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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념을 넘어 인간다움으로의 비상’, 2024 초여름 항공 납치 서스펜스 <하이재킹> 김성한 감독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4-06-27

2024년의 초여름은 장르물이 강세다. 묵직한 항공 재난물을 그린 <하이재킹>과 오컬트 코미디를 명중한 <핸섬가이즈>가 포문을 먼저 연다. 각 작품의 개성과 겨냥점을 파악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두 감독을 만났다. <하이재킹> 김성한 감독,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 담았다.

조종사 태인(하정우)이 운행 중인 비행기를 납북하려는 용대(여진구)와 맞선다. 태인은 자신보다 남의 목숨을 중요시하는 의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용대는 가족이 북한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남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청년이다.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김성한 감독은 20세기에 있었던 일련의 하이재킹 사건, 전후 남북 관계와 수복지구민의 삶을 조사하며 철저한 고증의 예의를 갖췄다. 비행기에 탄 수십명의 직원과 승객, 심지어 납치범조차도 감독의 따스한 시선 아래에서 다분히 인간적인 인물들로 재창조됐다. 김성한 감독은 <꽃피는 봄이 오면>(2004)으로 영화 현장에 들어선 지 20년 만에 첫 장편을 연출한다. 오랜 경력만큼 풍부한 레퍼런스와 프로덕션의 충실한 완성도는 <하이재킹>의 또 다른 장점이다.

- 실화와 달리 용대의 전사를 구체적으로 각색한 점이 눈에 띈다. 이념의 시대에 희생된 개인의 삶이란 점에서 80~90년대의 <짝코> <최후의 증인> <남부군> 같은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 질문에서 언급한 영화들을 참고하며 만들었다. <하이재킹>의 실제 사건이 일어난 지 50년도 더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전보다 이념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라곤 하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비극도 많다. 관객들이 다시 이러한 사실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 실제 범인의 삶은 용대의 전사에 어느 정도로 반영됐나.

= 김상태는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으나 2학년 때 중퇴했다. 벽돌 공장에 취직했다가 그만둔 뒤엔 집에서 벽돌을 만들어 팔았다. 정황상 공장에서 해고당했다고 생각한다. 폭력 사건으로 교도소를 다녀왔고 60살이 넘은 노모와 살았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고성에서 태어났다. 원래 고성은 북한 땅이었는데 전쟁 뒤에 남한 땅이 됐다. 여기까지가 김상태에 대한 사실이다. 그외엔 <한국전쟁>이란 책에 나온 수복지구민들의 삶을 많이 참고했다. 그들이 남한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처절하게 잘 기록돼 있다. 앞서 말한 <짝코>나 <최후의 증인>처럼 이념 자체를 얘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용대 개인의 삶에 집중했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 어떤 영향을 받았나.

= 용대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의 재판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주인공의 살인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어머니가 사망했음에도 그가 울지 않았다는 것만 강조한다. 그 사람이 보여준 외면적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용대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아마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영화 후반부에 용대가 빛을 쬐는 장면도 <이방인>의 마지막에서 영감을 받았다.

- 빛을 쬐며 좌석에 몸을 뉘는 장면에선 용대의 표정이 아주 편해 보인다.

= 맞다. 태인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그 둘에게 가장 편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연출을 하다 보면 모든 캐릭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용대에게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선이 있을 순 있다. 태인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절대 잊지 않으려 했다. 당시 사건을 겪은 분들에게 이 영화가 누가 되지 않길 바랐다.

- 1969년 태인은 납북 중인 여객기를 공격하지 않은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71년엔 하이재킹 상황의 당사자가 된다. 어떤 의도로 짠 이야기 구조인가.

= 69년 KAL기 납치사건을 접목했다. 아예 무관한 별개의 실화를 엮는 방식이었는데 시나리오 단계 때는 찬반이 갈렸다. 하지만 나는 두 사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69년 사건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한 11명의 국민이 있고, 이것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여겼다. 이분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 영화의 대사를 빌리면 태인은 “알량한 휴머니즘”을 고수하는 인간이다. 타인을 위한 그의 희생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나.

= 작업하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왜 그분은 몸으로 수류탄을 막는 선택을 했을까. 과연 난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71년 사건에 관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봤다. 공통되게 “그 자리에 내가 있었고 내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었다. ‘내가 의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불이 난 버스의 기사를 구한 시민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지하철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민을 부축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절박한 상황엔 누구나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태인도 그랬을 것이다.

- 영화는 태인이 민항기를 쏘지 않은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는다.

= 태인조차 자신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다. 자기 행동의 정확한 이유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 결과론인 거지”라는 기장 규식(성동일)의 말처럼 현실은 늘 알 수 없는 결과론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이든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영화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 항공기 납치사건의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숏 사이즈를 역동적으로 바꾸며 분위기를 긴박하게 이끌거나, 현장감을 살린 기내 시퀀스의 촬영 방식이 눈에 띈다.

= <알제리 전투>나 <블러디 선데이> 같은 영화를 참고했다. 촬영감독님과 기내 장면을 찍을 때 관객이 비행기 안에 있는 느낌으로 작업하면 좋겠다는 논의를 거치고 핸드헬드를 주로 사용했다. 실제 비행기 안에서 찍을 수 없는 앵글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엄청나게 후회했다. (웃음) 승객만 해도 60명이 넘으니까 촬영, 조명 장비를 제대로 넣기도 힘들었고, 좁은 문 하나로 100여명의 배우와 제작진이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럼에도 처음의 원칙을 잘 지켜서 모두 뿌듯해했다. 참여해준 모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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