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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류형진 이매지너스 부대표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4-03-08

전 스튜디오드래곤의 수장 최진희 대표가 만든 회사. 이 사실만으로 이매지너스는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됐다. <씨네21>이 매년 영상업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망 설문에서도 2024년 주목하는 스튜디오 5위에 올랐다. 류형진 이매지너스 부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 정책 연구원, CJ ENM 방송 전략기획팀장, CJ ENM 디지털콘텐츠사업팀장, 스튜디오드래곤 사업전략담당 겸 콘텐츠기획개발담당 등을 거쳐 최진희 대표와 함께 이매지너스로 독립했다(과거 <씨네21> ‘한국영화 블랙박스’ 꼭지의 필진이기도 했다). 그를 포함한 CJ ENM 인사들은 일종의 음악 레이블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조합’을 지향하는 지분 구조를 만들었다. “스튜디오드래곤에서의 경험상 CP들끼리 시너지효과가 나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 거의 독립적인 회사처럼 움직인다. 다른 스튜디오라면 팀 단위가 됐을 조직을 각기 다른 회사로 만들었다. 각자의 특성을 가진 창작자가 중심이 된 회사를 보장하며 주요 크리에이터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홍자매 작가를 중심으로 드라마작가들이 소속된 스튜디오 솥, 김희원·장영우·최정규 감독과 송경화 PD 및 여러 창작자들이 소속된 쇼러너스,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박준화 감독의 스튜디오 알짜, 장르물을 중심으로 한 김홍선 감독의 에이치하우스, <극한직업>을 제작한 어바웃필름, 배우 강동원이 공동 대표로 있는 제작사 스튜디오 AA, 이나정·이윤정 감독, 김진이 PD 등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주축이 된 트리스튜디오 등 10여개의 레이블이 이매지너스 산하에 있다. <나 혼자 산다>를 연출한 황지영 전 MBC PD는 이노션과 이매지너스가 함께한 콘텐츠 제작 전문 조인트벤처 스튜디오어빗을 이끌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여기서 이매지너스는 레이블에서 기획, 제작한 콘텐츠들을 사업화하고 투자를 유치해오고 전체 경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전지현, 강동원 주연의 <북극성>, 신현빈, 문상민 주연의 <새벽 두 시의 신데렐라>, 홍자매 작가의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등의 라인업을 구축한 이매지너스를 만났다.

- 이매지너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SLL이나 스튜디오드래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스튜디오를 인수합병해 몸집을 키우는 행보를 걷지 않을까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이매지너스가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이와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보인다.

사실 최진희 대표가 갖고 있는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해 그들을 한 회사에 모두 담아도 됐다. 그보다는 회사마다 특성을 살리면서 그들 각자가 사이즈를 키울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게 맞겠다고 판단해 지금의 이매지너스를 세팅했다. 그래서 회사 소개를 할 때도 스튜디오보다는 ‘크리에이터 그룹’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IP를 보유하고 사업을 하는 주체가 크리에이터 집단인 형태를 지향한 것이다. 실제로 이매지너스 주식의 대부분을 크리에이터들이 갖고 있다.

- CJ ENM에 있을 때 느낀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모델인가.

개별 크리에이터들과의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CJ ENM이 후발 사업자임에도 금방 경쟁자들을 따라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창작자들에게 높은 계약금을 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그들은 훨씬 막강한 자금력을 갖고 있다. 경쟁적으로 비딩이 붙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매지너스를 차릴 때 핵심은 회사 자체를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있는 분들은 이매지너스와 한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들이고, 우리는 회사의 지분을 공유하며 패밀리십을 형성했다. 이매지너스가 성장하면 레이블도 성장한다. 감독의 연출료가 한없이 올라가기보다는 작품이 흥행해 이익이 날 때 창작자도 더 높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짰다. 무엇보다 크리에이터들은 돈만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이매지너스는 작품의 자율권을 모두 창작자들에게 준다. 그의 몸값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플랫폼과 협상하고, 제작비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이매지너스의 캡티브 채널(계열사 채널)이 없다는 게 신생 스튜디오에 한계로 작용하진 않나.

이매지너스를 설립한 2022년 초반,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오히려 캡티브 채널이 없다는 게 이득이 됐다. 스튜디오드래곤은 1차적으로 tvN과 티빙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콘텐츠가 좋기만 하다면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플랫폼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캡티브 채널만 한 버팀목이 없다. 다행히 정서경 작가와 홍자매 작가 등 좋은 분들이 우리와 함께하다 보니 글로벌 OTT가 큰 우군이 될 수 있다.

