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부고를 실은 기사 이것저것을 살펴보다 퍼뜩 그의 이름에 붙은 수식들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근작인 <모가디슈>나 <자산어보> 등에선 영화음악감독 방준석이 부각되는가 하면, 영화 <라디오 스타> 주제곡이자 공전의 히트곡인 <비와 당신>의 작곡가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앨범을 낸 지 25년도 더 지난 그룹 유앤미 블루의 멤버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렇게 오래 음악을 해왔지만, 방준석의 이름 위에 덧씌울 만한 어떤 ‘시그니처’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승열과 함께한 ‘유앤미 블루’의, 백현진과 함께한 프로젝트 ‘방백’의 음악 속 방준석은 늘 예외 없이 빛나는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특정한 사운드나 태도로 기억하는 음악 팬들은 거의 없다. 그는 모든 곳에 그 개성을 자연스레 녹여내되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드러내 관심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는 독특한 음악가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던록’으로 각인된 유앤미 블루 시기
90년대 그 찬란했던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기억하는 음악 팬들에게 방준석이라는 이름은 ‘모던록’과 동의어에 가깝다. 가요에서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던 호방하고 서늘한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앞세운 유앤미 블루의 길지 않았던 몇년. 홍대 인디 무대를 통해 데뷔하긴 했으나 언더그라운드의 역사와는 별다른 연결점이 없던 그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선했지만, 수많은 것들이 동시에 등장해 저마다 뾰족함을 드러내고 있었던 90년대 중반 대중음악 신에서 그들의 음악이 정당하게 평가받기까지는 몇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철저한 상업적 실패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멤버들간의 견해 차이는 유앤미 블루의 끝을 너무도 빨리 앞당겼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역사는 그 둘이 남긴 두장의 앨범을 공히 한국 록 역사의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지난 25년간 세번에 걸쳐 공식 집계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 유앤미 블루가 남긴 단 두장의 앨범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로커’ 방준석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의 영화음악 진출은 대단히 예상외의 행보로 여겨졌다. 김수철이나 조동익 등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대중음악인이 본격적인 영화음악가로 성공한 경우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유앤미 블루의 기타리스트인 방준석이 가진 이미지와는 상반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방준석은 90년대 초반 친구인 이승열과 그룹을 만들어 한국 대중음악 신에 갑작스레 등장했고, 신인이지만 제법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별다른 제약 없이 펼쳐온 케이스에 속한다. 그에 반해 영화음악은 자유분방한 ‘로커’의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과 태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 확실할 뿐 아니라 영화 자체의 서사라는 큰 틀에서 여러 제약이 있고 타협이 필요한 영화음악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언론의 인터뷰를 통해 밴드 시절과는 사뭇 다른, 영화음악이라는 작업이 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압박감이 방준석의 음악 세계에 결코 장애가 되거나 한계로 작용하진 않았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그런 종류의 제약과 틀 안에서 충분히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뮤지션이었는지 모른다. 유앤미 블루는 방준석에게 ‘뿌리’이기는 했지만 그가 반복적으로 언급했듯 ‘먼 이야기’로 여겨질 만큼 과거의 이야기였고, 영화음악은 그의 본령은 아니었을지라도 충분히 어울리는 현재였다.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적응을 택했고, 우리는 유앤미 블루라는 역사적 그룹을 잃었지만 방준석이라는 빼어난 음악감독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텔미썸딩>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두 블록버스터영화를 통해 화려하게 영화음악가로 데뷔한 그의 이후 행보는 숨 가쁘게 이어졌다. 유앤미 블루 시절만큼 그의 음악적 색깔이 도드라지게 빛나기는 어려웠으나 감독의 의도를 탁월하게 읽어내는 그의 능력은 곧 다각도로 빛을 발했다.
<자산어보> <모가디슈>… 영화음악가로 날아오르다
<자산어보>나 <모가디슈>는 영화음악가로서 그가 정점에 오른 이후의 수작들이고 그에 쏟아진 찬사나 수상 역시 누구나 수긍할 만한 것이다. 특히 조선 시대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톤의 묵직한 필름결에 어울리는 <자산어보>의 웅장하고 때로는 우아하며 익살마저 곁들인 스코어는 일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으로 <라디오 스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록음악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한국 록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것을 큰 틀의 방향성으로 삼았던 <라디오 스타>의 음악 작업은 음악가로서 방준석의 탁월한 센스와 작업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준 작품으로 기분 좋게 회상된다. 특히 신곡임에도 그 옛날 기성곡으로 착각될 만큼 예스러운 정서를 잘 구현해낸 <비와 당신>이 준 소박한 감동은 영화의 잔잔한 엔딩만큼이나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방준석은 2016년,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과 함께 ‘방백’이라는 작업으로 대중음악의 영역에 잠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통제와 타협 혹은 해석에 익숙해졌던 그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롭게 열린 협업에 대한 그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일종의 산책에 나선 것이 아니었을까. 백현진이 자유롭게 흥얼거리면 방준석의 기타가 자연스레 더해지면서 곡들이 쌓여갔고, 그 어떤 틀이나 강박 없이 만들어낸 이 음반은 그의 커리어에서 또 하나의 빛나는 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어떻게 기억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다재다능하고 관용적이었던 뮤지션. 하지만 그것은 무취나 무색과는 다른 것이다. 그가 손댄 그 어느 것도 허투루 된 것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쩌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의 치열한 음악성의 충분한 증거가 되리라. 한때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짙은 향을 뿜어내는 개성 있는 음악을 했으나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영화음악을 통해 한층 새로워졌다. 그는 장르를 구현하기 위한 음악이 아닌, 영화의 이야기를 추상적인 소리 안에 가둬 인코딩하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고, 그 작업을 통해 오히려 음악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새로운 자아를 완성해나갔다. 그는 음악 안에 방준석이라는 이름을 굳이 새기려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방준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