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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출하고 싶게 만든 이유는 모든 에피소드에 있었다”, <동조자> 박찬욱 감독·총괄 프로듀서·공동 쇼러너
임수연 2024-04-25

- <동조자> 연출을 맡게 된 배경으로 한국의 역사가 베트남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베트남전 참전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한국도 한때 식민지였으며 한국전쟁을 치렀다. 분단국가의 비극이라는 측면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떠오르지만 그 영화를 만들 때와 <동조자>를 연출할 때의 입장은 또 달랐을 듯한데.

= 베트남의 역사는 완전히 우리와 같지도 무관하지도 않은, 중간쯤 어딘가에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르고 어떤 부분에서는 닮았다. 때문에 좀더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동조자>는 베트남인뿐만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샌드라 오가 연기하는 미국인 캐릭터들도 무척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 점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공통점도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피(이영애)는 코케이션(백인)과 아시안 혼혈인 국외자이기 때문에 <동조자>의 캡틴처럼 양쪽의 입장을 모두 취하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 미국 <HBO> 드라마에서 베트남계 배우가 주연을 맡고 절반가량이 베트남어 대사인데 연출자는 한국인이다. 경계인의 정체성 혼란을 다룬 작품이 이처럼 충돌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 일단 이 소재를 선택한 <HBO>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제작비가 적은 작품도 아니고 한국인 쇼러너를 선택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동조자>가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다인종, 다국적, 다언어 국제성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 훌륭한 미국인 감독이나 베트남 감독이 연출한 결과물도 좋을 수 있겠지만 한국이라는 제3의 국가에서 온 쇼러너가 연출함으로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든 작품도 무척 흥미로우리라 본다.

- 쇼러너이자 여러 감독을 총괄하는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3회까지는 직접 연출하고 4회는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5~7회는 마크 먼든 감독이 찍었다. 전체적인 미장센을 맞추기 위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나 혹은 각자의 개성에 맡기는 쪽이었나.

= 영화 촬영 현장이 등장하는 네 번째 에피소드는 전체 스토리 중에서도 꽤 독립적이다. 그래서 자기 스타일이 강한 메이렐리스 감독이 연출했다. 다른 회차는 모두 김지용 촬영감독이 찍었는데 4회만 켄 로치 감독과 주로 작업한 베리 애크로이드 촬영감독이 맡았다. 편집도 일부러 메이렐리스 감독 스타일에 맞춰 아주 다르게 했는데 그런 작업이 참 재미있었다. 5~7회는 일관성을 위해 마크 먼든 감독에게 내가 미리 찍은 분량을 보여주면서 어떤 분위기인지 설명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노골적으로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키는) <더 햄릿> 제작 과정이 담긴 회차를 당연히 박찬욱 감독이 연출할 거라 상상했다. 시점과 영화적 재현의 문제를 다룬 이 에피소드를 다른 감독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 내가 연출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는 모든 에피소드에 있었다. 다만 전체 각본을 쓰면서 쇼러너 역할을 하고 동시에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다른 감독이 다른 에피소드를 찍는 동안 나는 그다음 에피소드 각본을 써야 했기 때문에 혼자 다 해낼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4회부터는 다른 연출자가 맡게 됐다. 4회는 활력 있고 유머러스하고 문화의 충돌을 좀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베트남전 이야기를 미국에서 미국 감독이 찍는 것은 동양인들에게 ‘웃픈’ 일이다. 원작은 소설가의 상상으로 쓰였다면 드라마는 영화인의 실제 경험이 더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각색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 원작은 캡틴 내면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그의 정체성 혼란이 가감 없이 묘사되면서 소설이 다소 난해하다고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있는 듯하다. 각색이 어렵지는 않았나.

= 그런 얘기를 많이들 한다. 시리즈화 제안을 받은 후 소설을 읽었는데 각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상상이 잘 됐다. ‘캡틴이 자수서를 쓴다’는 틀이 있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 형식이 잡혀 있었고 내면의 목소리는 보이스오버로 처리할 수 있었다. 단지 머릿속 생각을 보이스오버로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치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캡틴의 자수서를 놓고 재교육 캠프의 소장이 추궁하면 이를 또 해명하는 대목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프리즈 프레임 후 리와인드해서 과거로 돌아간 뒤 다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과 내러티브가 하나가 되는 재미있는 연출도 할 수 있다.

- 필름과 같은 룩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그레인 효과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타이틀 시퀀스도 고전영화 느낌이 물씬 풍긴다.

