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냉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해수(안소요)는 살아간다. 검은 쇳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로 공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식당에서 밤새 잔반을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 겨우 몇만원이 모이는 삶. 젊은 여자는 자기 삶의 조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말과 감정을 거세한 것처럼 텅 비어 있다. 그렇게 밤낮으로 일해 푼돈을 모은 해수는 어느 날 갑자기 일을 멈추고 낡은 병원에서 누군가의 시체검안서를 발급받는다. 카메라를 등진 채 자기 생존에 급급한 인물을 따라가는 동안 영화는 그의 사정을 함부로 보기 좋게 축약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숏의 연결과 프레임을 제한해 관객에게 허락하는 시각적 정보를 과감히 조율하는 <축복의 집>은 관객이 비정한 외부 세계의 질서를 직접 감각하고 유추해내도록 한다.
데뷔작을 만든 박희권 감독은 생략의 서스펜스를 효과적으로 동원해 냉정하지만 밀도 높은 긴장감을 완성하는 한편, 스토리텔링 중심의 영화가 진즉 들어냈을 법한 인서트에는 장면을 할애한다. 낡은 수도관에서 쏟아지는 녹물,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찌꺼기, 죽은 자의 시신 위로 거칠게 화장을 덧칠하는 장례사들의 손길 같은 것이 한참이나 시야에 머문다. 무정한 시스템 아래 휘발되고마는 가난한 개인의 죽음, 그것을 지켜보면서 허물어졌다가 다시 억세지는 가족의 초상에 관한 영화인 <축복의 집>은 근래 만난 가장 집요한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