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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얼굴의 마주침으로 이어낸 솔직한 대화의 시간, <언니 유정>
박수용 2024-12-04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동생 기정(이하은)과 둘이 살아온 간호사 유정(박예영). 바쁜 업무 탓에 고3 수험생인 동생의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하지만 모난 곳 없는 모범생이라는 사실만은 믿고 있었다. 기정이 돌연 학교에서 벌어진 영아 유기 사건의 당사자로 자수하자 유정의 믿음은 시험대에 오른다. 모든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정과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기정의 친구 희진(김이경)의 태도는 유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사건의 전말은 핵심이 아니다. <언니 유정>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기정이 겪는 고통의 자극적 묘사를 자제하는 미덕을 견지한다. 대신 영화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 진심을 전하려는 인물들의 용기의 발로를 신중하고 세심하게 쫓아간다. 그간 믿어온 가족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겪는 유정은 상실에 가까운 무력감과 그 이상의 책임감을 마주한다. 아직 어린 고등학생인 기정과 희진에게도 버거운 상황에 구겨진 속마음을 펼쳐 보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서늘한 긴장과 애틋한 가족드라마의 공기를 절반씩 머금은 주연배우들의 호연은 언어 너머의 본의를 담는 얼굴의 힘을 실감케 한다. 한편으로는 강압적인 간호사 사회의 임신순번제, 태아를 걱정하는 산모 등 병원을 배경으로 한 서브플롯이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의 여러 고민을 살핀다. 이는 모녀애를 닮은 유정과 기정의 자매 관계를 투영하는 거울로도, 가늘지만 힘 있게 이어지는 미스터리의 실마리로도 적절히 작동한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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