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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K콘텐츠의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최전방에 서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아메리칸필름마켓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 탐방기
글·사진 김성훈 2024-11-20

제45회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이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네바다주의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열렸다. AFM이 45년 만에 LA를 떠난 것을 두고 “할리우드를 버린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부터 “할리우드를 떠난 순간 AFM에 내리막길이 예상된다”라는 우려까지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필름마켓 중 하나답게 전세계에서 온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들은 이곳에서 열띤 비즈니스를 벌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처음으로 연 한국 콘텐츠의 해외 투자 유치 프로그램인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 (이하 유녹)는 국내외 투자자, 창투사, 금융사, 제작사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쌓고, 함께 머리를 맞댔다. <씨네21>이 유녹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이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아메리칸필름마켓이 마주한 2024년의 풍경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

공항을 뒤로한 채 시내로 질주하는 차창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라스베이거스 풍경은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모하비사막과 선거 전광판 속 대형 트럼프의 얼굴이었다. 애꿎게도 미국 대선 당일 문을 연 제45회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은 시시각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표심 때문인지 업무 미팅 틈틈이 선거 뉴스를 찾아보는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45년 만에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주 LA 샌타모니카를 떠나 네바다주 ‘신시티’ 라스베이거스로 옮긴 것치고는 분위기가 차분했다. 1981년에 시작된 AFM은 매년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유러피안필름마켓, 매년 5월 칸영화제 기간에 진행되는 마르셰 뒤 필름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필름마켓이다.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유러피안필름마켓, 마르셰 뒤 필름과 달리 AFM은 홍콩 필마트처럼 영화제가 없는 마켓이다. 그럼에도 선댄스영화제를 타깃으로 하는 미국 독립영화나 A24, 라이언스게이트, 포커스 픽처스, 폭스 서치라이트 같은 할리우드 아트 레이블 신작이 대거 쏟아진다.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세계 세일즈사와 바이어들이 매년 11월만 되면 이곳을 찾는 것도 향후 2, 3년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AFM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에서만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LA 샌타모니카에서 열리다가 올해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호텔 더 팜스 카지노 리조트로 장소를 옮겼다.

AFM을 주관하는 독립영화텔레비전연합 회장이자 필름 모드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클레이 엡스타인은 “더 팜스에서는 배지 참가자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각 세일즈사 부스를 더 팜스 호텔 2층에서 18층까지 배치해 한 공간에서 세일즈 미팅이 가능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극장에서 신작 스크리닝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켓 배지를 목에 건 채 담배를 뻑뻑 피우며 슬롯머신을 당기는 세일즈 관계자나 바이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라스베이거스 시대를 연 AFM의 새로운 풍경이다. 그러고보니 카지노도 영화도 인생 한방인데 둘 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게….

