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로 다친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 탓에 벚꽃을 만질 수 없는 미소(천우희)의 손과 보험조사원 강수(김남길)의 손이 포개지는 순간, 이들의 심장 박동을 대변하는 듯 다정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화면 가득 메운 벚꽃과 피아노의 조화에 새삼 귀 기울이게 된 것은 이윤기 감독의 <어느날> 덕분이다. 두 사람의 인생에 찾아온 비극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이윤기 감독과 오랫동안 작업한 밴드 ‘푸딩’ 출신의 김정범 음악감독 작품이다. 그는 “<어느날>은 피아노로 작업해야겠다”고 결정한 뒤 다소 이색적인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연주 자체를 실제 피아노와 더불어 두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쓰거나 현에 이물질을 부착해 음질과 가락을 바꾼 그랜드피아노를 뜻하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로 연주하는 등의 시도를 한 것.
“반드시 실제 녹음이 좋다, 고 여기는 사운드트랙의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다양한 피아노 소리를 섞으면서 “해당
[영화人] <어느날> 김정범 음악감독
-
굳이 직접 나서서 민가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과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왕 예종(이선균). 사관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싶은데 놀라운 기억력을 인정받아 왕의 비밀 수사에 동원되는 신입 사관 이서(안재홍).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이 두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버디무비다. 문현성 감독은 허윤미 작가의 동명의 원작 만화에서 캐릭터 설정만 빌려왔을 뿐 영화의 내용은 온전히 새롭게 채웠다. 남북 탁구 단일팀을 소재로 한 영화 <코리아>(2012)로 데뷔한 그는 이번엔 감동이 아니라 웃음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시대극의 고정관념을 깨기까지, 코미디의 노선을 지켜내기까지 문현성 감독이 감독수첩에 고민하며 적어두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다.
-원작은 순정 만화였는데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순정 만화의 느낌은 살리지 않았더라. 원작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뭐였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 인물 설정이었다. 왕과 사관, 두 캐릭터 사이의 신분
[people] <임금님의 사건수첩> 문현성 감독
-
이선균을 생각할 때 우선 떠오르는 건 그의 울림 가득한 목소리다. 이선균의 목소리는 드라마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2005), <커피프린스 1호점>(2007), <하얀거탑>(2007) 등에서 믿음직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짜증과 냉소가 섞인 말투와 결합하면 드라마 <파스타>(2010)나 영화 <끝까지 간다>(2013)에서 확인한 것처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로맨틱과 믿음직함과 시니컬과 지질함을 오가며 부지런히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선균이지만 한때는 그도 고민 많은 신인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손님은 왕이다>(2006) 개봉 당시 가진 인터뷰에서 이선균은 이런 말을 했다. “뭘 하고 싶다고 세상이 다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역할들은 싫고, 소모되는 역할은 거절했더니 나중엔 일이 잘 안 들어오더라.” 이제는
[메모리] 10년을 한결같이 - 이선균
-
<특별시민>의 박경은 이제껏 심은경이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실제 심은경의 모습과 가장 다른 인물이다. 변종구(최민식) 선거 캠프의 공보 담당자인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야심이 큰 데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여성이다. 코미디면 코미디(<써니>(2011), <수상한 그녀>(2013), <걷기왕>(2016)), 스릴러면 스릴러(<널 기다리며>(2015), <조작된 도시>(2017)) 등 장르영화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준 심은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녀에게 박경은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보게 해줬고, 앞으로 연기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캐릭터가 들어와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나한테 맞는 역할일까, 해낼 수 있는 인물일까. 고민이 많았지만 감독님께서 내가 기존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신 것 같아 출
[커버스타] 특별한 변신 - <특별시민> 심은경
-
-
“선거는 말이야.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각종 스캔들과 비리, 음모와 배신의 늪에서 발버둥치면서도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변종구(최민식)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는 <특별시민>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 중 하나다. 누구보다 프로답게 보여야 할 인물에 곽도원이라는 선택지는 최적의 답안이었다. <아수라>의 김차인 검사와 <변호인>의 차동영 경감이 그렇듯, 특정 직업군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강한 설득력과 놀라운 현실감을 부여하는 건 배우 곽도원의 주특기이며 <특별시민>에서도 그런 그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편인가.