= 디지털영화를 시작한 이후 필름 룩을 재현하는 일은 내겐 언제나 큰 숙제였다. 디지털테크놀로지를 실험하기 위해 만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필름으로 찍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영화다. 1970년대 시대 배경은 더더욱 쨍한 디지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레인뿐만 아니라 조명과 색보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연스럽고 고전적적인 필름 룩을 만들었다.

- <리틀 드러머 걸>이나 <동조자>나 박찬욱 감독 특유의 인장이 두드러진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리즈를 연출할 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연출하나.

= 지금까지 단 두편의 시리즈를 연출했기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그 두 시리즈의 공통점을 꼽자면 내가 원작 소설을 읽고 좋아하게 돼 연출하게 됐다는 것일 테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각색한 <박쥐>,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아가씨>는 스토리가 많이 바뀌었지만 시리즈는 훨씬 원작의 플롯과 캐릭터를 존중하며 각본을 쓴다. 영화는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원작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각색이 필요하지만 시리즈는 그럴 필요가 없다. 또한 조연 캐릭터까지 많은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풀어놓고 클리프행어 등 드라마의 전통적인 문법을 따르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택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와 시리즈를 연출할 때 태도가 달라진다. 스토리보드를 만들 시간도 그대로 찍을 수도 없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몇개의 문장으로 된 촬영 계획만 들고 순발력 있게 현장 상황에 대처하며 즉흥적인 연출을 많이 한다. 카메라 두대로 찍은 후 편집실에서 많은 것을 창조하게 된다. 이런 작업이 신나고 재밌다. 영화와 시리즈를 왔다 갔다 작업하면 기분 전환도 된다.

- <동조자>를 통해 호아 쉬안더라는 배우를 처음 발견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은 뭔가. 샌드라 오의 출연은 느슨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였던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인들의 결속력이 가시화된 사건처럼 보였다.

= 일단 주연배우는 베트남어와 영어를 모두 잘하면서 혼혈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를 충족하는 배우들을 우선적으로 찾아봤다. 오디션이라는 게 막막한 것처럼 보여도 임자를 만나면 그 순간 알아볼 수 있다. 호아 쉬안더는 김태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보자마자 마음속에서 일찌감치 판단을 내렸던 배우다. 다만 작품 규모가 크고 모든 신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또 화상통화를 통해 여러 차례 만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선택했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과정이 있었고 그 판단에 대한 의심은 없다. 젊고 경험이 적은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숙하게 잘해냈다. 샌드라 오는 공동 쇼러너로 함께한 돈 매켈러 작가의 데뷔작 주연이었다. 두 사람이 거의 베스트 프렌드다. 그래서 예전에도 함께 만난 적이 있다. 언제나 그의 연기를 보고 감탄해왔다. 샌드라 오가 조연 캐릭터로 나와줄지 걱정했는데 함께하기로 해줘서 참 고마웠다. 그는 아주 정확한 연기를 하는 선수다. 섬세한 계획과 완벽한 통제하에 감정 표현의 수위를 조절한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오렌지 카운티 하원의원, CIA 요원, 할리우드 영화감독 등 미국 기득권층 일부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전세계인이 알아보는 슈퍼스타가 1인 다역을 연기하게끔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 원래 <동조자>는 6부작이었다. 원작을 어떻게 각색할 것인지 프로듀서, 공동 쇼러너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백인 남성 캐릭터를 어떻게 형상화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각자 비중은 크고 작지만 등장 시간과 무관하게 모두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다른 배우가 연기하면 캐스팅이 어려워진다. 캐릭터의 존재감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강해지지 않는 것 또한 걱정됐다. 결국 미국이라는 시스템, ‘제국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미국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몸통이라면 4명의 캐릭터는 미국의 다른 얼굴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면 결국 이들은 하나의 몸을 공유한다는 개념이 살 것이며 관객 또한 그렇게 느낄 거라 판단했다. 다양한 면을 재치 있고 발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출중한 연기력은 물론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힘이 있는 유명 배우였으면 하는 실리적인 계산도 있었다. 제일 먼저 떠올렸던 배우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 <동조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며 다층적인 인간이 진정한 혁명을 성립시키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지금 시대에 이런 질문을 담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 이념의 치열한 전쟁으로 인해 불가피한 희생이 이어지며 개인이 사라지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과 진보, 혁명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은 이토록 어렵지만 끝끝내 포기해서는 안된다. 개인과 관용 양면을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시야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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