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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없는 날 현장에 안 나가면 스탭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와 ‘어디세요, 왜 안 오세요?’ 그러면서. (웃음)” <범죄도시>를 찍을 때 전재형 무술감독은 현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액션 신 분량이 시나리오의 2/3에 달했기 때문이다. 허명행 무술감독으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합류한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됐고, 무술감독으로서 시도할 게 많아서 좋았”다.
그가 강윤성 감독과 함께 논의한 <범죄도시>의 액션 컨셉은 “기교를 부린 액션이 아니라 현실적인 액션”이었다. 흑룡파, 춘식이파, 이수파,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그가 신경 쓴 조직은 장첸(윤계상), 위성락(진선규), 양태(김성규)로 구성된 흑룡파, 그러니까 장첸 일당이었다.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이기는 전형적인 싸움 방식을 보여주는 게 싫었”던 까닭에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장첸 일당을 “들개 무리처럼 묘사”하는 거였다. 폐지
<범죄도시> 전재형 무술감독 - 징글징글하게 독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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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이 하는 스릴러, 나라면 투자는 못했을 거다.” <기억의 밤> 개봉 당일 아침장항준 감독이 시나리오만 보고 투자를 결심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말했다. <기억의 밤>은 극장 영화로는 <불어라 봄바람>(2003), 케이블 TV용 영화까지 포함하면 <전투의 매너>(2008), <음란한 사회>(2008) 이후 오랜만의 복귀작인 데다가, 그의 전공인 코미디가 아니라 웃음기 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다. 하지만 그가 드라마 <싸인>(2010)의 연출 및 극본을 맡았다는 점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장항준 감독과 서늘한 장르물 사이에는 중요한 접점이 있다. 극을 이끄는 삼수생 진석(강하늘)은 90년대 어느 중산층 가족의 일원이다. 그는 괴한에게 납치당한 후 19일 만에 돌아온 형 유석(김무열)의 이상한 행동을 감지하며 점점 평정심을 잃는다. 거의 호러영화에 가깝게 연출되는 형제의 이야기는 결국 90년대가 가진 어두운 일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영화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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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가 돌아온 것인가? 아니다. 지브리 출신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 ‘스튜디오 포녹’이라는 새로운 제작사를 차렸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없이 그들의 힘만으로 <메리와 마녀의 꽃>이라는 첫 장립작을 만들었다. 지난 20, 30년동안 스튜디오 지브리에 몸담으며 노하우를 축적해온 애니메이터들이 집결해서 만든 <메리와 마녀의 꽃>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천진난만한 소녀 메리가 천부적인 마법 재능에 눈뜨게 되는 이야기. 마치 평생을 애니메이션에 몸바쳐온 이들의 인생 자체에 던지는 판타지 같기도 하다. 지난 10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과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 그리고 주인공 메리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 스기사키 하나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제작사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하면서 <메리와 마녀의 꽃>을 창립작으로 내세웠다.
=니시무라 요시아키_ 2013년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부가 해체하면
<메리와 마녀의 꽃>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배우 스기사키 하나,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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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겹치고 겹쳐 지금까지 왔다.” 증국상 감독은 <도둑들>(2012)에서 4인조 중국도둑 중 한명인 조니 역으로 출연하며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배우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감독을 꿈꿔왔고 아버지인 증지위 배우의 절친이자 믿음직한 멘토 진가신 감독이 제작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6)에서 연출을 맡아 섬세한 연출력을 세간에 인정받았다. 홍콩영화계의 미래가 여기 있다.
-여성들만의 내밀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을 텐데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고, 그 영화들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항상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여자들 사이의 역학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성장했고 어머니 주변에는 항상 친한 동성친구들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도 같았던 어머니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항상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증국상 감독 - 여성들의 섬세한 관계를 풀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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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레일이 깔린 안정된 삶을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유를 꿈꾼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6)의 칠월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뜨거운 열망을 품은 여인이다. 중화권 차세대 스타 마사순은 그동안 반항기 넘치고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기존 역할과는 정반대인 칠월 역을 소화한 끝에 안생 역의 주동우 배우와 함께 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바야흐로 도약의 시점이다.
-제53회 금마장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최초로 공동 수상했다.
