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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노감독의 근심을 읽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항의 대립 관계에 관한 영화다. 스필버그는 인종과 인종, 토착민과 이민자, 가진 자와 없는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관계를 단순한 대결 구도로 재현할 마음이 없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또 다른 창작의 토양이 된다. 무대에서 위대한 뮤지컬의 여정을 밟아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아서 로렌츠의 책에 제롬 로빈스와 레너드 번스타인, 그리고 젊은 시절의 스티븐 손드하임이 가세한 뮤지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의 옷을 입는다. 어니스트 리먼이 작가로 참여한 영화 버전이 거둔 성공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뮤지컬과 별개로 1960년대부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교향적 무곡>을 수차례 녹음했던 번스타인은 1984년에 키리 테 카나와와 호세 카레라스 등을 불러들여 스튜디오 버전의 2장짜리 음반을 만들었다. 어떤 관객은 그 음반이 사운드트랙인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개성 넘치는 변화를 가져온 음반은 앙드레 프레빈의 것이다. 유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그는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재즈 트리오 버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앨범(1959)을 내놓았다. 셸리 맨의 드럼과 레드 미첼의 베이스가 프레빈의 피아노와 함께 엮어낸 창조물은 이후 칼 티아더 같은 추종자의 음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 상황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새로운 버전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왜? <영혼은 그대 곁에>(1989)나 <우주전쟁>(2005) 같은 전례가 없진 않으나, 완성도나 유명세 면에서 두 영화의 원작은 비교가 힘들다. 스필버그는 어릴 적부터 좋아한 영화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치면 <멋진 인생>(1948)에 먼저 도전했어야 한다. 내 우려는 영화를 처음 본 날에도 풀리지 않았다. 스필버그의 버전은 영화 자체로 아주 훌륭했지만, 위대한 장면들은 전부 이전 버전에서 옮겨온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필버그는 스탠리 도넌이나 빈센트 미넬리가 아니기에 자기 반영적인 뮤지컬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스필버그의 대답을 대신 써보다 개봉 첫날,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새로운 버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직 확신의 글은 아니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장르영화 가운데 뮤지컬은 세트의 전제 아래 벌어지는 예술이다. 보드빌 등에 유래를 둔 까닭에 뮤지컬영화의 무대적 특성은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춤과 노래를 연기하는 배우는 무대의 변형된 형태인 세트의 세상 안에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간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더 거대해진 오픈 세트를 활용하면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제롬 로빈스와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는 이러한 구속을 역으로 이용했다. 영화는 뉴욕 상공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시작한다. 마침내 동네 농구장에 도달하면 쭉 하강해 영화의 주요 무대로 삼는다. 열린 듯이 보이지만 철망으로 둘러싸인 공간. 이 밖에도 갱간의 결투가 벌어지는 다리 아래를 비롯해 굳이 세트임을 숨기지 않은 영화의 무대들은 인물에게 폐쇄적으로 기능한다. 특히 농구장은 운명적인 성격까지 부여받는데, 주인공 토니는 1부의 중요한 순간에 두번에 걸쳐 농구장을 지난다. 그리고 2부의 결말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공간도 농구장이다. 모여든 아이들은 하나둘씩 떠나지만, 농구장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왜 그렇게 묘사되었을까.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 전반을 지배한 사상적 구속이 급작스럽게 몰락하던 시기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상 밖으로 터져나가고 싶지만 사회시스템은 그들을 꼼짝 못하게 옥죄던 시간. 1961년 영화는 인물의 움직임을 억압의 의미 아래 수용하고 표현한다.

