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일(케빈 스페이시)의 기억은 물에서 시작한다. 어린 그를 바다에 처넣은 아버지는 헤엄치기를 배우지 못하는 아들에게 일찌감치 `개같은 내 인생'을 각인시켜 주었고,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그 익사 직전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스웨덴 감독 라세 할스트롬(56)에게 가족이란 상처를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같다. 자살한 아버지와 뚱보 엄마, 장애인 동생에 치어 지내는 한 청년의 삶을 그린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랬듯, 2001년작 <쉬핑 뉴스>에서도 감독의 눈길은 핏줄이란 물귀신이 칭칭 감은 가족관계에 머물러 있다.몸만 중년이 된 코일은 어린 시절의 그 상처받은 한 순간에 늘 발목이 잡혀 허깨비처럼 산다. 상처는 인생이란 항해에서 뉴스랄 것도 없는 일상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마주친 상처들의 바다에 더 깊이 자맥질해 살아가는 법,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코일은 구명정처럼 다가온 고모(주디 덴치)를 따라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는 고향 뉴펀들랜드로 뱃길을 돌린다. 황량하면서도 원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그 섬에서 코일은 지방신문의 기자로 `쉬핑 뉴스(항해 소식)'라는 칼럼을 쓰며 제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 자국을 핥아간다. 해적이었던 선조와 근친상간에 망가진 고모만이 아니다. 벼락처럼 왔다가 떠나버린 첫 사랑(케이트 블란쳇)에 이은 새 사랑(줄리언 무어)도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투성이 인간이다. 그래서 이제 상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고, 상처가 추억이 되며 일으킨 힘으로 코일은 진짜 어른이 된다. 인생이란 바다가 보내온 소식은 오늘도 `맑음'보다는 `흐림'이 더 많다. 폭풍우가 치고 물결이 거칠게 일어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것, <쉬핑 뉴스>가 전하는 항해술이다. 24일 개봉. 정재숙 기자j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