- 불황 속에서 이매지너스는 어떻게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나.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전략을 짰다. 첫 번째, A급 역할을 해야 하는 작품은 무조건 넷플릭스나 디즈니+로 가야 한다. 1년에 한두편은 프리미엄 편성을 따야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그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우리가 만드는 게 목표다. 최진희 대표가 S급 크리에이터들을 데리고 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다음은 TV를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드라마, 치정극 등 중간급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회당 2억~30억원까지 제작비가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TV채널은 드라마를 편성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들이 구매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해외 사업자들에게는 아직 한국 콘텐츠가 소구하는 매력이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에 밀려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해외 지역별 OTT와 연합할 수 있는 회당 10억~15억원의 드라마를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올해 선보일 <새벽 두 시의 신데렐라>가 그런 작품이다. TV 편성을 전제로 국내 및 해외 지역 OTT에 풀고, 여기에 부가 사업을 하고 제작 지원금도 받는다면 110% 정도 제작비 리쿱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할리우드나 일본과 다이렉트로 공동 제작을 할 수 있다. 원래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다. 내수시장에 나온 콘텐츠로 글로벌 유통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내수 자체가 줄어들면 유통 물량도 줄어든다. 국내 플랫폼만 상대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서는 생존이 어렵다. 그래서 해외 제작사와 직접 기획·개발을 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 글로벌 OTT 등장 이후 제작비 리쿱 방식도 달라졌지만 여러 한계도 지적된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디즈니+가 제작비 100%와 일정 수익을 개런티해주는 대신 IP 권한을 가져간다. tvN와 JTBC, 지상파는 제작비 100%를 주고 나중에 추가 이익이 나면 그중 일정 비율에 대해 제작 수수료를 주는 방식으로 계약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도 무너지고 있다. 지상파는 TV 방영권만 사거나 제작비 일부만 대고 이익은 제작사가 알아서 만들게끔 계약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방송사가 50%, 해외 판매 70%, 도합 제작비의 120%를 리쿱하면 성공한 콘텐츠가 됐는데 지금은 제작비의 20%만 방영권료로 지급한다. 40%만 받아도 많이 받은 축에 속한다.

- 스튜디오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신인 작가와 감독을 발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 어떻게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나.

가장 어려운 미션 중 하나다. S급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는 것은 친분이 있거나 돈이 많으면 된다. 그런데 제작사 단위에서 신인을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각 대학 졸업영화제를 보러 다니든지, 공모전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들을 어떻게든 알아내서 접촉하는 것 정도? 공모전 당선작 작가가 주최사와 계약을 맺지 못하면 기회가 열릴 수도 있겠다. 큰 공모전이 열린 후 1~2년이 지나면 그분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인다. 이를테면 그들의 대본이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면 작품을 확인하고 개별 접촉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1차 선별 단계다. 그렇게 작가를 데려와도 실제 계약이 성사되기는 어렵다. 신인 작가가 시나리오 하나를 만드는 데 거의 2년이 걸리고 기성 PD가 한명 붙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성공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많이 시도하는 방식이 S급 작가 혹은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붙고 그분이 발굴한 신인 작가 내지는 문하생이 함께 대본을 개발하는 것이다. 신인감독의 경우 잘나가는 연출자의 B팀 출신을 찾아본다. 그들이 입봉할 때 기성감독이 크리에이터로 붙어서 신인감독도 주요 신을 찍을 수 있게 돕는다.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약한영웅> 시리즈가 좋은 모델이다.

- CJ ENM과 JTBC가 성장하면서 이들과 손잡은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었다. 캡티브 채널을 갖고 있는 스튜디오드래곤, SLL 등 대형 스튜디오들이 다양한 기획을 선보였고 창작자에 대한 보상도 확실했다. 최근 이들과 계약을 맺었던 크리에이터들이 다시 시장에 나오고 있다.

많은 창작자들이 프리랜서로 나와 개인 제작사를 차리고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이매지너스는 그런 분들 중 일부를 모아 크리에이터 집단을 만든 것이다. 이제는 어떤 감독과 계약을 맺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뿐만 아니라 주요 스탭의 회사까지 엮여서 공동 제작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이중 편성을 따내는 핵심 역량이 있는 곳이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간다. 시장이 호황일 땐 너무 좋은 시스템이다. 그런데 콘텐츠 산업이 어려워지면서 이 흐름이 끊겼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도 당장 월급을 줄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다. 확실한 프로젝트가 있는 게 아닌 한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이렇듯 시장이 불투명해지면서 대신 분명한 차기작이 있는 스튜디오들의 가치는 올라간다. 연상호 감독의 프로젝트가 줄지어 예정돼 있는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약한영웅> <D.P.> 시리즈를 성공시킨 한준희 감독의 쇼트케이크가 그 예다. 지금은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 작품을 계속 이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스튜디오의 존재 가치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 콘텐츠 시장이 위축되고 편성띠 자체가 줄어들면서 주목할 만한 연출자를 찾는 일도 어려워졌겠다.

지상파는 연출자를 채용하지만 CJ ENM은 프로듀서만 뽑지 않나. 그래서 예전엔 지상파에서 누가 입봉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금은 그런 인재를 알아볼 작품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새로운 감독은 영화계에서 배출되고 있다. 제작 현장에서 역량을 키운 연출부, 조감독 출신 중 괜찮은 사람들을 찾고 있다.

주목하고 있는 설립 5년 미만의 신생 제작사

변승민 대표의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탄탄한 라인업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약한영웅> 시리즈를 선보인 한준희 대표의 쇼트케이크도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매지너스의 레이블 중 쇼러너스를 주목하고 있다. 갖고 있는 잠재력은 이매지너스 밖에 내놓아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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