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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가 짐바브웨 감옥에 수감됐다면 <007 어나더데이>는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가 활약하는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판타지를 떠받치는 배경만은 지극히 사실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영화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부시의 발언이 있기 전에 기획됐지만, 그곳을 공격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만은 같은 수원에서 솟아나온 물줄기다. 어느 작은 나라가 전쟁의 위협에 직면한 채 불타고 있는데 미군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장면- 이 영화에선 영국 정보부지만- 은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종의 버릇이다. 그런 영화를 보고 자란 미국인이 약소국에서 살게 됐을 때 그 버릇을 ‘그건 판타지였으니까’라고 말하면서 손쉽게 팽개칠 수 있을지, 소심한 약소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아마도 타마호리는 의아해할 것이다. 유독 <007 어나더데이>만 문제삼는 까닭이 무엇일까, 남미 사람을 모두 마약상으로 그리는 영화들
스무 번째 007 영화 <어나더 데이> 멜버른 시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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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저 판타지일 뿐”감독 리 타마호리 인터뷰리 타마호리는 <007 어나더데이>가 순수한 액션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한국인들의 분노를 전해 듣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승낙한 타마호리는 가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고 변호했다. 타마호리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현실을 다룬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감독. <머홀랜드 폴스>를 연출하면서 할리우드 경력을 시작한 타마호리는 제작비 1억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 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타마호리는 “어떤 영화라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택했다고 말했다.▶ 007 시리즈는 악당의 국적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였다. 하지만 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인 DMZ에서 결정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강조하기도 한다. 당신은 왜 북한을 선택했는가.북한은 냉전이 끝난 현
스무 번째 007 영화 <어나더 데이> 멜버른 시사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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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007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다. 중학교 단체관람 때, 극장을 가득 메운 남학생들은 007에 열광했다. 특히 본드 걸이 나올 때마다. 잘생긴 로저 무어가 많은 본드 걸을 거느리고, 휘황한 액션을 선보이는 활극을 혈기왕성한 10대의 남자애들이 마다할 리 없다.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대사로 시작하여, 악당을 물리치고 본드 걸과 한가로운 한때를 즐기는 광경으로 끝나는 007 시리즈는 영원한 남자들의 꿈이다. 만화책의 초인들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지 않은 보통 남자 제임스 본드는 남자는 물론 여성들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영웅이다. 강하고, 섹시하고,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고 등등. 제임스 본드의 유혹에 말려들어 위험에 처한 본드 걸들도 꽤 있는 것처럼 제임스 본드는 우아하면서도, 위험한 남자다.살인면허 흥행면허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된 007 시리즈는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는 첩보원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을
007시리즈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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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가 악당 스카라망가로 출연한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까지 흥행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자 제작자인 브로콜리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에 운명을 건다. 잠수함으로 변하기도 하는 본드 카와 연속으로 007 시리즈에 출연한 기록을 세운 악당 죠스 역의 리처드 키엘 등 오락적인 요소에 충실했던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007 시리즈의 부활을 알렸고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도 정착된다.로저 무어는 <007 문레이커>(1979), <007 유어 아이즈 온리>(1981) 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1983년에 <007 옥토퍼시>가 숀 코너리 주연의 과 함께 개봉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흥행에서는 가 앞섰지만 솔직히 영화는 엉망진창이었다. 다음 작품인 <007 뷰 투 어 킬>(1985)도 졸작이었고, 마침내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도 막을 내린다.007
007시리즈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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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터 DVD까지,2002년 도마 위에 오른 뉴스메이커와 트러블메이커2002년의 영화인들 무엇을, 누구를 이야기했나 취재수첩을 팔락이며 밑줄을 그어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거미인간의 날카로운 키스에 난공불락의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억달러 장벽이 무너졌고 스튜디오들은 필립 K. 딕과 아동문학의 환상을 탐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소박한 살림의 영화들이 골리앗급 블록버스터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고 <취화선>과 <오아시스> <마리이야기>는 국제영화축제에 나서 ‘가문의 영광’을 뽐냈습니다. 행방불명된 센과 치히로는 세계 관객의 마음속에서 길을 찾았고 스크린에는 축구공과 스파이들이 종횡무진했습니다. 즐거운 서프라이즈 파티가 있었는가 하면, 가슴내려앉는 전갈도 있었습니다. 공과를 안은 채로 2003년에도 영화의 전장을 헤쳐갈 뉴스메이커와 트러블메이커들, 그들을 일별합니다.● ● ● ● 세계로 가는 한국영화지난해 시동을 건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됐다. 우
