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은 그 이전 세대에 수수께끼와 같아 보인다 한다. 생활의 도처에서 만나 삶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이따금 느껴지는 세대간 불협화음은 나이 든 사람들의 눈에는 생경하기 이를 데 없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마음이 도통 이해가 안된다며 데이터로 읽어달라는 조직들이 많아 프로젝트로 분석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어려움의 출발이다. 첫째는 소중한 고객이니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묻는 것, 두 번째는 회사의 밀레니얼 직원들이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보니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존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인정과 대우를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자존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역량을 계속 계발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두 번째, 취향이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애호가 있는지 발견한다. 그 취향을 향유하기 위해 공부하고 경험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세 번째, 효율을 중시한다는 것. 높아진 눈높이에 비해 사회적 분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간파하고 최소한의 투자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정보의 탐색과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노하우로 내재화된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자존의 증명이다. 문제는 맬컴 해리스가 <밀레니얼 선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역사상 가장 많이 배운 세대’는 ‘가장 불안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존을 지키기 위해 요구되던 직업적 성취는 걷어치워진 사다리로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물려받은 환경에 기반한 능력주의는 기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가족의 투자와 기대를 한몸에 받아 각자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각성되어졌지만 이미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남은 기회는 예전처럼 여유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남은 특징인 취향은 자신의 애호를 넘어 자존의 증명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형질이 되고 있다.
샷에 만원이 넘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기다 아일랜드에 생산 과정을 보러 가기 위해 자동차 사는 것을 포기한다. 3개월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급여를 모아 2박3일간 나오시마에서 전시회를 보고 온다. 애정하는 아티스트가 주연한 회차의 뮤지컬을 앞자리에서 보려고 근무시간 후 재능 플랫폼에서 디자인 투잡을 한다. 낮에 라이더를 하던 애마와 한밤 성수동 바이크카페를 찾아 처음 만나는 동류와 함께 “엔진 소리, 땀, 오일 냄새”를 즐긴다.
취향이 자존의 증거가 된 밀레니얼은 예전 귀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주인공처럼 소마를 먹고 촉감 영화와 방향 오르간과 전자 골프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