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모르겠는데, 정치적으로 나는 우리 집안에서는 돌연변이다. 친가, 외가 통틀어 처음 나온 좌파다. 부모 앞에서는 기능적인 얘기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괜히 뭐라고 해봐야 서로 기분만 상한다. 직업이 경제학자라 회사 고위직들도 자주 만나고, 소위 ‘뱅커’들도 종종 접한다. 직업으로서 나의 일상은 적당한 수의 좌파 그리고 어마하게 많은 보수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과 얼굴 붉히지 않고 적당한 에티켓과 거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도 버티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정권이 바뀔 때가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보수로의 정권 교체는 제일 컸던 게 이명박(MB) 당선 때, 이번이 그렇다. 박근혜 당선은 정권 교체는 아니다. 공교롭게 MB가 당선되었을 때 난 40대였다. 나의 화려했을 40대는 그렇게 갔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겪어내기 제일 어려운 보수로의 정권 교체는 이번이 아니었나 싶다. MB 때에는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50~60대,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잘난 척이나 훈수질은 견디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더욱더 힘들다는 생각이 든 게, “보수 만세”를 외치며 “586 척결”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20대와 30대, 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냥 못 들은 척하는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젊을수록 더 진보적인 사회를 살았는데, 조국 사태를 기폭제로 이것이 역전되었다. 물론 나는 조국이 없었어도, 그런 상황은 불거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68세대의 부패와 함께 청년 극우파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유럽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학교 수업도 몇년 전부터 어려워졌다. 기계적인 중립성 같은 것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정치색이 다르다” , “나와 생각이 다르다”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젊은 피를 희망으로 생각하면서 지냈던 많은 시민단체들도 가세가 기울어가고, 지역단체들도 상근자와 활동가들을 확보하지 못해 난리다. 문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젊은 스탭들도 점점 더 보수화돼간다. 그냥 시대의 흐름이다.
자,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공교롭게도 대선 이후 며칠간 주로 들었던 음악이 존 바에즈 앨범과 정태춘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겨운, 신날새 등 젊은 해금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었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그냥 그렇게 손이 갔다. 불현듯 장현의 앨범을 꺼내 <석양>을 들었다. 익숙한 궁상과 함께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옛날 음악으로 정서를 달래는 것은 잠시 할 일이지, 결국 퇴행이고 도피다. 5년을 이렇게 갇혀서 살 수는 없다. 뉴스를 피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이야말로 청년 보수의 시대를 사는 묘수가 필요한 시기다. 방법을 찾으신 분,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소주 한잔 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