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들의 꿈 이야기를 듣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디선가 보았던 영화이야기를 내담자들은 자신이 본 마냥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담자들의 입을 통해 신의 계시가 내려지는 것 같아 섬뜩해지기까지 한다.예를 들면 오랫동안 어머니의 애정결핍에 시달린 내담자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따라 긴 통로를 헤치고 어딘가를 들어 가봤더니 그게 바로 냉장고 안이 더란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냉장고문은 열리지 않고, 내담자는 이제 꼼짝없이 얼어 죽었구나 하는 순간 깨어났다고 했다. 자신 때문에 냉장고에 들어가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음식을 거부하던 이야기는 바로 영화 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이 내담자 역시 불안정한 정서와 음식을 연결시키는 폭식증이 있었다. 결국 음식물이 들어찬 냉장고란 가짜 자궁 혹은 차가운 자궁은 아니었던가?원형적 무의식을 펼쳐 보이는 공작의 깃털 같은 화려한 꿈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
꿈속에서 영화를 보다.
-
유치원생 딸아이의 소풍가방을 맨 엄마, 의자를 밟고 올라선 두 아이의 까치발, 웅장한 음악에 지그시 눈감은 아빠. 11일 전야제가 열린 부천 중앙공원의 야외음악당에서 영화 속에서 오려낸 듯한 가족을 만났다. 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한껏 빠져 있던 아버지 신순범(39)씨는 아니나 다를까 부천 필의 회원인 열성 팬이라고. “한 해에 20회 정도는 부천 필의 음악회를 관람하죠.” 담담한 말 속에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이 배어난다. 알고 보니 신순범씨는 인천 시민. 하지만 부천을 이야기하는 그의 음성은 들떠 있다. “영화와 음악이 성숙할 수 있는 기반도 잘 갖춰져 있어요. 영화제가 매년 열리니 가까운 인천시민들에게까지 즐거운 연례 이벤트가 생긴 셈이구요.”네 식구가 항상 몸 어딘가를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을 놀라워하니 부인 장현옥(32)씨는 수줍게 웃기만 한다. <홀랜드 오퍼스>같은 따뜻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영화보다 음악을 편애하는 남편 때문에 1년에 두세
즐거운 연례 이벤트가 생겼어요.
-
2001년·일본·감독 하라다 마사토·105분출연 유키 아마미, 아수로 와타베감독 하라다 마사토는 <가미가제 택시> <바운스> <쥬바쿠> 등이 차례차례 소개된 부천영화제의 단골. <이누가미>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들개신 ‘이누가미’를 숭배하는 일본 시골마을. 이곳의 보노야마가문의 여자들은 대대로 이누가미를 모시는 단지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숙명이다. 이 가문의 여인 미키는 이누가미 저주에 관한 전설과 숭배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도시에서 아키라라는 젊은 교사가 부임해온다. 그가 부임해온 날, 마을은 갑작스러운 안개와 돌풍에 휩싸이고, 그날 밤 마을사람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날부터 미키는 점점 젊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아키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하나씩 생겨나자 사람들은 미키 때문에 이누가미의 저주가 되살아났다고 믿는
이누가미
-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도 영화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옹호하며, 영화를 전파해내는 ‘영화인’들이 있다. 공중파 TV와 라디오의 영화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 홍은철 아나운서와 배유정 동시통역사. 이번 개막식에서도 이들은 공동사회자가 되어 영화의 환상에 흠뻑 빠져들고픈 관객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홍은철씨의 부천영화제 개막식 사회는 이번만도 벌써 세 번째. 그렇다면 이 판타스틱 영화제 단골 호스트의 취향은? 황당하게도(?) “호러나 엽기를 뺀 모든 영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은철씨는 부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남다른 매력을 “한밤중의 심야상영장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젊은 관객들의 열기를 느끼며, 도발적인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젊고 재능있는 미지의 감독들을 발견하는 기쁨”이라고 요약한다. 반면 배유정씨의 영화 식성은 부천과 찰떡궁합. 어려서부터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에 매료되었던 그녀는 판타지 영화의 열혈 팬이다. “인류 미래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제 사회만은...
