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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미(미우라 도코)는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한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엄마의 결혼 관련 잔소리가 시작된다. 사실 카스미는 연애와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엄마가 몰래 마련한 맞선자리에서 카스미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전에 들렀던 라멘가게 사장이다. 그 역시 카스미처럼 연애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카스미는 친구 하나를 잃게 된다.
<보통의 카스미>는 연애도 결혼도 관심이 없는 카스미의 보통의 일상을 담아낸 영화다. 카스미의 삶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이들도 카스미처럼 남들에게 쉽게 말 못 할 무언가를 숨기고 살아간다. 영화는 카스미와 특수한 개인들이 맺는 관계를 통해 보통의 삶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특히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 마호(마에다 아쓰코)가 등장하며 카스미는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소극적이었던 카스미는 당당한 마호와 급격하게 친해지면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세상의
[리뷰] ‘보통의 카스미’, 아무리 혼자 떳떳해도 삶을 인정해주는 한 사람은 필요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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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패트릭 윌슨)의 모친 로레인의 장례식에 램버트 가족이 모인다. 이혼 뒤에 조쉬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해준 게 별로 없다. 관계 개선을 위해 조쉬는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을 곧 입학할 대학에 차로 데려다준다. 둘은 기숙사에 도착해서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다. 이후 달튼은 미대 수업에 참여하고 이상한 문 하나를 그린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인시디어스: 두번째 집> 이후 램버트 가족이 다시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일을 그린 공포영화다.
영화는 부자가 유체 이탈과 관련한 안 좋은 기억을 삭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10년간 억눌려 있던 기억이 표출되는 계기는 달튼이 그린 문이다. 그림 속 문을 통해 달튼은 다시 유체 이탈을 경험하고 ‘더 먼 곳’에서 아버지와 재회한다. 영화는 램버트 가문에서 악령을 완전히 끊어내는 이야기로 완결편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에 충분한 이해를 위해 1, 2편을 정주행할 것을 추천한다. 점프 스케어와 기괴한 모습의 악령이 주는
[리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억압된 것의 귀환, 목숨 건 부자의 문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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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안도(가미오 후주)는 두꺼운 사회적 가면을 쓴다. 게이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유부남 애인 마코토(이마이 쓰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어느 날, 서점에서 같은 반 여학생 미우라(야마다 안나)와 부딪친 뒤 BL(Boy’s Love) 만화 팬이라는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접촉 사고를 계기로 꽤 아는 사이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우라에게 사귀자는 얘길 들은 안도는 이 소녀와 연애하다 보면 평범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식했으나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에 빠진 게이 소년을 받아 주고 안아준다. ‘또 다른 나’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내레이션을 선사해 털어놓게 하고, ‘진짜 나’를 혐오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경청한다. 사람 간의 거리에 예민한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안도와 친구들, 모자 사이의 거리감을 제각기 다르게 보여주는 섬세한
[리뷰]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사회적 가면을 벗겨내고 진심을 경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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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복지과에서 일하는 타에코(기무라 후미노)는 남편 지로(나가야마 겐토), 아들 케이타와 안락한 가정을 꾸린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지로의 부모와 긴장 관계를 유지 중이고, 갑자기 나타난 지로의 직장 동료가 옛 애인인 것 같아 의심이 들지만 영화는 일단 그런 타에코의 위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내버려둔다. 산재한 불안의 파편들은 지로 아버지의 생일 잔치 도중 케이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상(像)으로 모인다. 새 국면을 알리는 얼굴은 수년 전 홀연히 집을 나갔다가 부랑자의 행색으로 장례식에 나타난 타에코의 전남편 신지(스나다 아톰)다. 타에코는 케이타의 생부인 신지만이 자신의 죄책감과 공명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젖고, 청각장애인인 그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수어 통역을 돕는다. 이 무렵 지로 역시 고향에서 옛 연인과 조우하게 된다.
<러브 라이프>는 비극적 사건을 경유해 사랑의 범위를 일대일 관계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인물들을 그린다.
[리뷰] ‘러브 라이프’, 사랑의 가변성과 용서의 가능성을 겹쳐보는 담담한 안티-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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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새로운 가족과 뉴욕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변호사 피터(휴 잭맨)에게 전처 케이트(로라 던)가 찾아온다.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가 한달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고 그동안 등교하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보는 아들의 얼굴에는 증오가 가득하고 가끔 그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라는 케이트는 자신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팔에 자해를 하며 “인생이 버겁다”는 니콜라스가 아빠와 어린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터는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게 된 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을 안고 부인인 베스(버네사 커비)와 함께 살고 있는 뉴욕으로 니콜라스를 데려온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A 학점을 받았다거나 파티에 초대받았다는 일상을 공유하는 니콜라스는 점점 호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이를 키우느라 분주한 베스 입장에서는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었던 피터와 왜 사랑에 빠졌냐며 자신을 원망하는 10대 소년과 부
[리뷰] ‘더 썬’, 정신질환을 투과해 드리우는 가족관계의 가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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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를 꼬옥 안아주세요>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봤다. 영화 포스터에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한 인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노인돌봄 로봇 ‘효돌이’다. 업체 공식 웹사이트에는 효돌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여성 노인의 사진 아래로 “24시간 부모님 곁에서 정서·생활·인지 건강을 도와주는 AI 돌봄 로봇”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효돌이는 음성으로 복약 시간 알림이나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치매예방 퀴즈를 낸다. 종교말씀이나 노래, 이야기 등을 들려주기도 한다. 노인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다가 이상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기능도 있다. 유용해 보인다.
