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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주로 하던 시절에도 나는 공연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풍부한 서정을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재탄생시키는 윤상에게서 가수와 작곡가는 물론 프로듀서, 엔지니어로서 다채로운 자질을 발견하는 기쁨은 어느덧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그는 이제 30년이 넘는 이력 중 드물게 남은 미개척지였던 영화음악으로도 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음악감독을 거쳐 영화의 소리를 매만지기 시작한 윤상의 근황을 물었다.
- 영화음악감독 데뷔작인 호러 <뒤틀린 집>에 이어 <뉴 노멀>도 스릴러 장르다. 그동안 가수 윤상이 보여준 색채와는 가장 거리가 먼 분위기로 영화음악을 작업하고 있다.
= 정범식 감독이 처음 의뢰했을 때 <뒤틀린 집>의 영향으로 내게 연락한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더라. 그래서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작업의 인연은 운명인가보다 여기는 편이라서. 정범식 감독은 알고보니 그 자
[인터뷰] 느낌의 접점이 절묘할 때까지, ‘뉴 노멀’ 윤상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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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야구를 보게 된 ‘2023 한국시리즈’.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우승 도전에 나선 LG트윈스를 보니 19년 전 <슈퍼스타 감사용> 촬영 현장(2004년 4월)이 떠올랐다. 패전 전문 투수 감사용(실존 인물)의 특별한 경기를 그렸던 영화다. LG트윈스는 ‘2023 한국시리즈’를 과연 자신들의 특별한 한 시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참고로 야구팬 아닙니다).
[ARCHIVE] 29년 만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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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다면 어땠을까. 임신과 관련해서는 여성 캐릭터의 발언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워낙 변화가 극적인 탓에 건우의 행방 또한 주시하게 된다. 영어 강사인 건우는 언성 한번 높인 적 없을 듯한 온순한 얼굴로 성실히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원 분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인 건 순전히 재이(한해인)와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영화 <흐르다> <여섯 개의 밤> 등에서 차분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배우 이한주는 “1부터 10까지의 감정을 넘나드는” 건우 역으로 배우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
- 유지영 감독과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만난 인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 그렇다. 그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작품을 같이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로부터 1년 정도 뒤에 정말로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다. 읽어보니 건우는 감정의 진폭이 점점 커지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감정도 강렬해서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확장하는 스펙트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이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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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상대방의 의중을 살피는 표정, 메마른 목소리, 다소 불안한 눈빛. 소설가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재이(한해인)는 타고난 섬세함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나날은 괴롭지만 안정적이고 불안하지만 평화롭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뜻밖의 임신 소식은 재이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낯설고 불편한 신체 변화부터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말투까지, 인간 재이는 흐릿해진 채 세상은 엄마 재이만 남겨두려 한다. <생각의 여름>(2020), <아워 미드나잇>(2020), <달이 지는 밤>(2020) 등에서 인물의 말투와 표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배우 한해인은 재이의 갈등 또한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작품과 관객의 거리를 좁힌다. 재이는 어떤 동시대성을 띠는가. 그가 상징하는 여성의 불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해인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재이는 하고 싶은 일이
[인터뷰] 진심이 발휘될 때, ‘나의 피투성이 연인’ 한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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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을 본 관객이라면 차기작으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내놓은 유지영 감독의 행보가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온전히 자기 경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유지영 감독은 일과 임신, 출산에 대한 고민을 재이(한해인)과 건우(이한주)에게 솔직하게 투영했다. 두 사람은 가족을 이루기로 어렵게 합의했으나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품으려 할수록 더 많은 것이 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이토록 불안정한 두 연인의 관계가 각자의 성장으로 이어지게끔 유지영 감독은 섬세한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 오랜만의 장편 연출작이다.
= 항상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이 시간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과 두려움이 해결됐거나 혹은 이것을 글로 풀어내 정리하고 싶을 때 말이다.
-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자전적 요소가 많이 반영됐나.
