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1년이 지나갔다. 새해는 묵은 먼지(라고 쓰고 ‘바이러스’라 읽는다)를 탈탈 털어내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해보다 간절하다. 이럴 때 모든 걸 잠시 잊고 영하 30도, 해발 6000m의 티베트 고지로 떠나 깊고 긴 심호흡을 해보는 건 어떨까.
끝없는 설원 속 봉인되어버린 듯 서서히 흐르는 시간. 두꺼운 파카를 잔뜩 껴입은 두 남자가 꼼짝 않고 잠복근무 중이다. 바로 프랑스 동물사진작가 뱅상 뮈니에와 작가이자 여행가인 실뱅 테송이다. 이들은 때로는 우직한 곰처럼, 때로는 약삭빠른 여우처럼 전략을 짜며 멸종 위기에 처한 눈표범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관객은 이들의 뒤를 쫓으며 야생 야크, 티베트 영양, 팔라스 고양이, 회색 늑대, 티베트 여우, 히말라야 갈색곰 등을 만나는 눈호강도 하고 티베트의 노마드 가족과 친분도 쌓지만, 막상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은둔의 여왕이라 알려진 눈표범을 만나게 될진 알 수 없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나타날 듯 꼬리를 감추어버리는 전설의 동물을 기다리는 이 여정은 웬만한 스릴러물을 넘어서는 ‘쫄깃함’을 선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뮈니에는 테송에게 동물잠복관찰에 필요한 인내심, 자연 속에 숨는 기교(카무플라주), 동물들의 흔적을 읽어내는 방법, 그리고 관찰하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정보를 속삭이고, 테송은 뮈니에에게 자신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그저 거대한 자연의 관찰 대상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차분히 소통한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현재의 생태 상황에 대해 적색경보를 울리지도 않지만 이들의 솔직담백한 수다는 여타의 내레이션보다 훨씬 더 교육적이고 철학적이다. 심플하고 아름다운 테송의 시는 초현실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 워렌 엘리스가 연주하고 닉 케이브가 부른 주제곡과 어우러져 경외심마저 자아낸다. 테송은 이 경험을 소재로 다큐멘터리와 같은 제목의 에세이를 2019년 출간했고, 이 작품은 같은 해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스릴 만점의 동물 다큐멘터리 <눈표범>은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20만명을 훌쩍 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12월15일 개봉 이후 2주간 동안 21만89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