-
-
올해의 부천에 없는 것은 장편 애니메이션. 올해의 부천에 넘쳐나는 것은 흥미로운 단편 애니메이션들이다. 13일 관객과 만나는 세 꾸러미의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출품작 가운데에서도 돋보이는 멤버인 작은 애니메이션들을 일람해 본다.-편집자14편의 애니메이션 단편들 중에서 7편이 점토, 인형, 오브제 등 이용한 3D 애니메이션, 나머지 4편이 2D 애니메이션, 3편이 3D 컴퓨터그래픽(CG)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를 접할 수 있는 셀렉션. 2D의 경우도 관습적인 만화영화의 드로잉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양식의 작품들이 눈에 띤다. 반면에 3D CG의 경우는 기존의 단편들이 주로 보여주었던 새로운 표현 기법에 대한 도전보다는 짤막하면서도 인상적인 에피소드에 초점이 기울어져 있는 편이다.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내용면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경향은, 몹시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단편적 상황과 주관적 경험의 강조이다. 주로 <눈이 아름다운 남자> <달팽이> <
단편걸작선의 애니메이션 들여다보기
-
“우린 아주 집요해요.” 35개국에서 온 140명의 판타스틱한 신부감을 부천의 관객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이 두명의 매파는, 해외영화제를 ‘보따리 장수’처럼 다니면서 ‘돈안되는 영화제는 NO!’라고 외치는 마켓의 장사꾼들에게 문전박대 당하기 여러번, 한손에 카달로그 한손엔 핸드폰 들고 정말 집요하게 아부하고 협박(?)했다는 기억을 먼저 풀어놓았다. 인디포럼 영화제 기획,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밍 팀장을 거쳐 올해 처음 판타지의 배에 오른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호금전 회고전의 전반적인 진행을 맡았고 1, 2회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거쳐 3회부터 올해까지 프로그래머로 부천에 뼈를 묻은 송유진 프로그래머는 다년 간의 노하우로 조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마치 몇살 터울 자매처럼 대답을 서로 미루지 않은채 적절히 나누어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프로그래밍 과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작년과 비교해 볼 때 어떤것들이 달라졌나.송유진 더 재미있다.(웃음) 작년은 프로그래머 외에 많은 모자를 쓰고
여성에게 내재한 공포가 호러와 판타지 장르와 통한다.
-
2000년·폴란드·감독 예르지 스투·75분출연 예르지 스투, 안나 딤나저녁 식탁을 나누던 부부의 숟가락 소리가 한순간 멈춘다. “여보, 저 문간에 서 있는 게 뭐죠?” 사비츠키 부부의 모범적이지만 쓸쓸한 삶은 서커스단에서 뒤처진 낙타 한 마리를 입양하던 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한다. 낙타를 먹이고 산책하고 옷과 집을 지어주면서, 잔잔한 희열을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부부. 그러나 셋의 동거는 공동체의 침해로 벼랑에 몰린다. 일부는 관료주의적 발상으로, 몇몇은 돈벌이 욕심으로, 또다른 사람은 아프리카 병균을 운운하며 낙타를 “쓸모없는 가축”이라고 몰아붙인다. 애정어린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종적을 감추고, 가슴조이던 사비츠키 부부는 어느 겨울 아침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기차에 오른다. 친구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젊은 시절 썼던 각본을 배우 겸 감독 예르지 스투가 연출한 <빅 애니멀>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소외, 인간의 유서깊은 질병인 불관용에 대해
빅 애니멀 Big Animal
-
2000년 뉴질랜드 87분감독 해리 싱클레어 출연 다니엘 코맥,칼 어반우유가 버터가 되도록 사랑을 나누는 젖소농장의 두 연인 루신다와 롭의 달콤한 약혼 밀월은 소심한 루신다가 연인의 애정을 무리하게 시험하던 날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루신다가 애지중지하던 퀼트 이불을 도둑맞은 날부터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차에 치일 뻔한 마오리족 할머니의 집에서 사라진 퀼트를 발견한 루신다는 이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만, 그 대가로 롭의 사랑을 시험에 들게 하고, 단짝친구까지 연적으로 돌변한다. 여기서 ‘철없는 약혼녀’ 루신다의 이야기는 인어공주와 신데렐라의 슬픔을 담은 현대의 동화로 탈바꿈한다. <시암 선셋>을 연상시키는 바보스럽지만 사랑스런 코미디.Lucinda and Rob, two lovers engaged in a milk-stirred buttery love, live on a farm. Their sweet engagement getaway begins to fall int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 Price of Milk
-
열대야를 식힐 판타스틱한 영화군단의 상륙작전. 제5회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가 7월12일 저녁 7시 부천 시민회관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 게스트 중 가장 주목을 끈 인물은 ‘깜짝 스트리킹쇼’를 벌인 <네이키드 어게인>의 두 형제 감독 마르텐, 토르켈 너트슨. 이들은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누드와 스트리킹으로 영화를 홍보해 화제를 모았었다. 홍은철, 배유정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에는 원혜영 부천시장의 개막선언과 임창렬 경기도지사의 축하사, 자우림의 김윤아와 부천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축하 무대가 이어졌다.다소 딱딱했던 개막식장의 분위기를 판타스틱(?)하게 뒤집은 인물은 엽기영화의 대부 로이드 카우프만 감독. 장편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그는 <시민톡시: 톡식 어벤져Ⅳ>의 주인공인 고무마스크맨 ‘톡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장인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지금 열심히 교과서를 수정하고 계신가 보다”며 그의 부재와 한일관계을 빗댄 뼈있는 농담을 던지는듯 하더니 “심사
함께 떠나자, 판타지의 우주로!
