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칸 국제영화제 주간이다.
<취화선>이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언제나처럼 세계 국제영화제 중 가장 큰 마켓이 열리는 터라 수백명의 한국영화인들이 칸으로, 칸으로 몰려간다. 올해는 그 숫자가 5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잠시, 충무로가 칸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닐 듯싶다.
2년 전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간(촌스럽다!) 나는, 일단 그 영화제의 화려한 위용에 놀랐고, 칸의 해변을 끼고 온 거리가 인파로 바글거리는 데 놀랐으며, 끔찍하게 비싼 물가에 놀랐다.
공식 상영의 세리머니를 위해 붉은 주단을 밟는 감독과 배우들에게 미리 사전연습을 시키는 그 용의주도함과, 팔레 드 페스티벌이라는 거대한 5층짜리 본부 건물의 거만한(?) 위용과, 공식 경쟁작들을 상영하는 뤼미에르 대극장의 2100석짜리 좌석의 규모와 가로 20, 세로 90m짜리 스크린의 크기에 놀랐다.
바로 옆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상영작들이 상영되는 750석짜리 클로드 드뷔시 극장은 뤼미에르 극장과 그 크기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그 ‘영악한’ 영화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그해 영화제에 참석했던 모 배우는 시간이 남아서인지, 뤼미에르 대극장에 깔린 빨간 주단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깔린 파란 주단과 ‘감독 주간’에 초청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깔린 비닐(?)의 폭과 길이를 면밀히 검토(!)하며, 이후엔 빨간 주단을 밟는 배우가 반드시 되겠노라며 농담 섞인 다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2년 전, 모 영화가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어 갔을 때, 시골에서 올라와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처럼 열심히 스케줄을 체크하고, 영화보고, 마켓 시사 반응을 체크하고, 일찍 들어가 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들이 내 영화사의 영화 한편을 초청했다고 해서 이곳에 와서 왜 이 많은 돈을 쓰며(엄청 비싼 숙박비, 밥값, 교통비, 진행비) 못하는 영어 때문에 얼굴 붉히며 영화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에 어쩔 수 없이 가끔 얼굴 내밀고 쑥스럽게 서 있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해, 그 빨간 주단을 한국인으로는 처음 밟은 <춘향뎐>팀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그 거대한 상영관에 들어선 임권택 감독, 이태원 대표, 정일성 촬영감독이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진귀한 구경을 했다.
‘세 사나이의 눈물’을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것이나 저만큼 객석에 서 있는 모 신문사 영화담당 기자의 까만 드레스와 또 어떤 이의 어색하게 보이는 나비 넥타이와 턱시도 차림을 보면서 키득거린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던 셈이다.
자신들이 불러들인 영화에, 현란한 장식을 달아주는 거대 영화제의 요란한 제스처에 이 촌스런 아줌마는 비위가 상하기도 했지만, 영화제 기간중 어느 늦은 밤에 상영관을 들어섰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좋은 영화와의 조우는 영화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제에 참석한 한국영화인들에게 각자 모두 좋은 성과있기를. 술 취해서 가방 잃어버리지 않기를. 카페 의자에 무심히 가방을 걸어놨다가 소매치기당하지 않기를. 돌아오는 비행기가 안전하기를, 텅 빈 충무로에서 하릴없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