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칸국제영화제가 폐막(현지시각 26일)을 사흘 앞두고 있다. 칸에 온 작품들에서 세계 영화인들의 고민을 읽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올해엔 암울한 사회상과 어두운 내면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세상은 아직도 어둡고 씁쓸한 모양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몇 편의 리얼리즘 영화다. 대표적인 두 좌파 감독인 켄 로치(66)의 <스위트 식스틴>과 마이크 리(59)의 <올 오어 낫싱>은 영국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좋은 평을 얻었다. <올 오어 낫싱>은 어떤 일상의 즐거움도 사라져버린 황량한 가정 이야기다. <스위트 식스틴>은 달콤함 대신 씁쓸함만 남은 십대들 이야기다. 열여섯 살 생일을 맞기 전에 감옥 안의 엄마 진(미셸 콜터)이 나오길 바라는 리암(마틴 컴스턴)은 엄마와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점점 심각한 범죄의 구렁으로 빠져든다. 마약 딜러인 엄마의 남자친구 스탄(개리 맥코맥)과의 갈등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 리암은 막상 열여섯 생일을 맞이하지만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인 자장커(32)의 <런샤오야오>는 건설중인 도로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스산하게 서있는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십대들의 절망과 무력감을 그렸다. 어떤 출구도 보여주지 않은 켄 로치와 달리, 자장커에게선 조금만 더 견뎌보지 않겠느냐는 실낱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알렉산더 페인의 <어바웃 슈미트>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소통’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어바웃 슈미트>는 정년퇴임 직후 갑자기 아내와도 사별한 슈미트(잭 니콜슨)가 아프리카 난민 소년에게 독백과도 같은 편지를 쓰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코미디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나머지 격정의 폭발을 주체하지 못하는 배리(애덤 샌들러)가 우연히 만난 소극적인 여인 레나(에밀리 왓슨)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사나이>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 유머가 풍부하고 말끔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그의 전작들과 큰 차별성이 없어 아쉽다. 기괴한 영상을 추구해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는 유년의 끔찍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사내 이야기다. 폐쇄적인 심리 공간의 창조엔 성공했지만 소재는 상투적이고 시각은 진부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 가운데는 뤽과 장-피에르 다르댕 형제의 <아들>과 가스파르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10분이 넘는 성폭행 장면을 날것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은 “칸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될 것”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영화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칸/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