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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가 전부가 아니다. 극장으로 향하는 과정, 대기하는 동안의 상념 혹은 동행인과의 대화, 타인과 함께 영화와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상영관에서의 시간, 돌아가는 길에서의 생각 정리 혹은 잡다한 수다까지. 극장을 오가는 장소적 경험은 영화의 부분을 차지하고 때론 극 내용을 압도해 영화 자체가 되기도 한다. 영화 굿즈숍 같은 또 다른 물리적 공간을 통해서도 영화는 긴 생명력을 얻는다. 그 안에서 사운드트랙 앨범과 포스터, 피규어 등을 만져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감각적 경험은 영화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의류와 화장품, F&B 업종이 선도한 오프라인 체험형 매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영화와 시리즈도 지난해 추석 시즌부터 팝업존 마케팅에 뛰어든 상황에서 <씨네21>은 관련 기획 기사를 통해 물리적인 영화 공간에도 주목해왔다. 그래서 지난 2월29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옛날 영화 상영 극장 ‘무비랜드’를 발 빠르게 찾고,
[기획] 신 영화 공간을 찾아서, 성수동 극장 ‘무비랜드’, 합정동 영화 굿즈숍 ‘마이 페이보릿’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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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유명 팀의 레이(와이엇 러셀)는 다발경화증으로 선수 생활을 쉬는 중이다. 그는 재활에 전념하고자 수영장이 딸린 주택으로 이사한다. 수영장은 가족을 돈독하게 만드는 공간이 된다. 레이 또한 수영장에 들어온 온천수의 힘으로 기적같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의 아내 이브(케리 콘던)와 두 자녀 이지(아멜리 회페를레)와 엘리엣(개빈 워런)은 한밤중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중에 악몽 같은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나이트 스윔>은 호러 장르의 명가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감독의 동명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했으며 제임스 완이 제작을 담당해 화제가 되었다. 수영장에 있는 물을 귀신으로 그려낸 기발한 발상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의 만듦새는 아쉽다. 유려한 수중촬영과 안정적인 호흡 등은 분명히 인상적이나 인류세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그려낼 수 있던 소재의 힘을 살려내지 못하는 진부한 각본이 문제다. 독창적인 시퀀스가 더러 있으나 낡은 점프스케어와 클리셰가 가득해
[리뷰] ‘나이트 스윔’, 독창적인 발상이 서서히 익사하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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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딸을 앞세운 유경근씨는 삶을 이어갈 방법을 알고 싶다. 그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또 다른 참사 피해자 유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대구 지하철 화재부터 이한열 열사의 죽음까지 한국 현대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며 개개의 사건들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안전 불감증이라는 사회적 어젠다로 한데 포개진다. 이 모든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자신의 정치성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애도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상을 과감히 제시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비판이 가해지는 대상은 불법 건축물을 허가한 군청과 진상규명과 재수사 요구를 거절하는 정부에 그치지 않는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추모식과 봉안 시설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피해자를 조롱하는 한국의 기괴한 문화와 맞닿아 있다. 일상이 파괴된 유족들에게 남은 희망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빛바랜 가치뿐이다. <기념 촬영>과 &l
[리뷰]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애도를 고민하지 않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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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부활절 축제 준비에 한창인 래빗스쿨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매해 부활절을 상징하는 황금알을 수호할 네명의 부활절 기사단을 선정한다. 그 주인공은 루이즈와 앤디, 에미(엘리스 에이커만), 그리고 사고뭉치 맥스(노아 레비)다. 맥스는 선정된 날 라이브방송과 드론을 동원해 부활절을 방해하려는 멋쟁이 토끼단의 대장 레오와 다툼을 벌이고, 레오는 래빗스쿨에서 쫓겨난다. 이에 앙심을 품은 레오는 토끼의 영원한 숙적인 여우 가족과 손잡고 부활절 축제를 망치려 한다.