=전혀 없었다가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을 접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별시민>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이 포털 사이트에 ‘정치’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모아서 쓰는 게 정치라더라. 그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쓰고 있을
[커버스타] 그가 이끌어낸 답 - <특별시민> 곽도원
-
슈트 차림에 말끔한 커트 머리. 3선 도전 서울시장 변종구의 ‘규격’에 맞게 최민식은 체중을 감량하고, 현란한 화술과 마스크를 장착했다. 권력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발톱을 숨긴 채 가족마저 이용하는 파렴치한. 권력에 도취한 채 질주하는 그의 이름은 ‘정치인’이다. 거대한 도시 서울의 심장을 흐리게 만드는 악인 변종구.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얼굴은 최민식의 연기 구력을 바탕으로, 영화가 아닌 현실의 기시감을 더해준다.
-이순신 장군(<명량>),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대호>)처럼 최근 맡은 배역이 우직하게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었다면,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신념 따위는 저버릴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다.
=말에 집중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만큼 말에 의존하고,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자기 표피를 변화시켜 방어하고 공격하는 <동물의 왕국>의 동물이 연상되는,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 현란한 언어의 연금술사랄까. 이 사
[커버스타] 캐릭터에 대한 욕심 - <특별시민> 최민식
-
정치의 계절에 찾아온 <특별시민>은 대선을 눈앞에 둔 5월 극장가에서 시의성만으로는 가장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한국영화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극적이라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는 제작진의 고민이 깊지만, 프로페셔널한 정치인의 옷을 입은 베테랑 배우들의 ‘썰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특별시민>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속을 알 수 없는 서울시장 3선 후보, 닳을 대로 닳은 정치 9단의 참모, 이제 막 진흙탕 싸움에 뛰어든 정치 신인을 최민식, 곽도원, 심은경이 연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련한 연기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세 배우가 한 영화 속에 자리할 때 우리는 어떤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인가? 프로가 연기하는 프로의 세계에 대해 <특별시민>의 세 배우에게 물었다.
[커버스타] 프로가 연기하는 프로의 세계 - <특별시민> 최민식·곽도원·심은경
-
자고로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정의를 위해 여러명이 함께 싸우는 영웅 시리즈물 장르)의 중심은 레드가 아닌 핑크다. 미모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 역시 필수조건이다. 누가 더 예쁘냐는 외모 줄세우기와는 조금 다르다. 레인저의 두 여성 멤버 중 옐로가 쾌활함과 발랄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핑크는 색깔 그대로 사랑스럽고 화려하면서도 역경에 굴하지 않는 밝음이 필요하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할 줄 아는 자존감을 덧붙이면 더욱 좋겠다.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에서 핑크 레인저로 변신하는 킴벌리 역을 맡은 나오미 스콧은 핑크의 조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배우다. 1993년 영국 하운즐로에서 태어난 나오미 스콧은 2008년 TV시리즈 <라이프 비트>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SF, 뮤지컬 장르 등에서 꾸준히 얼굴을 알려왔다. 201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드라마 <테라노바>에서 주인공의 딸
[who are you] 핑크의 사랑스러움 레인저의 자신감 -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나오미 스콧
-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는 유독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가슴 속에 저마다의 생채기를 안고, 그것을 소리내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 카메라가 담아낸 그들의 뒷모습은 상처받은 이들이 겹겹의 방어막으로 무장한 얼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암시하는 듯하다. <어느날>의 촬영을 맡은 최상호 촬영감독은 모든 걸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윤기 감독 특유의 미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스탭 중 하나다. 지난 2006년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이윤기 감독과의 협업을 시작한 최상호 촬영감독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와 <멋진 하루>를 거쳐 <어느날>에 이르기까지 이윤기 감독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이윤기 감독님의 영화는 일상적이면서도 그 가운데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포착해야 한다. 그게 늘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가 오직 한 남자의 눈에만 보인다는 판타지적인
[영화人] <어느날> 최상호 촬영감독
-
“안재홍의 매력? 귀, 여, 움!”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문현성 감독과 제작자 최아람 대표에게 물었더니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짐작하건대 안재홍의 귀여움은 그간 그가 보여준 캐릭터들간의 공통점, 그러니까 어딘가에 몰두하고 몰입하는 모습에서 오는 것 같다. ‘안재홍이라는 신기한 배우가 나타났다!’며 환대하고 싶었던 <족구왕>(2013)의 복학생 만섭이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안재홍을 각인시킨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의 정봉을 생각해보자. 세상물정 모르고 자기만의 관심사에 꽂혀 사는 엉뚱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궁금해하고 관심 가는 일에 흠뻑 빠져 저만의 방식으로 애정의 대상을 알아가고 터득한다. 괴짜라거나 제 세계에 고립된 채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인물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걸 꾸준히 탐하고, 성실하게 바라기한 끝에 예상치 못한 일격을 가하는 인물이다. 그만의 내공이 사랑스럽다.
