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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하길,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정재현 사진 오계옥 2024-10-31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세계는 두 갈래로 거칠게 양분할 수 있다. 한축은 단편 <시국페미>, 장편 <우리는 매일매일> 등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다른 축은 공간에 관한 탐구다. 가부장제의 대유로 은마아파트를 활용한 단편 <모래>, 도시문제를 다룬 단편 <진주머리방>이나 장편다큐멘터리 <이태원>에는 모두 특정 공간에 집중하는 동시에 사회제도의 결함이나 모순으로 인해 그 공간에 정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두 갈래의 세계는 그의 첫 장편 극영화 <럭키, 아파트>에서 교차한다. 연애 9주년을 앞둔 레즈비언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서 동거 중이다. 어느 날 선우는 독거노인인 신임(전소현)이 사는 아랫집에서 악취를 맡고, 냄새의 원인을 찾아가던 중 신임과 정남(정애화)이 벽장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성소수자 커플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동성애, 여성·노인 혐오를 적시하는 사회 드라마이면서 미스터리 장르물로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강유가람 감독과 만났다.

-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아파트를 떠올린 배경은.

누구나 아파트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정적 주거 공간이라 믿는다. 그런 공간에 불협화음을 내는 존재가 돌출하고 그 존재가 성소수자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또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나. 이런 복잡한 공간을 성소수자들도 욕망한다. 다양한 소수자들이 느끼는 혐오와 배제의 문제까지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 공교롭게 블랙핑크의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APT.>라는 음원을 개봉 직전 발표했다.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 오는 길에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아파트 아파트”가 반복되더라. (웃음)

- 주인공 커플인 선우와 희서에 손수현, 박가영 배우를 어떻게 떠올렸나.

<우리는 매일매일> 개봉 당시 손수현 배우가 GV 모더레이터를 맡아준 적 있다. 이전에도 손수현 배우를 여러 단편영화에서 본 적 있지만 GV로 안면을 튼 이후 손수현 배우의 여러 특성이 눈에 들어왔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선이 굵은 얼굴을 가졌다. 배우가 지닌 고유의 느낌이 선우와 어울려 선우 역을 제안했다. 처음엔 손수현 배우가 퀴어영화에 몇 차례 출연한 터라 역할 중복을 이유로 고사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손수현 배우가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며 출연을 결정했다. 희서에겐 예민한 면모와 회사원 특유의 찌든 모습을 동시에 보이는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다. 박가영 배우는 얇은 선을 통해 도화지처럼 모든 연기를 흡수할 수 있는 배우다. 시나리오를 전한 날 처음 박가영 배우를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출연을 수락했다.

- 선우가 아파트에서 불길함을 감지하는 심상이 냄새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후각은 영화가 표현하기 어려운 심상이다.

내 친구가 실제 겪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했다. 그 친구도 선우처럼 공동주택에서 사망한 이웃의 악취를 맡았는데, 다른 입주자들은 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냄새에 민감하다. 냄새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그런지 미지의 냄새가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압박감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더 크게 체감한다. 후각이 보이지 않는 감각이다 보니 성소수자의 존재로 은유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 영화의 중요한 소품인 신임과 정남의 사진에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있다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찍은 사진이다. 설정상 1980년대 말에 찍은 사진인데 두 배우가 정말 깊이 몰입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끝날 무렵 정애화 배우가 전소현 배우에게 “내가 이 바지씨(남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레즈비언을 뜻하는 옛 은어.-편집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전소현 배우가 짧은 머리 가발을 벗고 나오니 바로 “내가 사랑했던 바지씨가 사라졌다”며 속상해하셨다.

- 선우는 신임의 고독사를 본 후 자신 또한 신임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선우가 낯선 방역 노동자에게 마실 것을 내어주는 모습은 정남이 선우가 자신을 찾아오자 마실 것을 건네주는 장면과 조응한다. 호의, 친절과 같은 긍정적 속성이 두 세대의 성소수자 여성에게 전승되는 도식이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선우와 희서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윗세대 퀴어 커플의 마지막을 바탕으로 동료들 그리고 아래 세대와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하길 바랐다. 그래서 선우와 희서의 다음 세대 여성인 은주(최은율) 또한 혐오 발언자를 저지하거나 단지 내 길고양이를 챙기는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볼 줄 아는 존재로 그렸다. 은주가 선우에게 “언니들 레즈예요?”라고 묻는 대사도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은주 입장에선 성소수자와 어울려 사는 게 이미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 최근 시리즈 <대도시의 사랑법>의 예고편이 보수 단체의 상영 금지 시위와 민원으로 인해 삭제되는 사태가 있었다.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 <딸에 대하여> 또한 대전여성영화제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사회적 논란이라는 이유로 양성평등주간에 맞춘 상영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영 대체 요구를 받아 논란을 빚었다. 퀴어 콘텐츠를 향한 포화 공격이 극심한 가운데 <럭키, 아파트>가 세상에 공개된다.

사실 대전여성영화제 상영작 중 <럭키, 아파트>도 있었다. 그런데 포스터에서부터 동거 중인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우리 작품은 논란으로부터 패싱됐다. (웃음) 이슈가 되지 않은 작은 영화여서 그렇지 않나 싶다. <딸에 대하여>는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대도시의 사랑법> 또한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 아닌가. 사회에 파급을 가져올 수 있는 콘텐츠라 백래시를 받는 것이다. 이 사태 자체가 <럭키, 아파트>와 닮았다. 만약 선우와 희서가 아랫집의 문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갔다면 아파트 내에서 소외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주거 공동체로부터 배척을 받는다. 우리 작품도 중요한 의제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길, 두 작품처럼 좋은 의미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슈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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