‘꼬옥 안아달라’는 감성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덤덤했다. 그래서 참 좋았고 다행이었다.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이 로봇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을 보며 마음 아파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영화는 내가 그런 감정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한 할머니 집에 사회복지사가 방문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노인을 돌보는 로봇은 왜 아이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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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작성한 메모를 확인해 보니, ‘관객이 웃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정말 웃지 않았을까? 물론 누군가 조용히 폭소를 터뜨렸으나 내가 듣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설령 이 메모가 영화의 혼란스러움에 휩싸여 날조된 픽션이라 하더라도, 이런 픽션을 쓰게끔 했던 어떤 충동이 영화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에서. 보(호아킨 피닉스)가 벌거벗은 채로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근을 덜렁거리면서 거리를 달릴 때, 자신의 아들 앞에서 한번도 섹스를 한 적 없다고 고백하는 아버지가 등장할 때, 죽은 줄 알았던 보의 아버지가 대뜸 고추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울부짖을 때. 아리 애스터는 루저 남성의 자아를 박살냈다. 거세공포라는 유산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초라한 파편들로 해체시켜놓고 있다. 분명 이 장면들이 조롱을 동반한 웃음을 유발하는 농담임을 알지만, 관객은 (거의) 웃지
[비평] 영화에 새겨진 감각과 체험의 오차들, ‘보 이즈 어프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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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으레 거짓말하게 마련인 어린이의 성장담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생각 많은 여자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살핀 작품이라 말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당신에겐 할 이야기가 넘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비밀의 언덕>은 인간 사회의 아주 넓은 땅에 창피함과 자랑스러움, 숨김과 드러냄, 거짓말과 참말 사이의 경계가 자리한다는 점을 짚는 영화다. 그러고는 그곳에 처한 인물들을 꼬옥 끌어안는다. 우리는 저 어정쩡한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든 즉시 결정하고 다음 단계의 의사소통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때의 즉흥적인 선택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우리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충분히 아름다웠을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 역시 지나치곤 한다. 영화는 10대 초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 우리의 평소 언행 중 대개의 경우가 눈치와 염치, 수치 등등이 머릿속에 오가는 가운데 자동기술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꼼꼼히
[비평] 트루 라이즈, ‘비밀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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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디서 작업하세요?’
누구를 만나든 날씨 이야기와 함께 꼭 나누는 질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일하는가. 예전에는 나만 모르는 작가들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아 미어캣처럼 둘러봤다면 지금은 안다. 그게 그거인 것을. 다만 내 몸이 원하는 장소와 방법이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잊었던 선택지를 발견하기 위해 질문을 꺼내놓고는 한다. 한 가지의 공간과 방식, 도구에 탑승해 글을 쓰다가 그것들의 힘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것들로 옮겨 탑승해 달리는 거다. 그래서 나는 지난 <씨네21>의 ‘LIST’ 코너에서 언급했듯이 <민음사TV>의 ‘문박싱’,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의 홈쇼핑st편을 좋아한다(홈쇼핑st 말고도 언니들의 이야기는 다 좋아한다!!). 물론 <씨네21>의 ‘LIST’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갖는 일할 때 곁에 두는 도구에 대한 애정을 듣다 보면 강력한 희망과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구글 시계가 내 책상 위에 있
[김세인의 데구루루] 긴장과 이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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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라이징 스타로 <씨네21>과 첫 인연을 맺었고, 2021년 <스위트홈> 당시 송강, 이도현, 고민시와 함께 커버를 장식했다. 그리고 <셀러브리티>로 첫 단독 커버 모델이 됐다.
= 데뷔 초에는 <씨네21>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게 꿈이자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스위트홈> 때 친구들과 함께 표지에 나오게 돼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렇게 단독으로 커버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너무 좋다.
- 박규영은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서 넷플릭스 시리즈 원톱 주연에까지 이른 배우처럼 보인다. <셀러브리티>라는 기회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차근차근’이라고 표현해주신 게 정말 감사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름의 경험을 계속 쌓고 있었는데, 넷플릭스 시리즈의 1롤 주인공으로 대본을 받았을 때 믿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원래 할 수 있는 것보다 좀
[인터뷰] 차근차근 쌓아올리다, ‘셀러브리티’ 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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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서아리는 많은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뉴 페이스다. 팔로워 K와 M의 계급을 나누는 이 세계에서 서아리는 그럴싸한 과장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더 유명해져야겠다는 자의식 없이도 특유의 꾸밈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협찬 광고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해 성공하고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130만명을 거느리는 유명 인사가 된다.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재학 시절 <대학내일> 표지모델을 장식했다가 캐스팅 제안을 받고 배우 연습생을 시작한 배우 박규영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그는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편하고 말간 스타일링과 매사에 진지한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신인배우였고, 몇편의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조연으로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눈 밝은 사람들에게 먼저 각인되는 존재감을 보여줬다(참고로 <셀러브리티>의 서아리가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당시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은 박규영이 과거 SNS에 올
[커버] 오늘도 차분하게, ‘셀러브리티’ 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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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아니, 형제는 유쾌했고 또 멋있었다. 류승완·류승범 형제, 일명 ‘류 브러더스’는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영화계를 씹어먹을 듯한 기세로 커리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을 집중 조명한 기사에 맞춰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로케이션 현장을 방문했다.
[ARCHIVE] 류 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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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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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글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아구아 비바>를 펼쳤다면 이 책은 절반은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아구아 비바>는 이해가 안되는 문단의 반복이다. 대여섯줄을 잘라내 SNS에 올린다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되겠지만 이어지는 문단과 문단은 서로 연결성을 갖지 않고 있어 여러 페이지를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당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화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읽다 보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난해하고 현학적으로도 느껴진다. 이 산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이 내 그림에서 명확성 대신에 두서없는 말들을 수확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쓰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아구아 비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