그런 안재홍
[커버스타] '어수룩'의 마스터 - <임금님의 사건수첩> 안재홍
-
이제까지 이선균은 한번도 도포 자락을 휘날린 적이 없었다. 사극 시나리오를 여러 편 받아본 적 있지만, 그때마다 각기 다른 이유 때문에 인연을 맺지 못했다. 꼭 사극을 해야 된다는 법은 없으니 “당장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까닭에, 그에게 사극은 “밀린 숙제” 같았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다소 의아해했던 것도 그래서다. “잘나가는 젊은 친구들이 덥석 물 만한 시나리오를 왜 나한테? (웃음)” 그런 그가 사극 출연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 건 단지 숙제를 해내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은 아니다. “과거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했다가 40대가 되니 사극은 안 하면 안 되는 장르가 되었다. 무거운 이야기였다면 겁이 났을 텐데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뛰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물론 사극이 처음이라 쉽진 않더라.”
그가 맡은 예종은 누구보다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다. 옳다고
[커버스타] 삐딱한 행동파 임금 - <임금님의 사건수첩> 이선균
-
뻔하지 않은 사극, 한번도 보지 못한 콤비를 보고 싶다면 <임금님의 사건수첩>(개봉 4월 26일)은 꽤 그럴듯한 선택지가 돼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익히 봐온 이선균은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 용포 자락을 휘날리는 왕 예종이 됐다. 근엄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보기 드문 삐딱한 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줄 아는 캐릭터로 사랑받아온 안재홍은 이번엔 머리 좋은 신입 사관 윤이서 역을 맡았다. 똑 소리나는 쪽이라기보다는 허당기가 엿보이고 어리바리한 구석이 꽤 있다. 마침 한양에 괴이한 소문이 떠돌자, 예종과 이서는 지식과 견문, 기지를 발휘해가며 진상의 실체를 파헤치려 의기투합한다.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임금님의 사건수첩> 속 ‘과학수사’가 어떤 재미를 예고할지 궁금해진다. 영화에서뿐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 돈독한 선후배 이선균, 안재홍 조합을 만나 영화에 대해 미리 들어봤다.
[커버스타] 똑똑한 연기의 힘 - <임금님의 사건수첩> 이선균·안재홍
-
“착한 꽃이지만 아픈 꽃.” 배우 임화영이 말하는 영화 <어느날>의 선화다. 그녀의 죽음은 늘 함께였던 남편 강수(김남길)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애써 봉인했던 기억들이 쏟아져나올까 두려워 차마 열지 못하는, 이층집 방문 같은 존재인 선화는 그러나 강수의 일상에 추억으로, 회한으로, 아픔으로 끊임없이 출몰한다. <어느날>에서 이처럼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이는 임화영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김과장>의 오광숙으로도 주목받았다. “꽈장님”을 외치던 <김과장>의 쾌활한 경리 사원과 아련하고 차분한 <어느날> 속 선화가 같은 인물이었다니! 최근 배우 임화영을 가장 기분좋게 하는 감탄사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한다.
-<어느날>의 선화는 강수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염두에 둔 선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상당할 것 같다.
=촬영하기 전 이윤기 감독님, 남길 오빠와 함께
[who are you] 늘 다른 모습으로 - <어느날> <김과장> 임화영
-
<보통사람>의 빛은 여간 작업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고, 밤 장면이 많은 데다가 실내든 로케이션이든 쉬어갈 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가 직조해낸 빛은 새벽, 아침, 낮, 석양, 밤 등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빛을 사용한 것도 그의 원칙이었다. 안기부 실장인 규남(장혁) 같은 권력자에게는 밝은 빛을 준 반면, 성진(손현주)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하이라이트가 센 빛을 주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정해지 조명감독이 즐겨 사용한 조명은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텅스텐과 HMI(데이라이트)이고, 30구 같은 텅스텐 라이트를 투입한 낮 신이 몇 있다. 그의 세심한 조명 덕분에 <보통사람>의 룩은 시대극 특유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보통사람>뿐만 아니라 <원라인>과 <해빙> 또한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원라인>은 “콘트라스트의 변화를
[영화人] <보통사람> <원라인> <해빙> 정해지 조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