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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녕을 바라며 진력하는 마음, <샤인> 박석영 감독
유선아 사진 최성열 2024-08-01

<샤인>은 영화 안과 밖에서 우연과 인연으로 빚어져 인물이 말하고 살아가는 장면으로 완성된 영화다. 제주 북촌리에 사는 16살 예선(장해금)은 할머니를 잃고 혼자가 된다. 스텔라 수녀(정은경)와 라파엘라 수녀(장선)는 그런 예선에게 마음이 쓰인다. 세 친구 다희(채요원), 서우(정주은), 동석(노강민)도 그런 예선을 홀로 내버려둘 수 없지만 예선은 홀로서기에 완강하다. <샤인>의 인물들이 서로 모두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영화를 통해 사람을 위무하려는 박석영 감독의 마음과 얼핏 닮아 보인다.

- 10년간 장편 독립영화를 연출했다. 다섯 번째 장편 <샤인>을 구상하고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이전 작업에서 함께한 배우를 작품으로 다시 만난 소회도 궁금하다.

= 예전에는 집집마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이 있었다. ‘한 자루의 연필이 되어 나를 깎는다’라는 내용의 서정시를 읽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수녀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영화 안팎에서 오래 함께한 정은경, 장선 배우에게 같이해보자고 말했고 전작 <바람의 언덕>을 마치고 천천히 시작하게 되었다. 장해금 배우는 어린아이였을 때 <재꽃>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 영화로 처음 배우 일을 시작한 때문인지 그가 뭘 해도 그것이 예뻐 보이고 마음이 쓰인다.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그의 고등학생 시절을 영화에 담아보고 싶기도 했다.

- 배우와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페르소나라기보다 작품과 인연을 맺은 배우와 그 캐릭터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감독의 의지에 가까워 보인다.

=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들꽃> 이후에 <스틸 플라워>를 찍을 생각은 없었다. 정하담 배우와 함께한 시간을 그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고, 둘이 작은 영화 하나 해보자는 약속이 <스틸 플라워>로 이어진 거다. <바람의 언덕>과 <샤인>을 함께한 정은경, 장선 배우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을 찍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고생한 배우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 배우의 시간을 영화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 <샤인>에서 마을 주민과 두 수녀가 맺는 공동체적 관계에 시선이 가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게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의 공동체적 관계가 영화에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오래 함께해왔던 이들밖에 없다. 영화를 만들다 자신이 없어지면 정은경, 장선 배우에게 고민을 터놓는다. 그럼 나와 같이 고민하고 조언을 해준다. 어떻게 보면 서로를 안전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영화를 찍고 편집하면서 얼굴을 계속 보다 보니 내가 이들을 더욱 친밀하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하자면 우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고 영화는 우리가 함께 상상한 이야기를 이루는 것에 가깝다.

- 예선과 세 친구, 새별(송지온)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돋보인다. 어떤 디렉팅이 있었나.

= 아이들끼리 놀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디렉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대본에 정확한 대사를 썼던 부분은 성인 배우들이 연기한 역할뿐이다. 아이들에게 대사를 외워 연기하게 시켜보았는데 연기 경험이 없다 보니 타이밍을 재면서 연기를 하더라. 이런 것은 극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영화의 인물과 닮은 구석을 가진 배우에게 끌린다. 그래서 캐릭터의 기본 설정만 남기고 정해진 대사 없이 그냥 놀고, 대화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자연스러움은 나에게도 이 아이들이 정말 즉흥연기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 <샤인>은 갈등이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대신 여러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핸드헬드로 찍은 두편의 초기작보다 단순한 구도에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한 세편의 근작이 삶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 돌이켜 생각하니 영화 기법이나 촬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장 단순한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로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담기는 시간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 순간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 기법을 일부러 더 모르려고 애쓰는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벨러 터르 감독의 말처럼 ‘오래 지켜보다 드러나는 본질적인 부분’ 같은 깊은 뜻은 전혀 없다. (웃음) 내 영화의 장면이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포함하게 될까봐 두려웠고 이제야 두렵지 않게 되었다. 세편의 영화를 통해 그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보며 고정된 카메라를, 그리고 영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 많은 일들이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실제 삶과 그를 둘러싼 인연에서 시작되어 촬영장에서의 우연으로 흘러간다.

= 그게 참 이상하다. 어떤 영화적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샤인> 촬영으로 제주도에 내려가서 모두와 처음 이야기를 할 때 날씨도, 사람도 오는 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이 우리 영화의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말자고. 영화 촬영 내내 그대로의 날씨를 받아들였고, 하늘과 태양빛을 받아들였다. 밤 장면을 제외하고 조명 없이 촬영했으니 바닷가의 석양이나 언덕길, 기도하는 예선의 얼굴에 들이치는 햇살 모두 우연이다. 새별 역할에는 연기 경험이 없는 동네 아이를 캐스팅했는데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도 운명이라 여긴다.

- 필모그래피에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특히 많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이들은 여자가 아닌 사람이고 영화는 그들의 삶을 비춘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과 청년, 남성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를 해볼 생각은 없나.

= <샤인> 다음 영화는 <레이의 겨울방학>(가제)이다. 거기에 남성 인물이 두명 등장한다. 이 영화도 미국에서 함께 영화를 만들던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되었다. 나중의 재미를 위해 아직 편집은 하지 않았다. 다음 영화를 이미 찍어놓았기 때문에 그 이후 작품에서는 남성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 지역 독립영화공간 순회 상영 프로젝트인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 쇼’의 연장으로 <샤인> 역시 개봉에 앞서 인디스토리와 함께 ‘씨네마니또’ 상영회를 가졌다. 지역 순회 상영 기획 이전에 바라던 이상과 현재 실천하는 단계에 아쉬움이 있다면.

= 아쉬움 같은 것은 없다. <바람의 언덕> 순회 상영 당시는 팬데믹으로 지역 상영관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극장이 어렵던 시기였다. 그때 지역 영화 상영 공동체나 독립 예술 상영관이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인>도 벌써 13개 지역을 돌며 상영회를 가졌다. 개봉 전에 우리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 만날 수 있던 것은 극장의 연대 덕이다. 우리가 먼저 지역 상영관을 찾아가는 게 독립영화 배급의 표준이 되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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