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이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시점에 독일에서 특별한 다큐멘터리영화가 개봉했다. 지금보다 성차별과 쇼비니즘이 난무하던 남성 중심 사회의 서독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수십년간 의회로 진출해 겪은 투쟁사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Die Unbeugsamen>(굴하지 않는 이들)이다. 메르켈도 시사회에 참석했다.
토르스텐 코너 감독은 성차별적 생각과 쇼비니즘에 물들어 있는 남성들의 시선과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의회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독일 국민과 전세계인의 신망과 갈채를 받는 여성 총리를 보유한 현재의 독일이 되기까지, 서독 의회에서 무지와 편견에 대항해 눈물겹게 싸워야 했던 여성 정치인의 기록을 94분간 보여준다. 그는 보수당인 독일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으로부터 1983년 최초로 의회에 진출한 녹색당 소속 여성의원까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남성 정치인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여성 정치인의 자료화면과 지금은 백발이 된 그녀들에게 그때 그 시절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듣는 인터뷰를 엮었다.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이었던 출연자는 “갑자기 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기사당) 의원 한명이 엄지손가락으로 내 등을 쓸어내리더니 그 엄지를 치켜들었어요. 내가 브래지어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사당 의원들과 내기를 했다네요. 확인해보니 브래지어를 안 했다는 뜻이었대요”라는 에피소드로 당시의 성희롱 사실을 증언했다. 한 여성 의원이 “우리는 의회에서 성차별적인 언사를 중지하길 요구합니다”라고 연설할 때 의원 전체가 배꼽을 잡고 웃는 장면도 생경하면서 실소를 자아낸다.
코너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던 2015년엔 아직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고 하비 와인스틴 사건과 미투 운동이 터지기 전이었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시대착오적인 여성 차별 세력들이 판치고 있는 현재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투쟁, 어려움, 굴욕을 포함한 여성주의적 쟁취의 감동적 순간까지 여성 정치 활동가들이 처해 있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영화 잡지 <시네마>는 “충격적이지만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대의 기록”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