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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유지는 일본의 각본가를 말할 때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이름이다. 1988년 단막극의 각본가로 데뷔한 그의 수식어는 스타 작가였으나 이제는 사회파 작가로 바뀐 지 오래다. 영화로 영역을 넓힌 사카모토 유지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공동 각본을 거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 이르러 가장 그답다고 부를 수 있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래서 사카모토 유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각본을 맡았다는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본질을 한가운데 둔 채 등장인물의 대화로 그 주변을 에둘러 간다. 반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는 차마 언어로 건드리지 않고 침묵으로 남겨진 부분에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고 믿게 되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괴물>에서 위로 향하여 뻗은 두 소년의 손은 보이지 않는 무엇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온 사카모토 유지의 화법과
[인터뷰] 어쩌면 진실은 이야기 바깥에, <괴물>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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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구성과 인물에 관한 고찰
일본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콰르텟>으로 친숙한 사카모토 유지 작가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브로커> 등 가족의 얼굴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났다. <괴물>은 이유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보온 도시락에 돌을 채워두는,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미나토를 수상하게 여긴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미나토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추궁하고, 담임교사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아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미나토가 같은 반의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 가해자라는 것.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영화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두 번째 장의 문을 연다. 이번엔 담임교사 미치
[특집] 다른 이의 시선을 빌려야 했던 이유는, ‘괴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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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지난 10월8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마스터스 토크를 단독 진행했다. <괴물>의 3부 구성과 아역배우를 발굴하는 고레에다 감독만의 방식, 고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과의 협업 등 다양한 제작기가 담겼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괴물>의 리뷰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단독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가 응시한 아이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할 시간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화 <괴물> 특집이 계속됩니다.
[특집] ‘괴물’의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X 배우 송강호 대담, <괴물> 리뷰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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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누가 영화를 봐?” 요즘 자주 듣는 가장 뼈아픈 말이다. 비관론자의 시선으로 논하자면 영화는 현실을 이길 수 없다. 비현실적인 사건, 사고가 현실에서 끊이지 않을 때 자조와 씁쓸함이 뒤섞인 탄식이 불현듯 터져나온다. 같은 말을 굳이 긍정 버전으로 짜내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볼 것이 넘쳐나 영화를 볼 틈이 없다. 써놓고 보니 더 절망적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극장은 너무 멀고 느리고 답답하다. (영화잡지 편집장이 이런 발언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내 가슴을 울렸던 순간들도 모두 극장 바깥에 있었다.
첫 번째는 볼 때마다 절로 겸손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3>다. 이번 시즌에선 김마스타가 등장했을 때 문자 그대로 압도당했다. 허스키 보이스의 존재감이나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그의 멘트에 반했다. “우리는 목숨 걸고 안 합니다. 인생을 걸고 하는 거지. 목숨은 하나지만 인생은
[송경원 편집장] 세번의 울림, 찰나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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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이 운명처럼 만난 작품과 함께 돌아왔다. <서울의 봄>은 12·12에 관한 실제 기억이 있는 감독이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헤치는 내밀한 작업이다. 무국적성을 지향한 안남시(<아수라>)에서 1979년 서울시(<서울의 봄>)로 옮겨온 김성수의 세계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육박하는 카메라와 장근영 미술감독의 집요한 터치로 전과 다른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전두광이라는 불편한 캐릭터에 도전한 황정민과 꿈이 없던 <비트>(1999)의 민이에서 목적의식 뚜렷한 군인이 되어 김성수 세계에 복귀한 정우성의 격돌하는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이번 영화로 <아수라>의 드림팀과 다시 뭉친 그는 감독의 비전을 정확히 이해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계속하고 싶은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 19살 때 그날의 총성을 직접 들은 뒤 12·12가 인생의 오랜 의문으로 남았다고.