<래빗스쿨2: 부활절 대소동>은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상영된 동명의 독일 애니메이션인 <래빗스쿨>의 속편이다.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 O.S.T 등 영화의 요소 대부분이 전형적이며 특히 빌런을 라이브방송 등 인터넷 문화와 연결하려는 설정은 다소 도식적으로 보인다. 슈퍼히어로 장르 공식을 따라가는 만큼 각 캐릭터의 초능력과 정신적 성장을 제대로 그려내야 했으나 “능력보다는
[리뷰] ‘래빗스쿨2: 부활절 대소동’, 동화를 기대하고 왔는데 교회에 온 듯한 당혹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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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는 요즘 유행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앵거스를 포함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누구 하나 음악에 진심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무대는 곁다리일 뿐 코치들의 짓궂고 무례한 농담의 수위에 따라 투표 결과가 달라진다. 어느 날 앵거스가 갑작스레 실종되자 버디는 ‘진짜 음악’을 세상에 들려주기 위해 그의 후임 자리를 도맡는다. 세계 정상급 록스타인 그가 맡게 된 연습생은 애석하게도 팝스타를 꿈꾸는 어린 걸 그룹이다. 철없는 아이들과 겨우 타협점을 찾지만 문제는 음악적 방향만이 아니다.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내지 못하면 절대 투표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버디는 상대팀에 인신공격을 날리고 환호받는다. 결국 그도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국 놈들’이 되고 마는 것일까? <드림쏭3>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버디와 아이들이 진정한 음악의 힘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다. 시리즈에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던 주인공이 이번엔 미래의 꿈나
[리뷰] ‘드림쏭3’, 방송국 놈들에게 귀여운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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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17일 광주 전남도청 뒷골목은 화평반점이라는 중식당의 개업 잔치로 시끌벅적하다. 일평생 남의 가게 주방장으로 살아온 아버지(강신일)가 드디어 자기 손으로 가게를 연 경삿날이기 때문이다. 맏며느리인 철수 엄마(김규리)는 만삭의 몸으로 홀 서빙을 돕고 결혼을 앞둔 삼촌(백성현)은 예비 신부와 인사를 드리러 온다. 온 동네 이웃들이 모여 축하를 건넨 화평반점의 첫날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손주 철수(송민재)는 목욕탕에 들러 세신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첫 장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줄 알았던 철수네 가족의 기대와 달리 광주의 거리는 온통 계엄군과 최루탄으로 가득 찼다. 거리는 계엄령으로 봉쇄되고 무장한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이었던 장남 철수 아빠(이정우)는 계엄군에 쫓겨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충무로에서 30년간 미술감독으로 지냈던 강승용 감독의 연출 데뷔작 <1980
[리뷰] ‘1980’, 덤덤해야 할 역사의 비명을 미원 범벅의 간짜장처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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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는가. 영화 <댓글부대>는 자연스레 형성되는 집단적 의견이 아닌 명확한 목적과 음해 공작으로 완성되는 온라인 설전을 현실처럼 반영한다. 문제를 직관적으로 판별해내는 눈을 가졌으나 다소 허영심 높은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은 대기업 뒤편에 숨겨진 비리를 조사하던 중 한 중소기업의 폭로를 단독으로 보도하게 된다. 국민의 대대적 관심이 필요한 이슈였지만 돌연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지더니 모든 게 무용해지고 만다. 고발 보도는 잊히다 못해 오보라는 오명을 얻고 용기낸 취재원은 억울함에 극단적 선택을 감행한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흐르는 시간보다 온라인상의 시간은 더 빠르고 조급하게 흐른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오직 절망과 허무함만이 남은 그때, 젊은 남자가 다가와 상진에게 팀알렙에 관한 정보를 넘긴다. 찡뻤킹(김성철), 찻탓캇(김동휘), 팹택(홍경)으로 구성된 이 팀은 온라인상에 벌어지는 갑론을박을 철저한 계산하에 조종하고 변
[리뷰] ‘댓글부대’, 사이버 세상 속 여론의 뒷면을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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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가로지르는 등하굣길에 새로운 나무 이름을 익힐 수 있고, 이따금 들리는 사냥꾼의 총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아직 자연과 가까운 어느 작은 산골 마을. 도시에서 온 연예 기획사 직원들이 5월 착공 예정인 글램핑장 설명회를 열어 지역 주민들과 만난다. 산이 곧 삶의 터전인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들은 회사 두달 매출과 맞먹는 중소기업 코로나19 보조금 때문에 급조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상황이었고, 그 속셈이 마을 주민들에게도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정화조 위치를 바꾸지 않으면 이곳의 지하수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올 것이며 사람들이 피운 모닥불 등을 이유로 대형 산불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문제 또한 설명회에서 제기된다. 특히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타쿠미(오미카 히토시)의 반발이 매섭다. 지역 주민들의 시선에서 시작된 영화는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일개 연예 기획사 직원일 뿐인 타카하시(고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의 시점에서 이 사안을 한번 더
[리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폭력성이 파괴적 개발주의와 충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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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을 만난 모든 이들은 그에게 가사 작법의 비결을 질문한다. 이승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를 자기 식대로 엽렵하게 벼린 후 음악에 담는다. 이승윤을 지칭하는 단어들과 이승윤의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심상 6개를 이승윤이 새로 정의해보았다. 역시 범상하지 않은 이승윤의 뜻풀이를 보며 이들이 이승윤의 어느 순간에 도사린 단어인지 맞혀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방-구석 房 구 석
사전적 정의 방 또는 방 안을 속되게 이르는 말.
승윤의 정의 “매일 어지르고 한달에 한번 치우는 곳.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며 어지른다.”
기타 guitar
사전적 정의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撥絃樂器)의 하나.
승윤의 정의 “잘 칠 줄도 모르면서 자꾸 사고 싶은 것. 전세계 기타 연주자를 찾는다면 나는 하위 1%일 것이다.”