임신과 같은 사건은 전부 픽션이다. 아주 오래 만난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 이대
[인터뷰] 타인과의 여정을 고민하며,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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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12주 되셨네요.” 재이(한해인)와 건우(이한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인사를 받는다. 신인 소설가인 재이가 새 소설의 출간을 앞뒀고, 건우가 학원 원장의 신임을 얻어 차근히 강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시기에 바란 적 없는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낳지 않을 것인가.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는 건우와 자기희생을 원치 않는 재이의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수성못>에 이어 유지영 감독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으로 일과 육아의 병행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작품 밖까지 논의를 확장하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재이와 건우가 거쳐온 여정에 관해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우리, 함께할 수 있을까,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배우 한해인, 이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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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팩터(form factor)’라는 용어가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크기나 모양 등 물리적 사양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이제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제품 외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2G 시대 휴대폰의 형태가 플립, 폴더, 슬라이드 등 다양했다면 (심지어 ‘가로 본능’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폼팩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3G 시대 이후의 스마트폰은 한동안 터치스크린 기능을 장착한 큰 화면과 얇은 베젤을 중심으로 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유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의 외모가 그렇듯 사물의 외형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많은 전문가들이 폼팩터가 단순히 제품의 외적인 요소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잘 알려진 대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PC와 아이패드를 각각 트럭과 승용차에 비유한 적이 있다. 트럭과 승용차는 확연히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운전자의 경험 역시 완전히 달라진다. 사용자 경험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패드가 약속한 새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리얼하지 않을수록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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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후반부, 나츠코를 찾아 탑 안의 세계로 떠나온 마히토는 마침내 히미의 도움을 받아 나츠코가 잠들어 있는 산실에 도착한다. 마히토는 나츠코를 깨워 데려가려 하지만 눈을 엘 듯 춤을 추는 종잇조각이 둘의 접촉을 가로막고, “나츠코 엄마!”라고 외친 마히토는 의식을 잃는다. 종잇조각의 우윳빛 색감이 산실의 적막한 어둠과 대조를 이루는 이 장면은, 마히토가 전쟁의 화마 속에서 어머니를 상실하던 도입부의 장면과 포개어지며 시적 서정을 새기고 간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작화의 매혹을 잠시 차치하고 곱씹어본다면 이 장면의 감흥은 얼마간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마히토는 이세계에 잠입하기 전까지 별다른 접점도 없던 나츠코를 왜 돌연 엄마라고 부르는 걸까? 마찬가지 이유로 마히토에게 별 감정이 없을 나츠코는 왜 그의 애절한 외침에 “너 같은 건 정말 싫어!”라고 쏘아붙이는 걸까? 마히토가 탑에 잠입하기 전까지인 1부의 세계에서 가족이라고 말하기
[비평] 미야자키 하야오의 우정, 그리고 식탁의 소멸에 관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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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단짝은 매일 함께 16번 시내버스에 탔다. 이어폰 한쪽씩을 나눠 끼고 피노키오의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듣곤 했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그날도 함께 등교하던 중이었다. 잠깐, 오늘 미술 시간 있는데, 스케치북을 놓고 왔어. 친구를 버스에 먼저 태워보내고 준비물을 챙겨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매일 오가던 한강 다리는 더이상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었다. 수진은 그렇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채 세상에 남았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를 소재로 한 정윤철 감독의 단편 <기념촬영> 이야기다. 수진이 살아남은 건 스케치북을 깜빡했다는 이유뿐이었다. 올림픽을 치르느라 무리한 기간에 완공된 성수대교는 강남 팽창에 따른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더디고 오랜 조사 끝에 당국이 밝혔다. 처벌은 공사 실무자에게만 내려졌다. 그로부터 20년 뒤. 멈추지 않은 어른들의 탐욕은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2023년
[비평] 참사의 시간, 영화의 시간,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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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의 중앙에 서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양옆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주인공은 돋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주인공이라 여기고, 주인공이 아님에 좌절하며,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타짜>의 곽철용(김응수)이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잡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인 이유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최민식)이 남천동에서 느그 서장과 함께 밥도 먹고 사우나를 한 이유도… 모두 ‘센터 욕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기에 발생한 일인 것이다.