=금마장에서의 공동 수상은 정말 생각지 못했고 매우 감사드린다. 사실 수상 후 전반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그나마 제일 큰 변화는 좀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배우로서 나의 자질을 의심하던 사람들이 더이상 의심하지 않고, 나 역시 열등감을 조금씩 놓게 되었다. 안생 역을 맡은 주동우는 연기를 하는데도 연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편한 친구다. 사적인 자리에서와 연기할 때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배우 마사순 - 반대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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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피 속의 혈투>는 그런 고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치열한 현안을 제시한다. 제약업계의 이익에 봉사하는 시스템에 의해 의약품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1996년 이후 저가의 에이즈 의약품이 아프리카 및 남반부에 공급되는 걸 조직적으로 막고 있는 서양 제약회사들과 정부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천만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다.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인도의 딜런 모한 그레이 감독은 주저 없이 카메라를 들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국경없는영화제2017에 <피 속의 혈투>를 들고 방한한 그는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짧은 질문에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말과 생각들. 논리정연하게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은 세상을 향한 증언처럼 보였다. 아직 알려야 할 사실, 알아야 할 진실들이 너무 많다.
-국경없는영화제2017의 초청작으로 방한했다.
=국경없는의사회와는 오랜
<피 속의 혈투> 딜런 모한 그레이 감독 - 비극을 전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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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소에 가서 조상님께 기도하고 왔다.” <공모자들>(2012), <기술자들>(2014)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인데도 김홍선 감독은 마치 첫 영화를 선보이는 것처럼 긴장했다. 김홍선 감독의 사무실엔 <반드시 잡는다>의 인물 관계도와 배경 헌팅 사진, 너덜너덜해질 만큼 들춰본 시나리오가 붙박이 장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반드시 잡는다>에 쏟은 감독의 애정과 노력이 물씬 느껴지는 소품들이었다. <반드시 잡는다>는 그간 한국 장르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노인이 주인공인 스릴러영화다. 동네의 터줏대감 심덕수(백윤식)와 전직 형사 박평달(성동일)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캐릭터 코미디와 묵직한 스릴러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백윤식, 성동일 등 선배배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김홍선 감독을 영화 개봉 전날 만났다.
-<아리동>에서 <반드시 잡는다>로 제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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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잡는다> 김홍선 감독 - 노인의 액션 스릴러? 호감형 캐릭터 구축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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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우는 남한의 외교안보수석이다. 땜빵 인생을 자처하며 여기저기 대타 강의를 뛰고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덕분에 보수적인 현 정권과 반대 색깔인 차기 정권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CIA, 중국 공안에도 인맥이 있다. 그렇게 곽철우는 <강철비> 속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타이틀과 신념 이전에 그는 아버지이고 직장인이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곽철우 역에 곽도원이 필요한 이유다.
-양우석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처음부터 곽철우 역만큼은 곽도원 배우로 정해져 있었다고 들었다.
=양우석 감독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워낙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분이라 아이디어가 넘친다. 본래는 시나리오만 쓰고 연출을 다른 분에게 맡기려고 했다고 들었다. <변호인&
<강철비> 곽도원 -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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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신 캐릭터가 남자배우라면 한번쯤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되었음에도 북한 군복을 입고 북한어를 구사하는 정우성을 보니 낯설다. 정우성이 맡은 엄철우는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북한 1호’(김정은)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하는 북한군 최정예 요원이다. 양우석 감독은 정우성이 출연했던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서 보여준 외로운 가장의 모습을 보고 엄철우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출연을 요청했다”고 말해주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는 설정이 충격적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정우성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엄철우는 어떻게 다가왔나.
=한 가정의 가장. 처자식을 잘 돌보고 싶은 욕구가 크지만 현실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가장. 그래서 리태한 정찰총국장(김갑수)으로부터 쿠데타 공모 세력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았을 때 대의를 꿈꾸기보다 가족을 좀더 나은 생활로 이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강철비> 정우성 - 북한 사투리와 어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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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쉬리>(1999) 이후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도발적인 접근일 것 같다. <강철비>는 북한 1호가 쿠데타의 위기를 맞아 남쪽으로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를 움직이는 사건의 중심에는 ‘두 철우’가 있다. 정우성이 북한 최정예 요원 엄철우 역, 곽도원이 남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남과 북,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두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은 일견 익숙한 패턴이지만 정우성과 곽도원이라는 두 배우의 몸을 빌려 전에 없던 매력을 자아낸다. 강해져야만 했던 남과 북 철우들의 이야기, <강철비>의 두 남자를 만났다.