-
“정신병자만 못해봤어”
“택시기사가 어찌나 얘기를 시키던지….” 은평구 신사동 집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오는 사이, 기사가 그를 알아보고는 꽤나 말을 걸었나보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는 건지, 싫었다는 건지, 박인환(56)씨의 표정이 도무지 애매하다. “이런 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랬다. 포즈를 잡는 게 어색하지만 싫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영 안 내키는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깐깐한 인상의 박인환씨는, 말 한마디에도 묘하게 정반대의 뉘앙스를 함께 뿜어냈다.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농부와 <조용한 가족>의 안개산장 주인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그에게 붙어 있는 듯. 상대의 시선을 장악한 뒤 마지막에 미량의 표정만으로 동전의 앞뒷면을 바꾸는 노련한 기술이랄까. 긴장하고선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그제서야 날리는 캐스팅보트. 그건 씩 웃거나 혹은 그러지 않거나였다.
마흔다섯, 늦깎이 은막데뷔
박인환씨는 마흔다섯 때 영
아버지 명연기 3인 3색 [4] - 박인환
-
허한 어깨 위에 희비극이 내려앉다
주현씨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시청각을 총동원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우린 금새 참새떼처럼 모여 침이 흐르는지도 모른채 이야기에 빠져드는 벌거숭이 아이가 되어 버린다. “최신식 월남장비는 우리한테만 지급되었거덩…” 하는 장교 시절 ‘JSA’이야기부터 “사실은 찰턴 헤스턴이 말이야…”로 이어지는 <벤허>의 캐스팅 비화까지, 짐짓 비장한 듯 적당히 씰룩거리는 입선에, 묘한 서울사투리에, “뚜뚜뚜뚜…” “쏴∼아” “캬∼아” ”하∼아” 같은 추임새를 적절히 섞어쓰면서 그는 쉴새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상한 것은 얼핏 방대하고 정신없는 듯 한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하나의 ‘극’을 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확한 ‘야마’(포인트)를 결코 놓치지 않는 화술은 살며시 줌인으로 들어갔다가 어느새 줌아웃이 되어 빠지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속도감과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교묘한 긴장과 반전 속에 마지막 한방, 물기어린 감동
아버지 명연기 3인 3색 [3] - 주현
-
총 35개국 140편(장편:75편, 단편:65편)을 상영되는 Pifan 2001 판타지 세상에서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10편의 상영작을 제외하고 볼만한 상영작 10편을 추천한다.<프로그래머 추천작 10편>▲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미국 / 110분 / 2000년▲ 방콕 데인저러스 (Bangkok Dangerous) 태국 / 105분 / 2000년▲ 배틀 로얄 (Battle Royale) 일본 / 113분 / 2000년▲ 소름 (Sorum) 한국 / 100분 / 2001년▲ 시민 톡시: 톡식 어벤저 4 (Citizen Toxie:The Toxic Avenger Ⅳ) 미국 / 108분 / 2000년▲ 아멜리에 (Amelie from Montmartre) 프랑스 / 120분 / 2001년▲ 천국의 향기 (The Color of Paradise) 이란 / 88분 / 1999년▲ 커먼 웰쓰(Common Wealth) / 104분 / 2000년▲ 티어스 오브 더
이 영화, 안보면 후회할 껄?
-
봉준호 감독의「플란다스의 개」가 지난 6월 30부터 7월 7일까지 독일에서 열린 제19회 뮌헨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미로비젼은「플란다스의 개」가 이 영화제의 '젊은 아시아영화(Young Asian Film)'부문에서 '재능있는 신인 감독상(High Hope Award)'를 받았다고 13일 전했다.
이 상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지난 해에는 최근 국내에 소개됐던 영화「오! 그레이스(Saving Grace)」가 수상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영화 `플란다스의 개` 뮌헨영화제 수상
-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산처럼 커다랗던 아버지가 그렇게 작고 늙고 무력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식들은 그게 원망스럽고 또 화가 난다. 아버지를 남겨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아들은 아버지 혼자 소일할 수 있도록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지만, 아버지가 간단한 매뉴얼을 이해 못하자, 버럭 화를 내고 방을 나간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다. 죽음을 앞둔 아들이 소리 죽여 우는 울음을 알고(), 한심한 짓만 골라 하는 아들이 둘러대는 거짓말을 알고(<반칙왕>), 화학 조미료와 캐러멜이 판치는 세상에서 지켜나가야 하는 진정한 맛을 알고(<북경반점>), 참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애환을 알고(<학교>), 사네 못사네 갈등하는 부부들이 모르는 세상사의 도리를 안다(<부부클리닉>). 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계시고 또 품어 주신다. 감정의 기복을 읽을 수 없는 무심한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는 자칫 헤프게 터져나올 사랑을 단속하기 위한 것일 뿐
아버지 명연기 3인 3색 [2] - 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