지 마쳤기 때문에 팬데믹을 소재로 한 작품처럼 보일까 걱정되었다. 또 내게 원작의 르포르타주 형식은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도 있어서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재난영화로 보일 만한 요소는 모두 들어냈다. 특정 시대나 배경이 지워진 영화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 그래서인지 대사가 아주 적고 대신 다양한 효과음으로 사운드를 채운 점이 도드라진다.
시각 표현에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 이 영화를 무성영화처럼 대사 없는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대사를 쓸 때 알맞은 단어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인물의 감정이 죽는 것 같았고, 대사가 많아질수록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 대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 대신이라고 할 수 없어도 내 각본에는 사운드에 대한 설명은 아주 상세하다. 사운드가 대사보다 긴장감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겼고 숏에 걸맞은 각각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 때로 강렬한 이미지가 드러난 장면에서 그와 정서적으로 대조적인 음악이 흐르기도 한다.
시체 부활이 자기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고 무덤을 파낸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서정적인 음악을 사용했다. 또 이 영화가 가진 정서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니 가끔은 재미 삼아 예상을 뒤엎는 반전적인 음악을 쓰기도 했다.
- 기존 언데드물은 시체를 과감히 제거하는 것이 문제 해결로 여겨지지만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가 언데드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언데드의 외양을 어느 정도로 자유롭게, 아니면 제한적으로 상상하고 구체화했나.
언데드의 모습이 원작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만의 리서치를 철저하게 진행했다. 시각효과 담당자는 “창조된 상상 속 괴물을 보여주는 것보다 끔찍함이 사실적으로 드러날 때 사람들이 더 공포를 느낀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시체의 부패 상태를 모두 시각화하여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 어린아이가 언데드로 나오는 부분은 스티븐 킹 원작의 <공포의 묘지>도 연상된다. 단 당신 버전의 언데드가 훨씬 더 현실의 죽음에 가까운 모습이다. 어린아이가 언데드를 연기하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
배우가 직접 언데드를 연기하길 바랐지만 엘리아스 역의 배우는 당시 겨우 다섯살이었다. 언데드 분장을 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린다. 분장했다 치더라도 아이들의 생기발랄함은 숨길 수가 없다.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뺨은 발그레한 데다가 끊임없이 움직여대니 아이를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웃음) 결국 배우를 본떠 만든 인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 부재를 잊지 못한다면 다시 돌아오길 바라겠나.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 속 언데드도 그렇게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더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