‘센터’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유통한 <프로듀스 101>을 생각해보라. 센터는 그 자체로 우승자의 특전이었다. 노래를 제일 잘 부르면 ‘메인 보컬’이 되고, 춤을 제일 잘 추면 ‘메인 댄서’가 된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모난 데가 없으면 ‘리더’가 된다. 얼마나 합리적인 역할 분담인가? ‘매력’과 ‘인기’라는 모호한 기준이 작용하는 것은 오직 센터를 결정할 때만이다. 센터는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완전 반해 반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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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블랙윙 연필
선물받은 뒤로 가장 잘 쓰고 있는 물건 중 하나다. 술술 잘 써지는 느낌도 있지만 그냥 연필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작업할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좋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팟캐스트 <박상영의 상영회>에서 <디 아워스>를 따로 다루기도 했다시피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더 크라운>도 그래서 기대감을 갖고 시작해서 요즘 열심히 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좀 지루하다는 인상인데, 시즌2부터 속력이 나지 않을까 싶다.
소설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월드의 여러 부분을 다 애호하는데, 재밌는 건 인생의 시기마다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지닌 호소력에 대해 생각한다. 동시
[LIST] 박상영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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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청순한 남자 찾을 거야.” 몽골여행 중 미아가 되어 유목민 부부의 딸로 살아왔던 22살 강남순(이유미)은 자신의 뿌리와 인생의 반쪽을 찾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JTBC <힘쎈여자 강남순>은 2017년작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괴력이 모계혈통으로 이어진다는 전작의 세계관을 공유하나 6촌뻘 친척인 봉순(박보영)과 남순이 괴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로맨스가 메인서사였던 전작에서 봉순은 좋아하는 이의 이상형이 되길 열망하는 한편, 나인 채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인물이었다.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상형이 “하늘하늘 코스모스 같은 여자”란 말을 듣고 힘을 숨겼던 봉순이 골칫거리였던 괴력을 긍정하고 컨트롤하는 슈퍼히어로의 각성으로 나아갔다면,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에서 남순이 ‘귀엽고 지켜주고 싶게 생긴 남자’가 이상형이라 밝히는 것은 몽골 대초원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괴력을 펼치던 주인공이 이전에 유효했던 족쇄를 끊어낸다는
[유선주의 드라마톡] ‘힘쎈여자 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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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둑들>
넷플릭스 ▶▶▶▶
저택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친 2인조 프로 도둑 카롤과 알렉스. 둘은 작업을 마친 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윙슈트를 입은 채 높은 언덕에서 몸을 던진다. 공중 활강하며 하늘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둘은 여유로이 은퇴 후의 평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도둑들>은 이 인상적인 오프닝이 쌓아올린 기대감을 상당 부분 만족시켜주는 영화다. 배우로서도 두각을 보인 멜라니 로랑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고, 그 파트너 역할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엑사르코풀로스가 출연하여 또 다른 버전의 워맨스를 선보인다. 프랑스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파라노이드 파크>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
“미국 포틀랜드의 작은 스케이트보드 공원 파라노이드 파크 인근에서 한 경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 전개상 이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누가 봐도
[OTT 추천작] ‘여도둑들’ ‘파라노이드 파크’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페인 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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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가와구치 도시오 / 원작 우라사와 나오키, 데즈카 오사무 / 플레이지수 ▶▶▶▶
세계에 ‘로봇인권법’이 제정됐을 정도로 로봇 기술이 발달한 시대. 인간과 로봇은 서로를 존중하며 공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많은 이들의 존중을 받던 한 로봇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고성능 형사로봇 게지히트가 사건을 맡는다. 그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자신을 비롯한 일곱대의 세계 최고 로봇들이 범인의 타깃이라는 것이다. 이에 게지히트는 그중 가장 인간에 가깝게 진화한 로봇인 아톰을 찾는다.
<플루토>는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가 2009년 완결한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8부작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은 데즈카 오사무 작가의 <우주소년 아톰>의 한 에피소드를 토대로 창작된 것으로, 일본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숨은 명작으로 알려져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OTT 리뷰] ‘플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