[인터뷰] 욕망과 신념이 자아낸 사건을 제대로 포착하고자 했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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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과 1980년. 한국 현대사에서 ‘핵심 권력의 전면적 교체’와 ‘독재 체제의 연장’이 동시에 이뤄진 것은 이 시기가 유일하다. 드라마와 영화로 수차례 다뤄진 것은 당연하다. 1980년 5·18을 그린 영화는 <꽃잎>(1996) 이후 여러 편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람들>(2005)이 개봉한 지도 18년이 넘었다. 그런데 1980년 12·12를 집중해서 다룬 영화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TV드라마에서 10·26, 5·18과 함께 다뤄진 수준이었다. 절대 권력이 기습적으로 붕괴된 10·26은 묘한 뒷맛을 남긴다. 5·18의 경우는 잠시 악마적 권력이 승리했지만 시민 항쟁이 영원한 승자로 새겨졌다. 영화화 자체로 애도의 의미가 있고, <스카우트>(2007), <26년>(2012)처럼 가상 인물을 내세워도 당대 민주 시민에 대한 헌사가 된다. 반면12·12
[기획] 12·12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회는 어떻게 신군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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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사태 이후 정국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은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이태신 소장(정우성)에게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긴다. 12·12 사태의 수사를 지휘하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오른 뒤 기고만장해진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야욕을 품은 전두광은 12월12일, 10·26 사태와의 연관을 빌미로 정 총장을 강제 연행하고자 한다. 그가 하나회를 거느리고 대통령(정동환)을 찾아가 강제적인 재가를 받아내려는 사이 이태신은 그의 계략을 눈치챈다.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루는 <서울의 봄>은 반란군이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하며 공관에 들어가 총성을 울린 오후 8시부터 대통령이 총장 연행을 어쩔 수 없이 재가한 다음날 새벽 5시10분까지 약 9시간을 집중 조명한다. 여기 <서울의 봄>으로 진입하기 위한 두개의 시선을 소개한다.
[기획] '서울의 봄'을 기억하라, 김수민 정치평론가가 말하는 12·12 사태와 김성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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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업계 또한 위축된 요즘 같은 때에 글 작업에만 몰두하던 신인 작가, 감독들의 위기감은 커져간다. 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시장에 진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2023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우수 프로젝트 사업화 지원사업’ (이하 사업화 지원사업)은 작품의 기획·개발을 지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콘텐츠 사업화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러 수행기업 중 오은영 대표가 이끄는 이오엔터테인먼트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으로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과 사업화 지원사업을 이어가는 유일한 기업이다. 오 대표는 관계사인 이오콘텐츠그룹과 시너지를 내며 10명의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다양한 IP로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 사업화 지원사업에 함께한 10인 중 4명의 작가를 만나 그들이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을 물었다.
사업에 선정된 10인의 작가들은 자신의 프로젝트 사업화를 위한 개발비를 운용할 수 있는데, 결국 이 과정이 유용하려
[기획] 전환과 확장의 시기, 이오엔터테인먼트의 2023 창의인재동반사업 우수 프로젝트 사업화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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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대 1. 배우 오승훈이 <독전2>의 서영락이 되기 위해 뚫은 경쟁률이다. 몇 단계의 오디션을 통과하고 나서 그는 두 가지 버전의 <독전2> 대본을 전해 받았다. 하나는 격정적인 감정 표출이 담긴 시퀀스, 또 하나는 정적이지만 섬세한 심리 변화가 중요한 시퀀스였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에게 유리한 것은 전자였다. 강렬한 여운의 열연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많은 오디션 지원자가 전자를 연기하는 동안 놀랍게도 오승훈은 두 번째 대본을 택했다. “겉으로 이목을 끄는 것은 첫 번째 시퀀스였다. 하지만 내게 유리한 것보다 마음에 드는 것을 택하고 싶었다. 내가 의지를 갖고 연기하고 싶은 인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진심으로 즐겁게 임할 수 있다. 이 판단은 배우에게 무척 중요하다.” 그의 선택은 들어맞았다. 전편의 영락(류준열)을 모사하거나 따라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물을 그려나갔고
[인터뷰] 절제된 감정의 힘, <독전2>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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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는 2005년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올해 처음으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디즈니+ <무빙>에서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며 북한 기력자들을 상대하더니 <독전2>에서는 칼을 들고 남자들의 목을 내려치는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예전부터 그는 멜로 연기에 특화됐다는 편견을 깨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효주가 거쳐온 인물들은 <해적: 도깨비 깃발>의 여성 해적단 리더, <트레드스톤>의 특수요원 그리고 <무빙>의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자 과거 안기부 비밀 요원까지 과감한 설정을 동반한다. <독전2>의 큰칼은 한효주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외적으로 가장 강렬한 변신을 예고한다. 큰칼은 커다란 안경에 틀니를 끼고, 체지방이 거의 없어 잔근육이 잔뜩 드러난 몸에는 온갖 상처가 가득하다. 한효주는 “데뷔한 지 18년이 됐다. 연