반면 스필버그는 재개발되던 즈음의 뉴욕 웨스트 사이드를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앞선 버전이 재개발의 이미지를 한정적으로 보여준 것과 달리 새 버전의 아이들은 농구장 대신 부서지고 무너진 공간 사이를 부유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철구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파괴를 넘어 수평과 수직으로 팔과 다리를 뻗는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터주고 확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두 버전의 긴 도입부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움직임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농구장에서 시작하고 농구장으로 되돌아오며 마치는 1961년 버전의 도입부가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응축과 집결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재개발 현장에서 시작해 농구장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움직임을 뒤따르는 이번 버전의 그것은 앞으로의 영화가, 운동적 외연의 확산과 공간적 영역의 확장의 기록이 될 것임을 지시한다. 가장 정적인 파트인 <Tonight> 장면에서조차 토니가 장애로 작용하는 철망과 난간과 계단 사이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화는 중심부에 배치한 장면에서 폭발한다. 1961년 버전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청춘들이 옥상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여성과 남성의 상반된 의견을 드러내는데, 2021년 버전의 아이들은 아파트와 복싱클럽 등의 실내는 물론 시위가 벌어지고 재개발의 청사진이 휘날리는 도로의 경계 위로 매끄럽게 넘나든다. 의견을 달리하는 아니타와 베르나르도는 공간을 거듭할수록 각기 엄청난 세력을 모으게 되고, 엄청난 인파의 원형 구조 안에서 양쪽은 화려한 춤을 추며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야누시 카민스키의 카메라는 그들의 뒤와 옆을 정밀하게 뒤따를 뿐만 아니라, 인물의 동선 밑에 놓인 카메라의 위치를 언제, 어디쯤에서 부감숏으로 날렵하게 이동할지 정확하게 안다. 이 장면은, 같은 해에 나온 <인 더 하이츠>의 거리 장면과 비교된다. 비슷한 인물, 비슷한 주제 아래 벌어지는 군무지만 혼란스럽기만 한 <인 더 하이츠>와 거리를 두는 스필버그의 버전은 고전기 할리우드영화의 몹신의 경지에 도달한다.인물과 공간의 운동성을 빚던 카메라가 더욱 빛나는 지점은 방향성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항의 대립 관계에 관한 영화다. 스필버그는 인종과 인종, 토착민과 이민자, 가진 자와 없는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관계를 단순한 대결 구도로 재현할 마음이 없다. 그는 다른 것들끼리 만나고 부딪히다 결국 새로운 방향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폴란드 이민자의 후손인 토니와 푸에르토리코에서 막 도착한 마리아의 첫 데이트 장면을 보자. 전철은 북동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움직이며 도착하는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열차는 이상하게도 북서 방향에서 남동 방향으로 아주 완만하게 이동한다. 직선과 곡선의 방향이 정과 반으로 복잡하게 어우러지며 한 덩어리를 이루는 장면은, 결전을 앞둔 제트파, 샤크파와 토니, 마리아, 그리고 아니타가 <Tonight>를 부르며 이동할 때다. 각각의 이유로 그날 밤을 맞는 열기와 설렘을 독주와 합창으로 노래하는데, 중창의 화려함을 강화하는 건 서로 다른 움직임의 전개 방향이다. 제트파가 북에서 남으로 진출하다 서에서 동으로 꺾는 장면은, 마찬가지로 북에서 남으로 전진하던 샤크파가 동에서 서로 휘는 장면과 맞붙고, 북동에서 남서로 비스듬하게 배치된 교회 의자에 앉은 아니타와, 북서에서 남동으로 난 길을 걷는 토니와, 스크린 정면으로 걸어 들어오는 마리아가 연결된다. 다가올 1960년대의 변혁을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시선은 그러하다. 인터뷰에서 그는 촬영 도중 아버지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기실 등장인물들은 어린 스필버그와 동년배의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이건 아이의 손을 잡고 미래로 트인 길을 묻는 영화인 걸까. 안타깝게도 스필버그의 비전은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영화는 재개발이 한창인 도입부의 공간으로 되돌아와 끝을 맺는다. 카메라는 계단 위로 조금씩 이동하며 아이들이 떠나는 걸 목격한다. 상승의 방향이란 점에서 일단 낙관을 내포하지만, 계단의 끝은 부서진 건물의 꼭대기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태생적으로 다른 리얼리즘 뮤지컬이다. 급작스럽고 억지스러운 해결, 과장되고 극단적인 행복, 복원된 이상향 같은 뮤지컬의 특성은 제거되고, 심지어 해피엔딩을 뒤집어놓은 뮤지컬 아닌가. 세계대전 전후 태생의 감독 중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물은 이제 몇 되지 않는다. 청년 시절, 동심의 행복에 매달렸던 노감독의 근심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영화에 대한 내 두 번째 판단이 역시 틀린 것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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