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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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큰돈 번 작은 영화들유난히 큰 제작비의 영화가 줄줄이 개봉됐던 올해, 진정한 승자는 적은 돈을 들여 큰 수익을 낸 ‘작은 영화’들이었다. 5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 대부분이 순익분기점에 크게 못 미치며 한국영화산업 위기론을 들먹이게 한 반면, 제작비 10억원대(또는 그 아래)의 영화 중 일부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신호탄은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가 쏴올렸다. 7억5천만원(마케팅비 5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전국 70만명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곧이어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5억원(마케팅비 16억)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전국 419만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부가판권이나 해외수익 등을 제외한 개봉수익으로만 투자사와 제작사에 90억원 정도를 안겨준 셈. <몽정기> 또한 만만치 않게 매운 ‘작은 고추’였다. 이 18억원(마케팅비 13억원)짜리 영화는 전국 240만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
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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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니 픽처스“이 기록은 그냥 1억달러 플러스 잔돈의 수준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선이 무너진 것이다.” <스파이더 맨>의 현란한 첫주 박스오피스 곡예를 본 할리우드 흥행 관측사들의 평이다. 2002년 여름 시즌은 1번타자의 첫 타석 홈런으로 개막됐다. <미이라> 시리즈와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새로운 대박 주말로 자리매김한 5월 첫 금요일에 개봉한 소니의 <스파이더 맨>은 3일간 1억1480만달러를 벌어 불과 6개월 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세운 9천만달러 기록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스파이더 맨>은 전 연령층에 어필하는 영화와 성공한 마케팅, 배급 파워가 결합했을 때 영화 한편이 하루에 4천만달러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음을 입증해 미국 영화산업 역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거미줄을 타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소니는 점유율 하위권을 맴돌던 지난해의 기억을 말끔히 청산했다. 총수익
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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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판타지 아동문학호그와트 학교만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를 배출하란 법이 있나 <해리 포터> 1편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2002년 내내 아동문학 서가를 먼지나게 뒤졌다. 이들의 특징은 대개 90분 남짓한 아담한 가족영화로 가공된 과거의 아동문학 각색물과 달리 최첨단 특수효과와 스타를 동원하고 프로덕션을 고급화한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에 있다. 이미 수차 영화화된 고전 <피터팬>과 <피노키오>는 ‘완역본’ 수준의 재현을 셀링 포인트로 내건 경우. 디즈니는 내털리 배빗의 베스트셀러 <턱 에버래스팅>을 제작했고 파라마운트는 <레모니 스니켓의 불운한 사건들> 메가폰을 배리 소넨필드에게 맡겼다. 유니버설은 닥터 수스의 <모자 속의 고양이> 영화화에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와 디자이너 보 웰치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반지의 제왕> 제작 참여로 짭짤한 수익을 본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도 말썽꾸러
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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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서울독립영화제가 존 카사베츠 회고전을 연다. 독립적인 영화란 무엇인지,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영화를 통해 어떻게 한 정신이 독립할 수 있는지를 거침없이 보여주었던 인물 존 카사베츠 감독을 돌아보기에는 썩 어울리는 자리다. 아담한 규모의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림자들> <얼굴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오프닝 나이트> 등 다섯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마틴 스코시즈, 존 세일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같은 우리가 신뢰하는 감독들의 찬사의 창을 통해서만 실루엣을 보아온 카사베츠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존 카사베츠, 드디어 그가 시비를 걸어올 것이다편집자어쩌면,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소비되면서 동시에 소모된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한 일이 되었다
2002서울독립영화제로 만나는 존 카사베츠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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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들>은 별다른 내러티브가 없다. 젊은이들은 적당하게 삶의 과정에서 절망을 겪고 사랑을 나누며 또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1950년대 미국사회를 스케치하는 것이며 당대 젊음의 기운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다른 연출작에 비해 <그림자들>은, 유독 카사베츠 감독이 형식적 자유를 만끽한 영화로 볼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의 규범과는 거의 관계가 없으므로. 내러티브는 산만하고, 촬영과 편집 모두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그런데 역으로 이 산만함이 당시의 관객과 미국 영화인의 호응을 얻었다. <그림자들>엔 문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약동하는 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정의하기 힘든 슬픔까지. 한쌍의 남녀가 희미한 조명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이후 허탈감에 빠져 서로의 행로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면 아릿한 느낌이 배어난다. 공원을 질주하는 남녀, 요란한 파티의 모습, 대도시의 야경을 차례로 스크랩하면서 <그림자들>은 동
