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러 가기 직전까지 내게는 ‘정리된 선입견’이 있었다. 하나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불만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월드 뮤직을 좋아한다는 취향은 ‘해외여행이 취미’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판단이었다. 색다르고 이색적인
것에 대한 취향을 존중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건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는 ‘로컬’한 차원에서 한국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과 관련된 ‘월드 뮤직 붐’의 이상 열기에 대한 뜨악함이었다. “10년 전 재즈 붐이나 진배없다”, “냄비근성이 어디
가겠어”, “세계적 유행의 끝자락을 잡는 한심한 소치다”, “그래봤자 코리안 센티멘털리즘의 확대연장일 뿐이다”는 식이라서 저차원적이었지만
그럴수록 더 확고했다.
따라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 음악’을- 싸구려 팝같이 되어버린 ‘라틴 음악’이나 ‘살사’가 아니라- ‘월드 뮤직’으로
마케팅하는 전략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지하듯이 ‘이국적이고 낯선 감정’이야말로 월드 뮤직으로 인정받는 필요조건이다. 그렇지만
영화에 나오는 쿠바 음악의 여러 장르들인 손, 단손, 과히라, 볼레로, 맘보 등이 정말 낯선 것일까(이 장르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라.
음반 부클릿을 보면 곡마다 나와 있으니까). 손이란 쿠바 외부에서 ‘룸바’라고 (잘못) 알려진 스타일이며(진짜 룸바는 쿠바 흑인의 ‘길거리
댄스음악’이다), 단손이란 맘보로 발전하기 이전의 스타일이고, 볼레로는 라틴 아메리카판 발라드라고 생각하면 되고, 과히라는 <관타나메라>라는
노래만 알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아마도 나이가 지긋한 관객이었다면 이런 음악들이 한때 ‘댄스 홀’과 ‘카바레’에서 흘러나왔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때 들었던 느낌처럼 익숙하지만은 않고 또한 ‘천박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연하게도 첨단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음반을 들을 때나 영화가 상영될 때 재생되는 사운드는 쿠바의 여기저기서 ‘강물처럼 흘러나오는’(속지에 적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운드와는 무언가 질감이 다르다.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프로듀싱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될 수 있다. 음반의 주인공이 작곡자인가,
연주자인가, 제작자(프로듀서)인가는 논란이 많지만 이 음반의 경우 프로듀서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보인다. 프로듀서는 영화에도 줄곧 모습을
드러낸 라이 쿠더다.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라이 쿠더는 빔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사운드트랙을 맡은 인물로 유명할 것이다. 음악 팬이라면 그가 컨트리,
포크, 가스펠, 텍스-멕스(Tex-Mex) 등 북아메리카권에서 기타와 관련된 음악이면 가리지 않고 탐사했던 인물이라는 사실도 알 것이다.
그 영화에서 블루스풍의 슬라이드 기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면 그와 더불어 삽입되던 효과음들(음악 애호가라면 ‘앰비언트하다’라고
말할 사운드 이펙트들)도 같이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미국 남부의 똥냄새나는 기타 소리는 황량하지만 명상적인 분위기로 반전된다.
미국의 오래된 음악(그들 말로는 ‘루츠 음악’)을 대하는 라이 쿠더의 태도는 1990년대 이후 미국 외부로 시야를 돌릴 때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V. M. 바트(Vishwa Mohan Bhatt)나 말리의 알리 파르카 투레(Ali Farka Toure) 같은 ‘제3세계’의
연주인들과 협연할 때도 인도나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혹은 ‘고전’음악)은 첨단 프로듀싱을 통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했고, 이를 통해
그는 1994년 그래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기억이 모더니티와 만날 때
이 점이 월드 뮤직이 성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단지 낯설고 아득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현대 대중음악의 사운드에 익숙한 청자의 귀를
잡아끌어야 한다. 사운드트랙 음반은 들을 만하지만 ‘쿠바 음악(혹은 손)의 전설’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Arsenio Rodriguez)의
1940년대 레코딩을 들어보면 마치 박물관에 온 기분일 것이다. 역으로 ‘현대적 감각’이 과도하다면 <라이온킹>이나 <시티 오브 조이>
같은 괴상한 사운드트랙이 나오므로 ‘자제’도 필요하다. 이걸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던 중 <뉴욕타임스>
기사의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월드 뮤직은 “기억이 모더니티와 만날 때”(when memory meets modernity) 만들어진다는
것이다(이럴 때 나는 영화에서 쿠바 음악인들이 뉴욕에 가서 맨해튼의 빌딩 숲을 보고 감탄하던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된다. 제길).
