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엾게도 오해받아온 스파이더 맨, 1960년대 가장 홀대받았던 10대 슈퍼 히어로인 그가 올 여름을 노리는 야심만만한 블록버스터 가운데 첫 번째 주자로부터 사려 깊은 대접을 받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약간 유치할지언정 결코 도를 넘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 이 미래의 프랜차이즈영화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의 도착을 2주일 앞둔 박스오피스 테이블의 의자를 미리 데워놓을 영화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데이비드 코엡의 각본을 샘 레이미가 연출한 <스파이더 맨>은, 퀸즈고등학교의 인기없는 ‘범생이’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가 우연히 거미에게 물려 손수 디자인한 빨간색 보디슈트를 입고 빌딩 벽을 기어오르고 거미줄을 치고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는 악의 응징자로 변신하는 스토리를 다시 들려준다. 영화의 모드는 액션 소프오페라(주말연속극). 이 복면한 ‘자경대원’은 어렵지 않게 뉴욕 타블로이드 신문 1면 단골손님이 되지만, 스파이더 맨이 얽혀든 그물 가운데 가장 복잡한 것은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옆집 소녀(<캐츠 미오우>로 성인 연기 데뷔를 해놓고 다시 고등학생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와 벌이는 피학적인 셔레이드(제스처 게임)이다.
<스파이더 맨>에는 무드가 있을 뿐 컨텍스트는 없다. 1970년대 아동기를 보낸 이들이 <일렉트릭 컴퍼니>에 나온 모건 프리먼의 동료로 기억하는 착한 미스터리 맨이나 1965년 <에스콰이어>가 행한 대학생 인기 투표에서 체 게바라, 밥 딜런과 나란히 순위에 올랐던 과대망상적이고 교만한 마블 코믹스 캐릭터도 스파이더 맨의 선배가 아니다. 2002년 모델의 스파이더 맨은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쩌면 너무 과민해 에미넴과 <아메리칸 파이>의 터프한 숭배자들을 빼앗아오기는 어려울 정도다. 사악한 그린 고블린으로 분한 윌렘 데포는 글자 그대로 초록색 금속 가부키 가면의 명령에 휘둘리면서 “넌 네 마지막 그물을 짰다, 스파이더 맨“ 같은 대사를 맛깔스럽게 연기해 동성애적 색깔을 멋지게 더했다. 그런 윌렘 데포도 하마터면 원작 만화에서 스파이더 맨의 끈질긴 숙적으로 등장하는 신문 편집장 J. 조나 제임슨으로 분한 J. K. 시몬스의 소름 끼치도록 만화 캐릭터적인 연기에 가려 빛을 잃을 뻔했지만.
싸구려 효과를 결코 두려워하는 법이 없는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 맨>에서 몇몇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지휘해냈다. 공중서핑하는 고블린을 쫓아, 눈이 즐겁게 조립된 뉴욕의 콘크리트 협곡 사이를 민첩하게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의 곡예는 그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그중 하나는 메이시 백화점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연상시키는데, 중력을 거역하는 이런 애크러바트의 과시가 지금보다 두배로 많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비(고블린)와 스파이디(스파이더 맨)가 할로윈 가장을 하고 스카이라인을 배경삼아 춤을 추는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든가 하며 가끔씩 발레의 속도를 늦추는 것도 샘 레이미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터 파커의 개인사는 백인 노동계급 지역이었던 과거의 퀸즈를 상기시킨다. 만약 마블 코믹스 최고 스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스틴 파워즈 식의 복고풍으로 단장시켰다면 옛날 스파이더 맨이 팝아트 전시회 개막식과 히피들의 회동에 출몰하고 마약의 환각을 경험하는 그야말로 ‘환락 도시 뉴욕’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전쟁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쟁은 <스파이더 맨>에서 포위되고 몇몇은 이스트강 위 허공에 매달린 뉴욕의 시민들이 고블린의 테러에 항거하는 연대를 피력하는 장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중 한 사람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고 외치는.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2001.11.6. 짐 호버만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