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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마구치 류스케만의 언어 '해피 아워'
임수연 2021-12-08

연애와 결혼, 불륜, 치정에서 파생된 감정과 새로운 사건

“(안개가) 꼭 우리의 미래 같네.” “무슨, 37살 여자의 미래는 엄청 밝다고.” “하지만 진짜 안 보인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간호사 아카리(다나카 사치에)는 이혼 후 진지한 연애를 거부한다. 일로 바빠 거의 집을 떠나 있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중학생 아들을 키우며 사는 사쿠라코(기쿠치 하즈키)의 얼굴은 거의 체념에 가깝고, 아트센터 PROTO를 운영하는 예술 행정가 후미(미하라 마이코)는 남편인 북에디터 타쿠야에게 불안을 느끼지만 친구들에게 내색하진 않는다. 37 살 동갑내기 친구인 이들은 모두 준(가와무라 리라)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사쿠라코와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고 아카리, 후미와는 서른 넘어 인연을 맺은 후 서로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비록 날씨 운은 없었지만 나름 즐거운 소풍을 만끽한 친구들에게 후미는 자신의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운동 워크숍에 참여한 후 온천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주인공들을 포함해 10명 남짓의 인원이 참석한 워크숍, ‘중심이란 무엇인가’는 일상에 없는 소통방식을 경험하는 신체 활동이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진행자 우카이와 참석자들이 함께한 뒤풀이 자리에서 준은 자신이 1년 가까이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준이 25년 지기 친구 사쿠라코에게 먼저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것을 안 아카리는 섭섭함을 느끼고, 준은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재판 현장에 친구들을 초대한다. 몇몇 성차별적인 모욕을 인내해야 했던 재판이 끝나고 약속했던 온천 여행까지 다녀오고 몇주 뒤, 준의 남편 코헤이가 친구들을 불러모은다. 준이 홀연 사라지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준의 이혼은 다른 세 여자가 자신들의 사랑과 가족과 삶과 관계를 반추하며 그들에게 결핍된 부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극도로 긴 러닝타임, 워크숍 시퀀스와 인간 개개인에 대한 탐구를 두고 라브 디아즈, 왕빙, 자크 리베트의 작업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해피 아워>에는 하마구치 류스케만의 언어가 있다. 먼저 아트센터 PROTO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이벤트에 각각 3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할애하는 형식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우카이의 워크숍에 이어 노세 코즈에의 신작 소설 ‘수증기’ 낭독회와 Q&A 시간은 <해피 아워>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인 ‘소통’을 또 다른 언어로 풀어낸다. 동시에 네 주인공을 먼저 소개한 후 가지치기하듯 확장되고 다시 또 연결되는 인물 관계도는 변칙적이면서 안정적이다. 때문에 317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략하는 디테일로부터 인내심 있게 일상적 삶에 닥친 딜레마와 새로운 역학 관계를 발견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으면서 내러티브의 자율적인 돌출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해피 아워>만의 뛰어난 구조가 증명된다. 실제 진행한 연기 워크숍에서 만난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극중 워크숍 장면은 현장 설명도 없이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기도 했지만, 천천히 영화를 살펴보면 고도로 절제된 기술과 의도적인 정면 클로즈업 삽입, 180도 상상선의 파괴가 대화의 의미와 뉘앙스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도 밝혀왔듯 하마구치 류스케는 연애물과 그 안의 서스펜스적 요소를 선호하는 창작자다. 이후 <아사코>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가 그랬듯 <해피 아워> 역시 연애와 결혼, 불륜, 치정에서 파생된 감정이 새로운 사건을 촉발한다. 때문에 네 주인공 사이의 화합과 분열뿐만 아니라 그들과 각기 연관 있는 조•단역 캐릭터들과의 만남이 중요하게 다뤄지며 관계는 어디서든 물꼬를 틀 수 있다. <해피 아워>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 같던 인물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날 수 있는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5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걸쳐 야심 있게 펼쳐낸 관계망은 극중 대사로도 언급된 ‘일본 사회의 고령화’를 포함한 현대 일본의 화두들, 가족과 성역할의 해체를 탁월하게 조망 한다.

CHECK POINT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기 워크숍

<해피 아워>의 기획은 2013년 9월부터 2014년 2월까지 고베에서 약 5개월에 걸쳐 진행된 ‘하마구치 류스케 즉흥연기 워크숍’에서 나왔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받아 최종 17명을 선발했고, 워크숍을 통해 연기 레슨을 받은 참가자 중 <해피 아워>의 네 주인공이 탄생했다. 네명 모두 실제 일이나 가정이 있는 30대 후반의 비전문 배우였다. 제68회 로카르노영 화제에서 네 배우가 함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터미션 10분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인터미션 없이 상영됐지만, 한국 첫 정식 개봉 버전에서는 2시간 29분 즈음 10분의 휴식을 갖는다. 주인공들이 약속했던 1박2일 온천 여행을 떠나 수다를 떨다가 워크숍에서 배운 ‘뱃속 소리 듣기’를 하겠다고 서로 장난치는 장면에서 야외로 숏이 바뀔 때, <해피 아워>의 기존 러닝타임 317분을 두 파트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새로운 거장의 탄생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첫 상업영화 <아사코>로 칸국제영 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우연과 상상>이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데 이어 칸국제영화제에 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각본상을 수상했다. 각본가로 참여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하마구치 류스케는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영화를 배웠다.-편집자) 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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