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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일 다큐멘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 되돌아봐야 할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부터 복장도착자를 아버지로 둔 가족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감히 극영화로 접근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영화제 주최쪽이 귀띔한 대로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높고 대중적 재미도 만만치 않다. 부산에서 극영화보다 극적인 다큐멘터리의 세계로 흠뻑 빠져보시길.남동철 / 문석연안에서 온 딸 Daughter from Yan’an▶ 와이드앵글/ 일본/ 이케야 카오루/ 2001년/ 120분▶ 11월18일 오후 5시30분 부산3, 11월20일 오후 8시 부산3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사의 격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가 <연안에서 온 딸>은 70년대 자신도 모르는 새 문화혁명의 최전선에 섰던 1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다큐멘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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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알파벳 Afghan Alphabet ▶ 와이드앵글/ 이란/ 모흐센 마흐말바프/ 46분▶ 11월19일 오전 11시 대영6, 11월21일 오후 8시 대영6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을! 미래를! 1980년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발발한 이래, 2천만명 중 250만명이 죽었고 700만명이 집을 잃고 다른 나라를 떠돌고 있다. <아프간 알파벳>은 이란과 아프간 국경지대에 사는 아프간 어린이들을 주목한다. 바글거리는 난민의 아이들은 이란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소외돼 있다. <아프간 알파벳>은 UNICEF 등의 도움으로 이곳에 세워진 학교의 첫날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학교를, 아프간의 미래를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는 평등한 정보의 시대인가.라말라에서의 결혼 A Wedding in Ramallah▶ 와이드앵글/ 호주/ 셰린 살라마/ 2001년/ 90분▶ 11월19일 오후2시30분 대영5, 11월22일 오후 8시 대영5어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다큐멘터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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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슬로건은 서울여성영화제의 것만이 아니다. 내년 봄으로 기약된 여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린 영화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기가 지루하다면, 올 가을 부산영화제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산에도 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성해지고 있으니 말이다.박은영/김현정막달레나 자매들 The Magdalene Sisters▶ 오픈 시네마/영국/피터 뮬란/2002년/119분▶ 11월19일 오후8시 부산시민회관,11월22일 오후2시 부산시민회관신앙의 이름으로 억압받은 여성의 역사, 그 무덤에 꽃을 바치라. 막이 오르면 강간당한 소녀가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귀엣말로 이 ‘사고’의 전말이 퍼져나가는데,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 소녀에게 꽂히는 시선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책망과 경멸이다. 졸지에 소녀는 방탕한 죄인으로 몰리고 참회를 위해 수녀원에 보내진다. 너무 어리숙하거나 똑똑해서,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여성 영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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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코미디다 Sex is Comedy ▶ 월드 시네마/ 프랑스/ 카트린느 브레야/ 2002년/ 101분▶ 11월19일 오후8시 대영1, 11월21일 오후5시 대영1몸을 벗는 것보다 마음을 벗는 것이 더 힘들다. “말은 거짓이고, 몸은 진실이지. 이제부터 진실을 탐구해야 해.” <로망스> <팻 걸> 등 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카트린느 브레야는 그 작품들을 만들며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옷을 벗는 것보다 더 힘겹고 중요한 일은 마음을 벗는 것이라는 사실. <섹스는 코미디다>는 섹스에 관한 영화, 그런 영화 찍기에 대한 영화로, <로망스> <팻 걸>의 촬영 후일담이라 할 수 있다.섹스신 촬영을 앞둔 여감독 잔느는 주연배우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새침한 여배우는 옷 벗기를 꺼리고, 냉소적인 남자 배우는 개런티때문에 ‘해준다’는 식이다. 소품 담당자는 커다란 인조 성기를 준비하고,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여성 영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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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가끔 인내의 한계를 요구한다. 한참을 자다 일어났는데도, 잠들기 전과 별로 다를 것 없는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 경험. 영화제에 가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거장들의 이름 밑에 묻힌 재미있는 영화도 몇편은 있다. 이 영화들만 골라본다면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단 한순간도 잠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문석/이영진/김현정마이 빅 팻 그릭 웨딩 My Big Fat Greek Wedding ▶ 오픈 시네마/ 미국/ 조엘 즈윅/ 2002년/ 95분▶ 11월17일 오후 2시30분 시민회관, 11월22일 오후 5시 시민회관내 사위가 미국인이라니! 