[인터뷰] 마침내 여유롭게, <독전2>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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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락(오승훈)의 어머니를 죽음에 몰아넣고 그가 키우던 강아지마저 심각한 화상을 입힌 자. 브라이언은 서영락이 관객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도록 만든 유일한 촉매제이자 그 죗값을 그대로 대갚음받는 피심판자다. 이 말은 <독전>에서 브라이언은 영락의 질주를 위해 설계된 인물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배우 차승원은 브라이언에게 이전보다 더 능동적인 주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 선생이 되고 싶지만 결코 될 수 없는 현실에의 집착. 들끓는 명예욕과 인정욕. 채워지지 않는 콤플렉스. 그는 브라이언을 설명할 상징적인 면면을 세분화하기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얼굴과 표정, 자세와 제스처를 함께 구체화했다. “브라이언은 신체적 결함을 얻으면서 서영락에 대한 분노와 이 선생을 향한 집착이 커져간다. 그래서 온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얼굴만 앞으로 쭉 내밀었다. 화상으로 인한 고통이 어마어마해 숨소리조차 고르지 않지만 그 와중에 어떻게든 감정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기괴하고 강렬한 의지를 드러
[인터뷰] 함몰되지 않고 경직되지 않고, <독전2>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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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2>는 <독전>에서 마약 조직의 보스를 쫓던 형사 원호(조진웅)가 브라이언(차승원)을 체포하고 진짜 ‘이 선생’을 만나는 노르웨이로 떠나기 전, 그 중간 이야기를 다루는 미드퀄이다. <독전2>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조진웅은 “1편의 연결이 튄다고 느껴지지도 않은 데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막상 시나리오가 나온 후 그의 마음은 달라졌다. “원호는 이 선생을 잡아야 한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열정이 넘쳤던 형사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푸석한 얼굴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건조해졌을까?” 그렇게 <독전2>는 원호가 더이상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르웨이에 가야만 했던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원호는 노르웨이에 감으로써 죽은 이들의 원혼을 풀었을 것이다. 그를 억눌렀던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지만 마냥 행복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독전2>를
[인터뷰] 성실하게, 뚝심 있게, <독전2>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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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부호 중에 ‘넣음표’라는 게 있다. 문장에 부호나 글자가 빠졌을 때 추가로 넣는 기호를 말한다. 편지를 쓰다가 특정 단어를 빠트려본 사람이라면 브이(V)자 표시로 단어 사이를 벌려본 적 있을 것이다. <독전2>는 <독전>에 넣음표 부호를 넣어 만든 미드퀄이다. 전편에서 축약된 구간을 돋보기 들여다보듯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시킨 것이다. 조원호 형사(조진웅)가 용산역에 쓰러진 브라이언(차승원)을 발견한 후, 서영락(오승훈)을 찾아 노르웨이에 가기까지 생략된 일련의 사건, 사고들을 다시금 재조명해 펼친다.
여전히 이 선생을 찾는 데 혈안이 된 조원호는 서영락의 그림자 아래서 실체 없는 발자취를 좇아나가고, 막 병상에서 눈을 뜬 브라이언은 자신의 등에 화상을 입힌 서영락을 향한 복수를 결심한다. 서로가 서로를 낚아채기 위한 지리멸렬한 심리전과 함께, 이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다. <독전2>는 더이상 선과 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의와 불의에
[기획] 더 지독하게, 더 잔혹하게, <독전2> 조진웅, 차승원, 한효주, 오승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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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는 일종의 대체역사물의 기능을 해왔다. 마블이 자신들의 공간 배경을 ‘지구-199999’라고 명명하고 ‘멀티버스 사가’로의 진출을 결정한 순간, 영화의 역사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미래가 펼쳐진 셈이다. 코믹스 시장이 그래왔고 <스타워즈> 시리즈가 팬들과 함께 성장하며 새롭게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를테면 어벤져스에게 승리를 안겨준 치타우리족의 뉴욕 침공이나 ‘시빌 워’의 발단이 됐던 소코비아 협정, 우주 생명체의 절반이 5년 동안 사라졌다 돌아온 ‘블립’과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주요 사건들은 21세기 초에 벌어졌던 진짜 지구의 역사를 거울처럼 반영했다. 페이즈5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향후 몇년 안에 만들어질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 역시 작금의 국가간 분쟁 이슈나 시대정신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시크릿 인베이전>의 결말에 충격을 받은 팬들이 많지만
[특집] MCU의 ‘타임라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히어로물 애호가의 항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