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두운 시기에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 처음엔 끔찍한 상상이 제공하는 웃음을 통해, 마지막엔 기도로.
애덤 맥케이의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그의 널리 알려진 최근 두 작품 <빅쇼트>와 <바이스>만을 놓고 생각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 하나는, 영화가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제4의 벽을 넘고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이나 커트(제시 플레먼스)처럼 픽션 속 캐릭터가 관객을 향해 자신의 속마음을 직접 밝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빅쇼트>에선 이상한 표현이지만 ‘배우 마고 로비가 마고 로비로 등장’하여 어려운 경제 용어를 설명하기까지 한다. 오직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자료화면 같은 이 신은 사실상 그대로 들어낸다 하더라도 극의 전개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혹은 극단적으로 말해 자막 처리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자막 자체가 시간의 경과나 영화의 사전 배경을 설명하는 등 오직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용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자막은 애덤 맥케이 영화에서 자주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장치다. 경우에 따라선 자막을 통해 제4의 벽을 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돈 룩 업>에도 그 예시 같은 자막이 있다. 영화 초반부, 지구방위합동본부(PDCO)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의 질문에 영화는 영화의 움직임마저 정지시킨 뒤 그 답을 자막을 통해 관객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돈 룩 업>은 독특하게도 이 자막을 끝으로 더이상 관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이것이 이례적인 까닭은 단 한번의 순간을 위해 4의 벽을 넘는 영화는 드물기 때문이다. 영화에 한번이라도 등장하는 순간 해당 영화의 성질을 바꿔버리는 이 특별한 장치는, 말하자면 한번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과 같다. 관객의 머리에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이 명확히 인식되는 순간, 좋건 싫건 어떤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따져보려는 것은 그 변화가 무엇인가보다는 애덤 맥케이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가, 이다. 그러니까 과연 PDCO의 실존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이 변화를 감내할 만큼의 가치를 지닌 선택이었냐는 것이다.
들어내도 되는 장면이 많은 영화
그러나 그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제의 그 장면에서 감독은 PDCO가 현실에 존재하는 단체라는 사실과 함께 본부의 로고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단체는 서사적으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으며, 이후로 반복해서 스크린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의 형식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오직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만 영화에 존재하고 있는 이 장면은, 앞서 언급한 ‘마고 로비 신’처럼 들어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관련해서 차라리 ‘마고 로비 신’과 <돈 룩 업>의 자막 신의 공통점을 (제4의 벽을 넘는 것이 아닌) ‘들어내도 된다’라는 특징으로 묶고 싶은 이유는, <돈 룩 업>에 들어내도 될 것 같은 장면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돈 룩 업>에 대한 반응의 대다수는 주로 이 영화가 얼마나 웃긴지에 관한 평가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코미디 요소들이 재미있는지/없는지의 문제는 주관적인 영역이겠지만, 이 영화에 서사의 흐름과는 딱히 상관없이 오직 웃음 유발만을 위해 복무하는 장면이 많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신은 영화 중반 백악관 어딘가에 갇힌 케이트가 자신이 3성 장군으로부터 공짜 스낵으로 사기당한 일을 회고하는 장면이다. 케이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하자, 곁에 있던 박사가 장군과 관련된 방귀 일화를 들려주며 화답한다. 그리고 이때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황급히 등장함으로써 신이 마무리된다. 특이한 것은 이 장면이 회의실에 모인 고위층이 지구로 향하는 혜성의 궤도를 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고 격정적인 논쟁을 벌이는 장면의 바로 다음에 이어 붙는다는 것이다. 이 순간이 서사의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점에서 타이밍이 의아한 것도 맞지만, 더 놀라운 것은 영화 초반부에 이미 한번 웃음으로 소모했던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면서까지 여기에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의지이다. 이 장면이 그래서 실제로 재미있었는지와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돈 룩 업>에 들어내도 무방한 ‘개그 욕심’이 드러나는 순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자극으로서, 실질적인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 영화의 주목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케이트의 회고 신과 같이 그것과도 연관이 없는, 오직 특정한 욕심을 위해 들어가 있는 장면들이 있다. 정부가 희생양으로 선발한 애국열사 캐릭터가 우주선이 발사될 때 온갖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을 내뱉는 장면이나, 민디와 브리(케이트 블란쳇)가 침대에서 늦은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며, 아리아나 그란데가 연기한 라일리는 존재 자체가 영화의 서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캐릭터 또한 어느 정도 웃음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그보단 오로지 관객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이 어두운 시기를 웃음으로…
지금껏 이 영화에 웃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장면들, 그래서 들어내도 될 것 같은 장면이 많다는 얘기를 해왔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나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정수는 들어내도 되는 장면들에 있다고 생각하며, 감독의 목표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 영화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수행해내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그것을 해내고자하는 욕망이 들끓는 이 영화가 물론 사람에 따라 재미가 없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캐릭터 율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율은 다양한 고위층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번듯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동시에 혜성 충돌이라는 재난 서사에서 라일리보다도 더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요컨대 율만큼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차이가 나지 않는 인물은 없다. 그렇다면 분명 어떤 고유한 목적을 가진 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 캐릭터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율이 마지막에 모든 인간을 대표해 올리는 기도로 나타난다. 이 영화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신의 존재는 등장하지 않으며, 제발 하늘을 보라고, 지구가 위험하다고 외쳤던 자들의 말은 현실이 된다. 대신 율은 이 의심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신에게 기도한다. “이 어두운 시기를 사랑으로 위로하옵시고….” 이 기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웃음으로 바꾼 기도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진짜로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