그리스계 미국인 처녀 툴라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 그리스 아이들을 한바구니 낳아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끼던 그녀는 컴퓨터를 배우고 여행사에 취직하면서 활력을 찾는다. 때마침 찾아온 사랑. 그러나 사위감 이안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당황하고 낙담한다. <마이…>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대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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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악당, 한니발 렉터는 누구인가 한니발 렉터가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를 영화화한 <레드 드래곤>으로 돌아왔다. 렉터를 체포한 FBI 수사관 윌 그래엄과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다루는 <레드 드래건>,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이 렉터와 교감하면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양들의 침묵>, 2편에서 탈출한 렉터가 플로렌스에서 위기를 겪은 뒤 스탈링과 재회하는 <한니발>. 18년에 걸쳐 완성된 이 삼부작의 생명은 다른 누구도 아닌, 광기어린 살인마이자 뛰어난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다. 심장을 먹어치우는 살인마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의 심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렉터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한니발 렉터’ 시리즈가 원작인 영화 <맨헌터>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은 모두 소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다를 때는
한니발 렉터를 해부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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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는 리투아니아 영주 집안의 장남이었다. 하인들은 냉정하고 말수 적은 여섯살 렉터를 두려워했지만, 네살 터울의 여동생 미샤는 목욕하는 주변을 지켜주던 오빠를 무작정 사랑했다. 평화가 깨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외딴 장원까지 밀고들어온 어느 겨울이었다. 렉터 집안은 숲 전체를 폐허로 만든 포격 와중에 몰살당했고, 살아남은 미샤는 굶주린 탈영병들에게 끌려가 도끼에 조각난 고깃덩어리가 됐다. 렉터는 미샤를 돌려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뼈를 쪼개는 묵직한 도끼소리를 흘려듣지 않았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를 올린 뒤, 렉터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만드는 능력과 엄청난 악의”로만 신을 기억하게 됐다. 고아로 남겨진 아이가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죽음과 폭력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많은 정신분석의들은 연쇄살인범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환상을 충족하고자 살인을 저지른다고 설명한다. 그
한니발 렉터를 해부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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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어둠과 불안을 건져 영웅은 단 한명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거울 조각으로 영웅의 모습을 비춘다. 네명의 감독은 그 자신만의 렉터를 기억했고 창조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렉터의 심장이다. 정제된 취향은 야만을 용납하지 않고, 그 안에 도사린 야만은 인육을 요리하는 우아한 주방에서 위태로운 줄을 탄다. AP통신 기자 출신인 해리스는 전세계의 테러와 범죄를 목격했다. 그가 6년과 11년 간격을 두고 완성한 세편의 소설은 유리처럼 단단한 인간의 피부 밑에서 어둠과 불안을 건져올린 것이다. 그 세월이 응축된 한니발 렉터. 테드 톨리는 “렉터가 왜 신화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토마스 해리스도 그 답을 모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렉터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화학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속에 어떤 악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 디자인 임정숙 norii@h
한니발 렉터를 해부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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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기로딱 TOKIROTAK: ‘애니메이션은 1초라는 짧은 순간을 위해 15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중노동이다’라는 의미로, ‘똑딱 사이에 15프레임’을 짧게 줄인 말.처음에 그들의 애니메이션에서 ‘TOKIROTAK’이라고 영어철자로만 된 크레딧을 보았을 때, 왠지 그것이 ‘도끼로탁’으로 읽혀져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의 작품이, 도무지 청소년영화제 출품작이라고, 그러니까 아직 18세 관람가의 영화는 공식적으로 못 보고 지내는 중인 ‘어린’ 이들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이건 도깨비 방망이로 탁! 하고 쳐서 만들어낸 것 같다는, 그런 기분에서였다. 그러나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선화예고 컴퓨터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들이 어떤 특별한 천재들의 집단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 엷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있었는데, 첫눈에 그들은 아주 평범해 보였던 것이다. 여느 길에 걸어다니는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이들이
