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잘랐다. 10년 만이다. 가슴 아래로 내려오는 치렁한 머리를 10년 가까이 유지하다가 어깨에도 닿지 않는 길이로 잘라냈다. 20대 초반까지 주로 쇼트커트로 살다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미용실을 한번도 못 가는 바람에 긴 머리가 됐는데, 그 뒤로는 탈색도 하고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조금씩 자르기도 했지만 길이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말하자면 파격적으로 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재미있게도 시기가 시기라 그런지 왜 머리를 잘랐냐는 질문을 별로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확 바뀐 머리 스타일에 놀라 머리를 왜 잘랐냐고 묻다가도 “요새 확실히 쇼트커트가 유행이네~” 같은 말로 자문자답했다. 쇼트커트를 둘러싼 근래의 소음에 대해 대부분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왜 잘랐는지 묻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내가 가는 몇 안되는 곳마다 최근에 쇼트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여성이 적어도 한명씩은 있었던 것이다.
실은 지난 몇년간 겨울마다 ‘쇼트커트병’에 시달렸다. 헤어숍에 가서 어울릴 만한 쇼트커트 스타일을 물어보기도 하고 화보를 구경하기도 했다. 지난겨울에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력한 ‘쇼트커트병’이 왔지만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겨울서점’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것 같아 참았는데, 이번 여름 휴방을 맞아 그냥 단행하기로 했다. 계속 유지한 머리 스타일이 지겨웠다. 긴 머리 스타일로 대변되는 나의 잠재적 연애 상대로서의 가능성이 지겨웠다. 차분하고 고상한 이미지가 조금은 답답했다. 스타일을 바꿔보고 싶었고, 내 마음을 환기하고 싶었고, 한번쯤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가만히 있으면 자라니까, 대단히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두렵지 않은데, 누가 쇼트커트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자신의 쇼트커트도 아닌 남의 쇼트커트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일 뿐인데. 역설적으로 ‘쇼트커트 논란’은 머리카락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고 있으니 쇼트커트는 남성의 기호를 침범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그 많은 중년 여성들이 쇼트커트를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논란’도 없는 것을 보면 중년 여성은 쇼트커트를 비난하는 이들이 요구하는 ‘여성’의 기호를 갖지 못한 것이리라. 혹은 그저 순순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무작정 싫었던 것일는지도.
머리를 기르고 순순히 굴면 여성으로서 사랑해주겠다는, 여성은 사랑받는 삶이 최고라는 그런 철 지난 말들에는 이제 힘이 없다. 여성은 보석도 꽃도 아니고 그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은 머리를 자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로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다.