하늘
사전적 정의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
승윤의 정의 “착시임에도 착각이래도 진짜라 믿고 싶은 것. 대기나 빛 따위가 만들어
이승윤의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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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 반년 만에 극장가를 다시 찾는다. 지난 해 9월 그의 노래 <영웅 수집가>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권하정, 김아현 감독) 이후, 2023 이승윤 전국 투어 콘서트 <DOCKING>의 실황을 담은 영화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이승윤 콘서트의 총체를 탐사할 수 있는 기회다. 153분의 러닝타임에 공연 당시 연주한 27곡의 무대를 전부 담았다. “<듄: 파트2>보다 13분 짧은 러닝타임” 이라며 농담을 건네니 이승윤이 즐거워했다. <듄>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행성처럼 이승윤의 콘서트엔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승윤이 앨범 녹음부터 라이브 연주까지 줄곧 함께하는 밴드 멤버들과 만들어가는 호흡. 라이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승윤의 가사. 플라스마처럼 공연장 전체에 맹렬히 소용돌이치는 이승윤의 목소리. 음악을 추력 삼아
[인터뷰] 관객과 함께 주저없이 도킹,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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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 반년 만에 극장가를 다시 찾는다. 지난해 9월 그의 노래 <영웅 수집가>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감독 권하정, 김아현) 이후, 2023 이승윤 전국 투어 콘서트 <DOCKING>의 실황을 담은 영화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이승윤 콘서트의 총체를 탐사할 수 있는 기회다. 153분의 러닝타임에 공연 당시 연주한 27곡의 무대를 전부 담았다. “<듄: 파트2>보다 13분 짧은 러닝타임”이라며 농담을 건네니 이승윤이 즐거워했다. <듄>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행성처럼 이승윤의 콘서트엔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승윤이 앨범 녹음부터 라이브 연주까지 줄곧 함께하는 밴드 멤버들과 만들어가는 호흡. 라이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승윤의 가사. 플라스마처럼 공연장 전체에 맹렬히 소용돌이치는 이승윤의 목소리. 음악을 추력 삼아 말
[커버] 우주에 뿌려진 말과 음표들,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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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VS. 콩>에서 혈투를 벌이던 고질라와 콩은 공동의 적 메가 기도라 앞에서 휴전을 선언했다. 두 괴수의 일시적인 연대는 새로운 빌런 ‘스카 킹’의 등장으로 완벽한 팀을 형성한다. 몬스터버스의 두 아이콘의 빅 매치에 집중했던 전작을 넘어 <고질라 ×콩: 뉴 엠파이어>는 콩과 고질라의 환상적인 팀워크를 선보인다. 두 작품을 연이어 감독한 애덤 윈가드, 앤드루스 박사 역의 리베카 홀, 지아 역의 케일리 하틀 그리고 몬스터버스에 새로 합류한 트래퍼 역의 댄 스티븐스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케일리 하틀과 리베카 홀은 전편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다.
리베카 홀 <고질라 VS. 콩> 촬영 당시 출산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앤드루스 박사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다시 촬영에 임하면서 그녀가 강인한 커리어우먼이면서 동시에 부드럽고 강한 엄마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케일리와는 촬영 중 특별한 시간을 많이
[인터뷰] ‘고질라와 콩이 벌이는 거대한 전투’, 실망시키지 않는다 - <고질라 × 콩: 뉴 엠파이어> 애덤 윈가드 감독, 배우 리베카 홀, 댄 스티븐스, 케일리 하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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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좋아한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맹세코 부끄럽지 않다. 그걸 말하기가 쑥스러울 뿐이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마치 내가 시에 대해 잘 알고, 어쩌면 쓰기도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다. 아니면 내가 약간은 문학적 허영심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그래서 거의 비밀인 것처럼 시를 좋아해왔다. 꽤 오랫동안.
청소년일 때부터 좋아하는 시들을 옮겨 적는 공책이 따로 있었다. 지금 이 문장을 쓰고 너무 부끄러워서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적었다. 한용운의 <복종>이나 조지훈의 <낙화>, 김수영의 <풀> 같은 시. 용돈이 생기면 이름을 아는 시인의 시집을 샀다. 아는 시인이 많아져서 언젠가부터 공책을 접었다. 대신에 외우기 시작했다. 한 연이라도, 한 행이라도.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 정철의 <사미인곡>을 너무 좋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러니까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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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는 영화의 의도적 성취와 무관하게 동시대 영화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아날로그적 감각을 소환한다. 멀티버스를 통한 부활을 종용하고,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려는 영원주의의 강박은 영화의 생애주기를 무한에 가까이 연장하면서 영화산업을 언제나 젊은 것으로 가장하려 할 뿐 아니라 화면에 출현하는 죽음마저도 불확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반대로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불교의 메타포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관계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가능세계를 뒤에 두고 빠져나온다. 이러한 순응의 태도를 아날로그적 감각의 (재)출현이라 부를 수 있을까.비슷한 맥락에서 겹쳐보고 싶은 것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심도>다. <심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떠날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은 결국 엇갈린다. 한 사람은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다른 사람은 건너편 차선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남자가 그의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비평] 아날로그적 영원을 헤아리기, <패스트 라이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