선화예고 애니메이션 프로젝트팀 `또기로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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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TOPIA>는 클레이메이션이다. 팀원 중 한명이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각색회의를 통해 함께 다듬은 <GODOG>팀과 달리, <BABYTOPIA>팀은 학교 안에서 시나리오 공모를 해서 채택된 이야기를 취했다. 영상원 무대미술과에 진학한 졸업생 방주연의 작품으로, 처음 원작의 제목은 이었다고. ‘베이비토피아’라는 아기공장에서 한 부부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아기를 고른 뒤 역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아기를 기르게 한다는 이야기로, 위트와 현실비판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GODOG>이 장편을 압축한 듯한 깊이와 서사를 보여준다면, <BABYTOPIA>는 단편애니메이션다운 단단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작업은 1년에 걸쳐, 클레이로 만든 인물상을 ‘레진’이라는 소재로 주물을 떠서 입모양 등 움직임이 있는 부분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이용해 만들고, 6mm 디지털카메라로 스톱모션을 촬영해 편집하는 방식으
선화예고 애니메이션 프로젝트팀 `또기로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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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OG> 팀김원기만고 끝에 또기로딱 6번째 작업 이 탄생했다. 또기로딱 최초의 수작업 작품이고, 그만큼 모두 만고의 땀을 흘렸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 라이트박스의 불빛을 눈깔 상하도록 꼴아보며, 은비가 가져온 컴포넌트로 같은 노래 수없이 돌려들으며, 윤진이의 애용식 새콤달콤 잘근잘근 씹어가며, 성환의 짜증개그 들어가며, 나를 1분1초라도 더 자리에 앉게 해준 요시카도 함께. 잉크 쏟아가며, 똥물() 발라대며, 작업 중 똥도 수없이 싸고, 찌뿌드드한 몸 풀어준 축구공 등등. 원화, 동화작업과 펜선 찍찍 긋던 중반작업, 왕창 폭발한 각자의 불만 속에 제각각 컴퓨터 앞으로 떨어져 각자 많은 고민, 피해망상, 방황, 우리를 성장케 했던 것들을 감당하며 포토숍으로 색입히기, 명암처리, 배경과 합성해서 컴퓨터로의 마지막 동작이 나오기까지의 후반작업. 그리고 또기로딱 사상 최악으로 일컬어지는 수정작업, 음성, 음향 녹음 등의 마무리 작업. 어쨌든 작품은 완성됐고, 이젠 다시 고교
또기로딱 아이들의 제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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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늦여름여름의 남해가 너무 싫다고 생각하며 8월을 보냈다. 전경린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마도 원작의 배경이 되었을 경상남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는 끔찍하게 습하고 더운 날씨에게 이미 흰 기를 날리기 시작했고, 내가 근처도 가기 싫어하는 굴 양식장은 경남의 바닷가 마을 이곳저곳에 깔려 있다. 심지어 돌담 대신 굴껍질을 이용해 담을 쌓은 곳도 있다. 늦가을로 크랭크인이 잡혀 있는 게 왜 이리도 기쁜지 모르겠다. 기민이 형이 기민하게(!) 움직인 대로 남해군에서 영화에 관심을 갖는다. 명계남 선배의 도움이 컸다. 정말 발도 넓지…. 군청에서 소개해준 분과 함께 영화의 배경이 될 ‘나비마을’의 후보지를 찾아나섰다. 몇번의 헌팅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조그만 마을들이 속속 발견된다. 그리고 한 마을을 보았다.2001년 가을이근아 미술감독은 영화의 공간들과 캐릭터의 의상 컨셉에 대해 이것저것 스케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권혁준 촬영감독과의 1차 콘티작업이 진행 중이다. 헌팅에 참여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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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일지 어이. 그거 쓸 시간 있으면 연출을 더 잘했어야지.”변영주 감독은 낯간지러운 짓은 좀처럼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흔한 일 부탁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잘못했다간 욕만 드립다 얻어먹기 일쑤다. 연출의 변도 그렇다. 부탁한 지가 수개월 전. <밀애>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음알음 건넨 것인데, 개봉이 임박해서야 ‘거머리 같은 놈. 귀찮아서 해준다’는 식이다. 하긴, 밀고 당기는 데는 그가 ‘선수’ 아닌가.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시작으로 <낮은 목소리1, 2> <숨결>까지, 역사의 망령에 짓눌린 할머니들의 봉해진 입을 저절로 트이게 할 정도였으니.어쨌든 그가 이번엔 <밀애>를 내놓는다. 극영화로의 첫 진입은 변신이라기보단 연장이다. 절연이라기보다 확장이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여성의 몸에 각인된 역사의 폭력성에 대한 진술이었다면, <밀애>는 여성의 몸이 욕망하는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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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17일남해에서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윤진씨에겐 미흔의 귀신이 붙은 것 같다. 미흔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만성적인 두통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날엔 어김없이 윤진씨 자체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심지어 장염까지 앓아 얼굴이 정말 아픈 상태로 보인다. 낮의 야외신에서도 우린 조명을 했는데, 때아닌 초여름 더위와 조명에 윤진씨는 거의 쓰러질 듯 보인다. 촬영을 시작한 첫날부터 난 모든 배우들을 일상에서도 극중 배역 이름으로 부른다. 어느 순간 배우와 캐릭터가 나에겐 그냥 하나로 보인다. 아픈 윤진씨는 걱정되지만 아픈 미흔은 당연한 상황이다. 그냥 쭉 촬영을 계속해나갔다.2002년 6월22일드디어 미흔과 인규가 처음 조우하는 장면.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부희집 앞 십자로는 그늘이 하나도 없다. 제작부들은 통제하랴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음료수 채워넣으랴 차가운 물수건 만들어 대랴 정신이 없다. 흡사 태양은 가만히 있다가 슛만 들어가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