새로운 도시에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산업 질서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된 탓에 여전히 극장용 영화를 사고 파는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의 얼굴에는 희망보다는 근심과 걱정이 앞선다. 재능 있고 독창적인 영화는 넷플릭스, 디즈니, Apple TV+, 아마존 비디오 프라임 등 OTT 플랫폼과 직접 거래하는 추세라 마켓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작 숫자가 예년만큼 많지 않다. 영화 수입사 대표 A씨는 “스크리닝을 하는 신작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스크리닝을 보기 위해 상영관 입구부터 긴 줄을 섰는데 올해는 보시다시피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뭐라도 구매해야 향후 2, 3년은 먹고살 수 있는데…”하며 아쉬워했다. 한정된 작품을 두고 구매 경쟁이 치열하고, 판권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른다. 시장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는데, 구매가가 오르면 그만큼 바이어로선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유녹이 자아낸 콘텐츠 시장의 희망과 가능성은이처럼 마켓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들이 라스베이거스에 모여들어 활기를 불어넣은 가운데, AFM 한복판에선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이하 유녹)를 진행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콘진원이 처음으로 AFM에서 시도하는 유녹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실질적인 해외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목표인 콘텐츠 금융 프로그램이다. 정부가 한국 콘텐츠 제작사, 창투사, 제1금융권, 미국 투자자들을 한 공간에 모아 콘퍼런스를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와 고민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 뒤, 장기적으로는 큰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해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게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배경에서 출발한 이번 유녹에 IBK 기업은행, 신한은행 등 제1금융권과 타임폴리오 자산운용사 같은 공신력을 갖춘 사모펀드 운용사가 대거 참여한 것은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꽤나 긍정적이다. 콘텐츠 산업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 8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유녹은 금융, 예능, 게임, 콘텐츠 현지화 전략, 팬덤 확장과 IP 비즈니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각각의 분야에서 다양한 고민과 인사이트가 오간 가운데,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 콘텐츠와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일단 신시아 리틀턴 <버라이어티> 공동 편집장이 진행한 특별 세션 ‘자산 아닌 사람과 스토리에 투자’에서 바니아 슐로겔 앳워터 캐피털 창립자이자 대표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현재 콘텐츠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을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콘텐츠 산업, 특히 독립영화 제작사들은 비즈니스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신시아 공동 편집장의 질문에 바니아 슐로겔은 “콘텐츠 산업에선 혼자의 힘만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 우리 같은 경우는 판권을 가진 두개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독립영화, TV시리즈를 안정적으로 제작하기 위해선 지속 가능한 시장이 중요하다. 최소한 성과의 몫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미국 투자 환경이 재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요소가 콘텐츠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나”라는 신시아의 질문에 바니아 슐로겔은 “트럼프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꺼내들고, 각종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산업도 새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받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게임체인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할리우드나 독립 제작사의 영향력이 다시 커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어진 세션 ‘투자사의 투자’에서는 현재 북미 지역의 투자자들이 한국 콘텐츠와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투자 그룹 레드버드의 캐피털매니징 디렉터인 성철 패트릭 라발리는 “한국 콘텐츠가 가진 강점은 젊고, 프리미엄인 데다가 기술 중심이라 전세계 미디어 기업들이 따라 만들고 싶어 한다”면서 “그건 한국 창작자들이 오랜 시간 노력해서 내수시장을 공략한 뒤 어떤 변곡점을 거치면서 북미 지역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곡점을 잘 살려가며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많은 북미 지역 투자자들이 한국과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건 투자를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큰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할 것 같고, 좀더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한국 시장에서 스트리머가 IP를 소유하면서 발생하는 수익 배분 문제, 게임 제작사 크래프톤이 출시한 세계적인 인기 게임 <배틀 그라운드>의 투자 전략,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팬덤 공략 스토리,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IP의 글로벌 시장 확장 등 다양한 콘텐츠 투자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제작사, 투자사는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김소영 하이브미디어코프 해외사업부 이사는 “자본이 경직됐고 투자가 OTT 플랫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콘텐츠 산업 상황에서 콘진원이 쉽게 만나기 힘든 미국 투자자, 바이어들과의 네트워크를 주선한 건 매우 의미가 크다”며 “내년에도 이 행사가 계속된다면 저희 하이브미디어코프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제작사와 프로듀서들이 참여하고,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상현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차장은 “글로벌 유통사 및 투자사, 제작사들의 대담을 통해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포럼이 향후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국내외 자본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콘진원 유녹 비즈니스 미팅.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높은 일본이나 타이로 갈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콘텐츠 산업 안팎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AFM 한복판에서 열린 콘진원의 유녹은 왜 해외 투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대답을 던져준 자리였다. 기업의 에쿼티(지분) 투자와 콘텐츠 프로젝트의 규모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어, 제작비를 조달하고 수익률을 더 높이려면 지금보다 큰 규모의 해외 투자가 절실하다. 수익률이 중요한 투자 시장에서 국내외 투자자가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의 시장에서 실질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는가가 지금 투자 시장의 주요 관심사다.

유녹 세션 ‘ESG 크리에이터가 보는 다양성 콘텐츠’에 패널로 참여한 배우 김민하

사진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배우 김민하가 배우임에도 투자 콘퍼런스의 패널로 참석한 건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 열리는 AFM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산업과 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야 넓은 시야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파친코>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한국 콘텐츠든 할리우드든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 말고는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작업은 매한가지”라고. 좀더 많은 경험을 쌓은 뒤 프로듀서나 제작자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에 관심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은 배우로서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혹시 50대가 되면 도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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