그래서 ‘이 영화에서 라이 쿠더의 역할은 <시티 오브 조이>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의 역할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안고
극장을 향했다. 후배가 “영화 보러 가기 전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 한다”고 말해서 전날 밤 잠도 충분히 잤다. 카메라가 이리저리 춤추는
요즘 영화에 어질어질함만을 느끼는 사람으로서는 그의 영화는 서서히 움직이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잡념’을 떠올리기 좋았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경은 쿠바라는 나라다. 시간대나 기후, 이념과 체제 등 한국과는 여러 모로 정반대라는 알량한 지식으로 인해 ‘찬찬히 뜯어봐야겠다’는
다짐까지 있었으므로 더 많은 잡생각이 몰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쿠바, 하바나? 아바바나!
쿠바, 그곳은 여러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그림 같은 카리브해의 해변이 한쪽 극단에 있는 이미지라면, 염소 수염을
한 카스트로 ‘동지’의 영도하에 인민들이 사회주의 건설에 일로매진하는 모습이 다른 한 극단에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카리브해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리면서 불야성을 이루었다는 아바나의 나이트클럽의 옛 모습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언제 보았을까? 가보지도 않은 곳에서, 태어나기도 전의 모습인데 말이다. 그때 쿠바를 무대로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드니 폴락이 감독을 맡고 로버트 레드퍼드, 레나 올린이 주연을 맡은 <하바나> 말이다. 쿠바혁명 전야를 배경으로
하여 직업 도박사인 남자와 카스트로파인 남편을 둔 여자 사이의 러브 스토리, 그러니까 정치와 이데올로기와 사랑이 얽히고 설킨 영화였다.
‘배경만 바꾼 <카사블랑카>의 리메이크’라는 혹평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미국판 <쉬리>’(이거 비난 맞나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영화로 기억된다.
각설하고. 10여 년 뒤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는 쿠바의 모습은 <하바나>에 비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관광호텔과 나이트클럽으로 상징되던
자본주의의 삐까번쩍함은 인민들이 사는 거리와 뒷골목의 사회주의적 꼬질꼬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대상이 호텔에서 뒷골목으로
바뀌었을 뿐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교통체증이라곤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대로 옆으로는 거대한 크기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WALL
MART쯤 되는 줄 알고 ‘경제개방 이후 쿠바의 현실’ 어쩌고를 떠올리려 했지만 왠지 방치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유심히 보았더니 KARL
MA□X였다. 스펠링을 틀린 게 아니라 R자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마치 조국근대화 시절 서민아파트의 간판처럼.
그뿐인가. 주택가 골목에는 쿠바혁명의 동업자인 체 게바라의 벽화, “혁명은 영원하다”라는 문구가 ‘남루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주의
인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그곳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자본주의의 슬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물론 뉴욕이나 LA
게토의 살벌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다지 산뜻하게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참 지지리도 궁상맞게 사는군’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카메라에 비친 그들의 표정에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살아온 이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느끼는 신기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덧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공연장의 모습과 인터뷰 장면과 녹음 장면 등이 교차하는 구성에서 쿠바의 노(老)음악인들은
정말 순수한 영혼으로 필름에 담겨 있었다. 90살을 넘긴 콤파이 세군도가 ‘여자를 밝히는’ 발언을 할 때조차도 음탕하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한때 ‘쿠바의 냇 킹 콜’이라고 불렸다는 이브라힘 페레가 “먹고 살기 위해 구두도 닦고 복권도 팔았다”는 말을 했을 때는
눈물마저 찔끔 흘렸다는 관객도 있다. 슬픔의 감정은 이브라힘 페레와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함께 <실렌시오>(Silencio)라는 볼레로 넘버를
부를 때 절정에 이른다. “정원에 있는 꽃들이 그녀의 슬픔을 본다면, 꽃들은 틀림없이 죽어갈 거야”라는 노래를 부르고 난 뒤 페레가 손수건을
꺼내어 오마라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찔끔 흘려야 했다.
한국 음악인들은 지금?
한마디로 영화는 나의 선입견을 ‘냉정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월드 뮤직이란 것이 ‘후진국의 소실되고 묻혀버린 음악 문화를
발굴하는 선진국 음악산업 시스템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적절하고 평등한 역할분담만 이루어진다면…’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못사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음악인들이 고통 속에서도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대해 값싼 감상을 드러낼 한국인의 수용 태도에 대한
불만도 ‘이렇게 각박하고 영악한 세상에서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저런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디냐’는 생각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찝찝한 게 남아 있었다. 그건 영화에 나오는 쿠바 음악인과 비슷하게 음악 활동을 해온 한국의 음악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었다. 라이 쿠더 같은 선진국 음악인이 경제적 여유가 너무도 많아서 세계 전역을 누비며 묻혀진 음악을 발굴하고 있다면,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들처럼 후진국 음악인들이 여유가 없었던 나머지 아직도 발굴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 앉아서 떠올린 마지막 잡념은 한국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선진국 음악인이 없는
건지, 아니면 관심을 끌 만한 음악이 없는 건지에 대한 헷갈림이었다.
신현준/ 문화수필가 http://shinhyunjoon.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