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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뉴스]
이변의 설 연휴 극장가, 박스오피스 1위는?
2월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이어졌던 설 연휴 극장가에 예상밖의 복병이 등장했다. 설 전에 개봉한 영화 2편(<시민덕희> <웡카>), 설 연휴를 겨냥한 한국영화 3편(<데드맨> <도그데이즈> <소풍>)과 외화 1편(<아가일>)까지 총 6편으로 꾸려졌던 연휴 대진표에 갑작스레 <건국전쟁
글: 이유채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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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 <건국전쟁>, 믿음과 염치의 상관관계
(약간의 과장을 보태) 잡지 제작 에너지의 삼 할은 실수를 바로 잡는 작업에 투입된다. 몇번을 체크해도 안 보이던 오타는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인쇄만 들어가면 잃어버렸던 동전마냥 데굴데굴 잘도 나온다. 오타로 인한 좌절감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고 간혹 이름이나 제목이라도 틀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에게 혼쭐이
글: 송경원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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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영화에 대한 깨우침은 언제나 “바로 지금”, 사진으로 보는 이두용의 영화사
1941년에 태어나 1970년에 첫 장편 데뷔작 <잃어버린 면사포>를 만들고 2002년에 60번째 영화 <아리랑>을 완성한 이후까지 한국영화사에 새겨진 이두용의 시간은 너무도 길고 깊다. 그 일부의 순간이라도 붙잡아보고자 이두용 감독의 활동이 담긴 몇개의 사진을 정리했다. 그는 언제나 ‘현업 영화감독’임을 자부했던 현재형의 창작자였다.
글: 이우빈 │
글: 정재현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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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정론은 없다, 2024년에 바라본 이두용 평론가, 연구자들에게 묻다
이두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의 전성시대를 함께 지냈던 동료들,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세대 감독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두용 감독의 시대를 겪지 못한 영화평론가, 연구자 세대의 생각을 살피는 일이다. 과연 그들은 이두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론은 없었다. 그들의 발상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 산발적이었다.
글: 이우빈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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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이두용을 기억하는 ‘최후의 증인’들, 감독들의 추모사, 잊히지 않는 명장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피막>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필름메이커가 되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해주었어요.”(박찬욱 감독)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이두용 감독. 그의 영화로 청년기의 취향을 다듬거나 충무로의 영화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한 접점을 형성했고, 훗날 이두용 영화의
글: 김소미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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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피막>과 <내시>를 돌아보며, 이두용 스타일이 거둔 이미지의 카리스마
이두용의 뛰어난 영화들은 무성영화의 장점과 통한다. 리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부의 감정 표현도 개의치 않은 채 직진 호흡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의 상당수 영화들은 잘 세공된 서사의 완급 조절과는 거리를 두지만 섬광 같은 순간들을 포함하고 있다. 압도적인 속도감의 시학으로 핵심을 포착하는 그의 영화의 이미지가 지닌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이두용의 대
글: 김영진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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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이두용에 관한 끝나지 않은 질문들, 이두용 영화의 굴곡은 지금도 왜 유의미한가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1982년, 남산 밑,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시사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두 남자가 충격에 빠진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막 영화계에 입문한 강우석 감독과 20대의 철학도 박찬욱 감독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최후의 증인
글: 김소미 │
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