2002서울독립영화제로 만나는 존 카사베츠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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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사베츠 회고전 상영작<그림자들> Shadows1959년 | 흑백| 82분존 카사베츠의 장편 데뷔작.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상 수상작이다. 비트족과 재즈에 열광하는 사람들, 도시의 밤을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빼어나게 담아낸 수작이다.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어지럽게 얽히다가 다시 풀어지는, 자유분방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메이저 영화사라면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연출기법으로 카사베츠는 인디영화계 스타로 떠올랐다.<얼굴들> Faces1968년 | 흑백 | 130분10여년이 넘도록 결혼생활을 이어온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이 행복하지 않은 커플을 통해 카사베츠 감독은 미국 중산층의 분열된 자화상을 그려보인다. 지나 롤랜드가 카사베츠 영화로선 처음으로 출연하고 있다. <얼굴들> 또한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으로 지나 롤랜드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카사베츠 영화에서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할 만한 작품.<영향 아래 있는 여자> Woman Under the Inf
2002서울독립영화제로 만나는 존 카사베츠 감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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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이 <해리 포터>나 <스타워즈>에 비해 현저하게 유리한 점이 있다. 우선 <스타워즈>에는 원작이 없다. 조지 루카스가 휘황한 상상력으로 선과 악의 싸움을 장황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사실 이야기상으로는 미진한 점이 많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로맨스도 공감과 연민보다는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더 많다. 한편의 영화가 끝나고, 다음 작품이 과연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 것인가를 기다리고 예측하는 재미도 있지만 특히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좀 미진했다. <스타워즈>에 비해 <해리 포터>는 막강한 원작이 있다. 그 원작들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정도가 문제다. 그러나 <해리 포터>도 <스타워즈>와 마찬가지로 ‘제작 기간’이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험준한 난관이 있다. <해리 포터>는 편마다 아이들이 한살씩 성장하는 설정
모습 드러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첫 시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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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영웅담, 풍요로운 서사<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린 판타지다. 사우론이라는 절대악의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오히려 내면의 두려움과 흔들림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반지를 모르도르의 불길에 던질 자는 가장 나약한 호빗족의 프로도다. 프로도는 끊임없이 반지의 유혹에 흔들린다. 만약에 간달프가 없었다면, 만약에 샘이 없었다면 프로도는 결코 모르도르로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반지는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자신이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보로미르가 그렇게 반지의 유혹에 눈이 멀었었고, 파라미르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 반지의 소유자였던 골룸은, 사실 골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프로도가 찾아준 이름처럼, 스미골일까 주인을 믿으면서 골룸에게 사라지라고 말한 스미골이었지만, 의심하는 순간 다시 골룸은 돌아온다. 우리 마음속의 미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도에게 반지가 주어진 것은, 그가 나약함을 알기 때문이다. 프
모습 드러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첫 시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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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가 손짓해 나를 부른다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간달프가 써내려간 ’간달프의 書’반지원정대를 이끄는 현숙한 마법사, 간달프가 돌아왔다.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할 새도 없이 모리아의 심연 아래로 추락했지만, 그의 부활을 의심한 관객은 거의 없었으리라. ‘회색의 마법사’로 불렸던 간달프는 눈 덮인 산에서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하고, 흩어졌던 반지원정대와 대전투를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간달프 역의 이언 매켈런이 ‘Grey Book’이란 제목으로 부지런히 써내려갔던 1편의 제작일지는, 올해 ‘White Book’으로 이어졌다. 너무 분주했던 탓인지 짤막하게 날아온 ‘간달프의 書’를, 발췌해서 실었다.2002년 6월25일뉴질랜드의 고대 마오리어 이름은 Aotearoa, ‘길고 흰 구름의 나라’다. 지난주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오클랜드공항을 낮게 날아 빠져나오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쪽의 웰링턴으로 가는 1시간 동안은 어둡고 저기압을 지나느라 심하게 흔들리는 데다 비가 창을 때
모습 드러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첫 시사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