<강철비> 곽도원·정우성 - 철우, 철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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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소녀 나루세 준은 진심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다. 매사 소극적이고 쭈뼛거리는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길은 뮤지컬 공연이다. 준 역을 맡은 요시네 교코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다름 아닌 원작인 인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다. 소심하고 여리지만 배려 깊고 맑은 마음씨의 소녀. 애니메이션은 그런 소녀를 그리면 되지만 요시네 교코는 연기를 해야 한다. 아마도 나루세 준을 실사로 표현하는 데 현재 일본에서 요시네 교코만큼 적합한 캐스팅도 없을 것이다. <후지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라스트 신데렐라>로 데뷔한 요시네 교코는 귀엽고 맑고 청순한 캐릭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차세대 배우다. 거기에 더해 요시네 교코는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자신을 드러내고 감정을 쏟아내어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아도 항상 주변에 머물며 은은히 빛을 반사하는 달에 가깝다.
<하나코와 앤> <탐정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요시네 교코 - 맑고 은은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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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승 감독의 <7호실>은 망해가는 DVD방을 중심으로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이 평범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벌이면서 사건이 발생하는 영화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DVD방이 있어 이 공간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승택 촬영감독은 실제 압구정 인근에서 영업하는 DVD방을 답사하던 중, “1970년대 할리우드 팝아트 스타일의 너무 화려하고 영화적인 공간”에 놀랐다고 한다. “DVD방이라는 사실적인 공간을 영화적인 순간과 잘 만날 수 있게 정리해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동선이 복잡하고 긴 복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현장의 날것 같은 반응과 움직임, 대사를 어떻게 잘 잡아낼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성승택 감독은 이용승 감독의 전작 <10분>의 촬영감독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낸 이용승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따라 현장성을 중요하게 고민했다. “자연과 시간을 중시하고 날마다 배우의 움직임이나 대사, 현장
<7호실> 성승택 촬영감독 - 공간에 리얼리티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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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파 두목 장첸으로 <범죄도시>(2017)에서 윤계상이 전무후무한 악역 연기를 펼치는 동안, 스크린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끄는 또 한명의 배우가 있었다.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은, 정말이지 한시도 쉬지 않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민머리의 험상궂은 마스크로 흑룡파의 잔악함을 드러내고, 어필한다. 낯이 익지만 영화 속 모습이 사뭇 달라서 신선했고, 그래서 이제는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각인됐다. 위성락 역의 진선규는 늘 악당이 아닌, 순하고 선한 역할로 얼굴을 알려온 배우고, 이번엔 그간의 연기를 ‘판돈’으로 걸고 필사의 도전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범죄도시>가 680만 관객몰이로 흥행하기까지, 진선규를 모르고 극장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선규와 조연배우들의 활약 덕분에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다고 입모아 말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닥터스> 등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지난 15년간 묵묵히
<범죄도시> 진선규 배우, "역시 나보다는 영화가 더 잘되는 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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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버건디>는 프랑스 버건디 지방의 와인농장을 부모에게 물려 받은 세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다. 10년간 고향을 떠나 있던 첫째 장(피오 마르마이), 아버지가 죽자 돌아온 그에게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과 셋째 제레미(프랑수아 시빌)가 갖고 있던 서운함, 그리고 와인농장의 상속 및 부동산 문제가 엮인다. 적잖은 시간을 들여 숙성해야 하는 와인과 관계의 회복은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조응하고, 더 나아가 영화의 호흡과도 썩 어울린다. 제2회 프렌치 시네마투어 참석차 한국을 찾은 <백 투 버건디>의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을 만나 이 기막힌 결합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와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냥 직관이었다. 촬영하면서 와인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어떤 점이 흥미롭고 어디에 더 치중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게 바로 가족간의 연결고리였다. 특히 시간과 관련된 유사점이 많다. 만드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
<백 투 버건디>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 - 와인과 영화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